미국과 이란 휴전이 호르무즈 해협 문제로 붕괴 직전에 놓이며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보는 수준으로 급등했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란 외무부는 종전 양해각서(MOU)가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5시48분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국제유가 기준 브렌트유 9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거의 5% 오른 배럴당 79.76달러에 거래 중이다. 장중 한때 배럴당 79.8달러까지 올랐다. 미국과 이란이 재충돌하기 직전인 6일(배럴당 71.99달러)에 비해 일주일 만에 10% 넘게 뛴 것이다.
분석가들은 현재 상승폭이 휴전 붕괴 위험을 다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 적응했고 전면전이 재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를 보면 영국 금융거래업체 IG의 시장분석가 토니 시카모어는 현재 유가 상승폭을 상대적으로 완만하다고 평가하고 이는 시장이 현재의 긴장 고조가 휴전의 완전한 붕괴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판단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전 뒤 원유 공급이 늘었지만 여전히 전쟁 전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10일 공개된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6월 전세계 원유 공급은 하루 410만배럴 늘었지만 전쟁 전보다 여전히 하루 940만배럴가량 낮은 수준이다.
기구는 "연말 무렵 세계 원유 시장이 다시 공급 과잉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전망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조선 통항이 점진적으로 회복돼 중동 및 기타 지역에서 유전을 재가동하고 원유 선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며 "이 주 걸프 지역에서 다시 발생한 공방은 석유 시장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인 평화 협정이 지속되지 않을 위험성을 부각한다"고 우려했다.
갈등 재점화 뒤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크게 줄었다. <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 해양정보업체 케이플러 소셜미디어(SNS) 자료를 종합하면 12일 해협을 통과한 배는 6척으로, 지난 5주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달 24일 해협 통과 선박이 70척으로 급증한 뒤 연이은 선박 피격 및 이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긴장 고조로 다시 급격히 쪼그라든 모양새다. 지난 9일 통항 선박이 22척으로 급감한 데 이어 10엔 12척, 11일엔 13척으로 다시 반토막 났다.
이번 갈등은 종전 양해각서의 호르무즈 해협 관련 문구가 모호하게 처리된 데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이란 협상단을 이끈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1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방적 협상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가 말한 약속을 지키든지 대가를 지불하라. 현실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글과 함께 양해각서 5항의 호르무즈 해협 상선 안전 통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이란이 조치를 취한다"는 문구를 강조한 이미지를 게시했다. 해협 관리 및 통제가 이란에 오롯이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 항행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련 이란은 폐쇄됐다고 밝힌 데 비해 미국은 통항이 자유롭다는 주장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관리를 위해 만든 페르시아만해협관리청(PGSA)은 1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했지만 거의 비슷한 시각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은 모든 선박에 개방돼 있다"며 "이란은 해협을 통제하고 있지 않으며 통항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이날 미 NBC 방송에 호르무즈 해협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미 중부사령부가 이란 수십 개 목표물을 공격한 가운데 걸프국들은 이란의 보복 공격 포화를 맞았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을 보면 이란은 이날 이란 쿠웨이트, 바레인, 요르단, 오만 등의 미군 목표물을 공격했다. 통신을 보면 13일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오만에 배치된 미군 장거리 공중 감시 체계 및 해상 탐지 레이더 체계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또 요르단 프린스 하산 공군기지 내 연료 창고와 탄약 저장 시설, 바레인의 미군 무인기(드론) 지휘통제소를 타격했다고 했다. 이란군도 이날 쿠웨이트 내 미군 방공 및 미사일 체계, 물류 지원 격납고 등을 무인기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전 최고지도자 장례식이 "이슬람 전사들을 고무했다"며 미국의 "야만적 본성"에 맞서 "전사들의 보복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을 보면 이날 세 차례 공습을 받은 바레인 내무부는 국민들에 실내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쿠웨이트는 군이 적대적 공중 목표물을 요격 중이라고 밝혔다. 요르단에서도 경보가 울렸고 정부는 미사일 4기 이상을 요격했다고 했다.
이번 미군 공격으로 이란에서 최소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됐다. 알자지라는 이란 <메흐르> 통신을 인용해 중부 이스파한주 당국이 나인 지 군사기지에서 한 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고 전했고 앞서 이란 관영 <IRNA> 통신은 페르시아만 안쪽 후제스탄주 마흐샤르에서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란 반관영 <ISNA> 통신을 보면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양해각서가 중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 문제가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해각서 틀에 대한 지속적 위반을 저지른 건 미국"이라고 비난했다.
중재국들은 합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AP> 통신을 보면 중재와 관련 있는 역내 당국자는 12일에도 휴전 유지를 위한 중재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이날 모하마드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장관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해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새 회담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중동 담당 국장 사남 바킬은 이란이 전면전으로 복귀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번질 수 있으며 새 이란 정권의 "위험 회피 성향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이란 정권은 "생존을 위해 싸우는 새 정권"이라며 권력 기반이 공고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던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가 죽은 뒤 "검증되지 않은" 이들로 꾸려진 "새 이란"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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