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진찰을 받으러 다녀오려면 두 시간마다 있는 버스를 타고 하루를 꼬박 써야 한다. 서울에서도 병원에 가면 세 시간은 대기해야 한다고 하니, '하루 정도야 가는 김에 큰 마트도 들렀다 온다'고 생각한다. 멀리 다니거나, 더 멀리 다니거나의 차이. 병원은 여기로 다녀도 출산은 큰 병원에 가서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갑자기 진통이 생기면 구급차를 기다리고, 다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야 병원에 도착한다. 장시간을 달려갔는데 거기서 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진통이 아니라 피가 난다면? 양수가 터졌다면? 뉴스에서 이런 일을 볼 때마다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두렵다. 아이를 낳고 나면 두려움이 더 커진다."
분만병원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어느 분만취약지 산모의 인터뷰 내용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정부는 지난 2011년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분만의료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정책을 추진해왔다. 최근 발표된 '고위험 임산부·신생아 의료체계 개선방안' 역시 임신부터 분만, 신생아 진료까지 공공성 강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응급이송체계, 지역 네트워크, 전문인력 지원, 수가 개편을 통한 1000억 원 규모의 건강보험 보상을 모두 담고 있다. 이대로만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또 한 번 가져본다.
그러나 야심찬 계획이 무색하게도, 며칠 뒤 전라북도의 신생아중환자 진료에는 빨간불을 넘어 사실상 정지 신호가 켜졌다. 전북대병원에 단 1명 남아 있던 신생아중환자실 담당 전문의의 사직만으로 권역의 신생아 중환자 진료가 흔들렸다. 현재 지역의 모자의료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낸다. 그토록 많은 정책이 현장에서 이토록 무력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모든 게 "인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반만 맞는 말이다. 마취과 전문의는 이미 포화에 이르렀지만, 심장수술이나 산과 마취는 갈수록 기피분야이다. 그나마 지금 있는 분만 인력을 유지할 길도 요원해 보인다. 한세대 만에 출생인구가 3분의 1토막이 났으니 다음 세대가 출산과 양육의 주체가 될 때는 출산율보다 출산할 인구 자체가 먼저 감소해 있을 것이다. 수요가 사라짐에 따라 시장 원리 안에서 분만기관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앞으로 더 많은 분만 병원이 문을 닫을 것이다.
분만의료체계에서 인력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시스템의 역량을 의미한다. 산과 전문의 최소 요건이 4명으로 설정된 권역모자의료센터에 2명 만 남았다는 것은, 진료 가능한 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듦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의 환자조차 안전하게 책임질 수 없다는 뜻이다. 예측 불가능한 응급 상황과 모성 사망은 고위험 임신이 아니더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비효율처럼 보이는 인력이 응급상황에서는 생명을 지키는 안전망이 된다. 그래서 한 명이 하루 5건의 분만을 감당하는 것은 버겁지만, 10명이 함께라면 50건의 분만도 가능하다. 신생아 중환자 진료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능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즉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고도로 전문화가 되어버린 분만의료에서, 다음 세대를 담당할 젊은 의사들이 바라는 것은 환자가 적고 응급도 없는 편한 병원이 아니다. 충분한 증례를 경험하며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임신·출산·육아를 비롯해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삶이 함께 지속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 남아 있는 사람들이 떠밀려 나가지 않고, 드물지만 이 분야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제도적 보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병원들은 구조적으로 그 보증을 장담하지 못한다. 타이트한 생산성의 논리 안에서 산과, 신생아, 마취과, 간호 인력을 충분히 고용하고 유지할 이유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내는 더 많은 보상수가가 만들어지고 더 많은 지원사업이 생기겠지만, 새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 단편적으로 덧대는 보상들 만으로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근본적인 틀을 재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의료진 못 버티는 불안정 구조의 부담, 결국 임산부·신생아에게 전가된다
지금의 의료체계에서는 병원 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의료기관의 책임이 시작된다.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의 안위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공백으로 남으며, 그 공백을 맨 먼저 온몸으로 감당하는 이들은 임산부와 이제 막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려는 찰나의 신생아다.
임산부들은 임신 기간 중 평균 20회 가까이 병원을 찾는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적정 산전 진찰 횟수(8회)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음 진료일까지, 임신의 안위는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임산부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러 병원을 다니며 중복으로 진료기록을 만든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자신의 상태와 진료기록을 전달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
과잉 이용이 아닐 수 없지만, 각자도생의 환경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안전장치일 뿐이다. 집이든, 도로 위든, 지역의 작은 병원이든, 나에게 어떤 위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의료 체계가 가용한 모든 역량을 다해줄 것이라는 두터운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분만의료가 시장 논리와 개인의 선택에 맡겨질수록, 안전은 더 많은 자원과 정보, 이동성을 가진 이들에게만 유독 유리하게 배분된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신생아의 안전은 개인이 시장에서 구매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삶의 기본 조건이어야 한다.
이제는 공공체계 안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수가를 올리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센터를 지정하고, 전문의를 지원했다. 아무리 봐도 '지원'이라 쓰고 '구매'라고 읽힌다. 민간병원이 계속 분만의료를 맡아주기를 기대하며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유지하지 못하는 영역은 가격 정책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모자의료 협력체계 구상 역시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의료진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한, 임시방편에 그치기 쉽다. 문제는 센터와 전달체계의 부실함이 아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이송망과 모자의료의 최전선을 개별 민간병원의, 더 정확히는 그 병원의 몇 안 되는 분만 담당 의료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지원자가 아니라 운영자이자 최종 책임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의료진이 매달 수익성 평가에 내몰리지 않고, 돈이 되는 환자와 위험 부담이 큰 고위험 환자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분만의료를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의 분만실을, 각자의 수술실을, 각자의 신생아중환자실을 24시간 지키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데 모인 의료진이 서로를 즉시 지원할 수 있는 팀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의 어떤 임신이든 지역과 상황에 관계없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구심이 필요하다. 민간 의료가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구조적 전환은 공공체계 안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공공체계를 둘러싼 그간의 우려들은 그것을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단단한 공공 거버넌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역의 선례는 실마리가 된다. 강원대학교병원의 '안전한 출산 인프라 구축 사업'은 병원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취약지 고위험 임산부를 등록해 병의원과 보건소가 함께 관리하고, 산간 지역 특성을 고려한 '임산부 안심택시'와 분만 임박 산모를 위한 '산모 안심스테이'를 운영한다(☞바로가기). 개별 의료진과 병원의 선의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공공체계 안에서 지역사회와 정부가 직접 책임져야 할 시스템이다. 영월의료원의 사례도 중요하다. 2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2명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지역의 모자의료를 다시 세우고 책임지는 과정은 공공체계가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현실임을 보여준다.
지금 붕괴되고 있는 것은 분만의료가 아니다. 시장에 맡겨진 분만의료다. 의지와 역량을 갖춘 의료진이 동료들과 함께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임산부가 사는 지역과 가진 자원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제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최종 책임자로 전환해야 한다.
더 많은 지원사업으로 버틸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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