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암=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 프로 데뷔 초기 조기 교체의 눈물을 흘렸던 선수가 월드컵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고,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발탁됐다. 프로축구 K리그1(1부) 강원FC 수비수 이기혁은 2026년 한국 축구에서 가장 가파르게 평가를 바꾼 선수 중 한 명이다.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울산 HD 유소년팀과 울산대를 거쳐 2021시즌 수원FC에서 프로에 입문했지만, 데뷔 초반부터 거친 경쟁과 마주했다. 경기 투입 뒤 이른 시간에 교체되는 경험은 어린 선수에게 작지 않은 상처였다. 그러나 그 눈물은 커리어를 멈춘 장면이 아니라, 이후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게 한 출발점이 됐다.
이기혁은 2023년 제주 SK로 이적했다. 제주에서는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를 오가며 활용 폭을 넓혔다. 본래 중원 자원으로 평가받았던 그는 후방 빌드업, 전진 패스, 왼발 킥 능력을 바탕으로 수비 라인에서도 경쟁력을 쌓았다. 우회로처럼 보였던 포지션 변화는 이기혁이 살아남는 방식이 됐다.
전환점은 강원에서 찾아왔다. 강원은 이기혁을 왼발 센터백으로 활용했고, 그는 미드필더 출신 수비수의 장점을 살렸다. 중앙 수비수와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성에 왼발 빌드업 능력이 더해지면서 팀 전술 안에서 비중도 커졌다. 5월에는 강원의 무패 행진에 힘을 보태며 K리그 이달의선수상까지 받았다.
상승세는 대표팀으로 이어졌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한 이기혁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기혁은 왼쪽 스토퍼로 안정적인 수비와 전진 패스를 보여주며 큰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다.
월드컵 이후 소속팀으로 돌아온 이기혁은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K리그1 17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강원의 0-0 무승부와 무실점에 기여했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그는 “확실히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면서도 “자만심으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조기 교체의 눈물을 겪었던 선수는 이제 월드컵 경험 뒤 스스로를 경계하는 위치에 섰다.
정경호 감독도 이기혁의 변화를 높게 평가했다. 정경호 감독은 월드컵을 다녀온 이기혁을 두고 “대단한 선수”라고 칭찬하면서도 “만족하는 순간 성장은 없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겨울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고, 그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봤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음 무대는 아시안게임이다. 이기혁은 양현준, 엄지성과 함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 와일드카드로 선발됐다. 월드컵에서는 도전자에 가까웠다면, 아시안게임에서는 수비진 중심을 잡아야 할 자원이다. 그는 최후방에서 동료들의 움직임과 호흡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기혁의 5년은 월드컵 경험을 아시안게임 책임감으로 이어가는 단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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