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잔인한 금융' 개선을 국정 과제로 제시하면서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금융 시스템 개편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한 서민금융 확대를 넘어 중금리 시장의 공급 구조와 금융회사 역할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에 본지는 정부의 중금리 금융 재편이 금융권 영업 전략과 업권 경쟁 구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정부가 중저신용자 금융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은행과 제2금융권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금리 단층'을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중금리대출 공급 체계부터 금융회사 평가 방식까지 전면적으로 손질하겠다는 구상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출범한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을 중심으로 중금리대출 활성화 방안과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 구축, 건전성 규제 합리화 등을 병행 검토하고 있다.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금융회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중저신용자를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편의 출발점은 '금리 단층'이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은행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 위주로 대출을 공급하면서 중저신용자는 저축은행·캐피탈 등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고착돼 있다. 문제는 차주의 신용위험이 조금만 높아져도 이용 금융회사가 바뀌고, 그 과정에서 적용 금리가 급격히 뛰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같은 구조가 단순한 개인 신용 문제가 아니라 금융 공급 체계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고 있다. 중저신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금리 인하가 아니라 은행권이 보다 폭넓게 중금리 시장을 담당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의 중금리대출 확대를 가로막는 건전성 규제부터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포용금융 관련 대출에 대해서는 위험가중자산(RWA) 산정 방식과 자산건전성 분류,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 등을 보다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릴수록 자본 부담이 커지는 구조를 완화해 공급 여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금융회사 평가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 도입을 추진하며 금융회사의 포용금융 활동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지원 규모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금융 접근성 개선과 지원의 지속성, 실효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인센티브와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은행의 영업 전략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새희망홀씨 등 정책서민금융은 은행의 사회적 역할 차원에서 운영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포용금융이 경영 평가 요소로 자리 잡을 경우 중금리 신용대출과 정책서민금융 상품은 단순한 공공성 사업이 아니라 은행의 핵심 영업 전략 가운데 하나로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은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과 정책금융 상품 운영 방향을 점검하며 향후 제도 변화에 대응할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융당국도 대출 확대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고 있다. 중저신용자 금융 공급을 늘리더라도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전제인 만큼 규제 완화와 리스크 관리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한 대출 총량 확대보다 금융회사가 위험을 감내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중금리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과 제2금융권 사이에는 사실상 끊어진 시장이 존재했고 정부는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며 "결국 이번 개편은 금리를 낮추는 정책이 아니라 중저신용자에게 자금이 공급되는 금융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건전성 규제와 포용금융 평가가 함께 바뀌면 은행들도 중금리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포용금융이 단순한 사회공헌이 아니라 영업 전략과 경영성과를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중금리 금융 개편은 이제 시작 단계다. 그러나 이번 변화는 단순한 서민금융 확대 정책을 넘어 은행이 담당하는 금융 영역과 역할 자체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연호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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