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곳곳에 금연 구역이 늘고 있지만 정작 흡연자를 위한 별도의 흡연 시설은 여전히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화문 일대, 홍대 일대, 강남역 일대 등 서울 주요 지역의 경우 상주·유동 인구 대비 공공 흡연 부스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이면도로를 비롯한 골목으로 흡연자들이 몰리고 있다. 흡연 통제 구역을 확장하는 행정에 비해 합법적으로 흡연할 수 있는 분리 공간 설치는 미비한 전형적인 불균형 행정의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사역~논현역 1.5km 구간에 흡연부스 전무, 때려잡기식 행정에 갈 곳 잃은 흡연자들
현재 서울 주요 상권 지역은 대부분 금연 구역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에 따라 지하철역 출입구 10m 이내, 버스정류장, 어린이집 및 유치원 주변 시설까지 금연 구역이 확대되면서 사실상 금연 구역 아닌 곳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실제로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시내 금연 구역은 2012년 7만9000여 곳에서 지난해 30만3859곳으로 약 3.8배 급증했다.
반면 공공 흡연부스 등 실외 흡연시설은 지난해 기준 136곳에 불과하다. 서울시 주민등록 인구 930여만 명 중 흡연율 14%를 적용한 추정 흡연 인구가 약 130만명임을 감안하면 공공 인프라 한 곳당 약 1만 명이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달 24일부터 연초 잎이 아닌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한 액상형 전자담배까지 금연 구역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보건복지부 등 행정당국의 합동 집중 단속이 강화되면서 흡연자들의 설 곳은 더욱 좁아졌다.
일례로 강남대로 신사역에서 논현역으로 이어지는 약 1.5km 구간 내 공식 공공 흡연 부스는 0개다. 직장인들이 밀집한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나 인파가 몰리는 중구·마포구·종로구 등 도심 업무지구 등의 경우에도 흡연시설까지 최소 수백미터는 걸어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로변에서 흡연 공간을 찾지 못한 흡연자들의 발길은 이면도로와 골목길 등을 향하고 있다. 도로와 건물 벽면에 '금연' '흡연 자제' 등의 표지판이 부착돼 있지만 수십 명의 흡연자가 밀집해 담배를 피우는 현상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논현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박진서 씨(39·남)는 "회사 건물 근처에는 흡연구역이 없어 골목에서 담배를 피다가 얼마 전에 단속에 걸려 과태료를 냈다"며 "여기서 회사 생활을 10년 했는데 금연구역만 늘고 흡연구역 생기는 걸 못봤다"고 토로했다. 신사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최지학 씨(52·남)는 "흡연자도 국민인데 꼬박꼬박 세금을 걷으면서 정작 합법적으로 피울 수 있는 공간은 만들어주지 않는다"며
합법적인 흡연 공간 부족은 흡연자들의 불편 외에 또 다른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이면도로, 빌딩 주차장, 주택가 골목, 차도 갓길 등으로 흡연자들이 몰리면서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고충도 점차 커지고 있다. 신사역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조민재 씨(44·남·가명)는 "저녁만 되면 담배꽁초를 치우느라 진땀을 뺀다"며 "나도 흡연자라 손님들이 담배피는 걸 막을 수는 없고 앞에 재떨이로 기름통을 가져다 놓아서 쓰레기라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가 금연구역 규제 대상에 정식 포함되면서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과의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자담배의 경우 일반 연초 담배에 비해 냄새가 적고 재나 꽁초가 발생하지 않다 보니 여전히 길거리나 상가 구석에서 몰래 흡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자담배 이용자 박에덴 씨(29·남)는 "밖으로 나와도 금연구역 안내판만 있을 뿐 어디서 흡연이 가능한지 알려주는 지표가 없고 과태료 부과 대상만 확대되다 보니 흡연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단속에) 걸리지 않고 몰래 피는 방법 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실질적인 수용 공간 마련 없이 규제 중심의 행정만 고집해온 결과라며 전형적인 불균형 행정의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또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공간)을 일방적으로 차단해 발생한 행정적 오류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흡연자들의 행복추구권도 일정 부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금연자의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흡연자와의 조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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