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시민사회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피지컬 인공지능(AI)·AI 데이터센터 중심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개발 폭주’로 규정하고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125개 단체와 11개 연대체로 구성된 시민사회 136개 단체는 13일 오후 1시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사업 타당성과 사회·환경적 영향에 대한 공론화 없이 유례없는 규모의 개발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이재명 정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워 추진하는 대규모 산업 육성 구상으로, 서남권 반도체 생산거점 조성, 피지컬 인공지능(AI) 산업 확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중심으로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전력·용수 공급, 교통·물류망 확충, 정주 여건 개선,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해당 프로젝트에 서남권 반도체 생산거점과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전력·용수 공급과 교통·물류망 구축, 규제 완화, 세제 지원 등 1000조원이 넘는 막대한 공적 자원이 투입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투자 이행, 환경영향 등을 관리할 방안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간소화와 사업 조기 완공을 강조하는 것이 대규모 개발사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 검토와 주민 참여 절차를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 가용 에너지원을 총동원할 경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 탄소중립 계획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원전 정책 기조와 비교해도 달라진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2017년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장기적인 ‘원전 제로’를 주장했고 2022년 대선에서는 기존 원전을 설계수명까지 가동하되 신규 원전은 짓지 않는 ‘감원전’을 내세웠다.
집권 후에는 반도체와 AI 산업의 전력 수요를 이유로 신규 원전과 SMR 활용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는 양상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지난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반도체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을 추가로 지어야 할지 여부를 검토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참가자들은 원전 건설에는 장기간이 필요한 만큼 당장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고 결국 노후 원전 수명연장이나 석탄발전소 가동 연장, 신규 LNG 발전소 확대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원전 안전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증가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규모 발전시설과 함께 건설될 장거리 송전망으로 인한 지역사회 갈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려면 호남과 충청, 강원 등 발전시설이 집중된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초고압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송전선로 경과 지역에서는 토지 이용 제한과 재산가치 하락, 경관 훼손, 건강 불안과 마을 공동체 분열에 대한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김 장관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추가 원전 부지로 거론한 지역 중 울산 울주군에서도 지난 5월 신규원전 건설 계획과 관련해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제기된 바 있다.
이날 현장발언에 나선 기후정의동맹 은혜 공동집행위원장은 “오송 참사와 경북 산불, 온열질환 사망이 보여주듯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이라며 “대규모 전력 수요를 만들어 석탄·가스·핵발전 확대를 부추기는 3대 메가프로젝트는 2035 국가감축목표 달성을 사실상 포기하는 기후부정의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기업의 직접 전력구매계약과 자체 발전 확대는 전력망과 에너지 전환 비용을 시민과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전력 공공성을 훼손하는 재벌 특혜이자 우회적 민영화”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미래가 불확실한 반도체·AI 산업에 사회 전체의 자원을 쏟아붓는 도박을 중단하고 노동자와 지역이 참여하는 공공재생에너지 중심의 신속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신규 원전을 확대하는 방안은 건설 기간과 송전망 갈등, 전력계통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낮다고 경고했다. 또 단기 전력 공급을 위해 가스발전을 늘릴 경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기업의 탄소 감축 책임까지 약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원전이 전체 전력 공급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고 추가 원전 2기도 곧 완공되는 상황에서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려면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규 원전은 지금 착공해도 전력 공급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반도체 공장 가동 시기와 맞지 않고 남부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려면 대규모 송전망을 새로 건설해야 해 주민 수용성과 전력계통 안정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며 “정부가 필요한 전력은 원전이나 가스로 공급하면 된다는 신호를 주면 기업에도 탄소 감축 책임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단기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가스발전을 확대하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반도체·AI 산업 육성과 국가감축목표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사실상 감축목표를 포기하는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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