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곳 총상 입고도 항일투쟁…독립운동가 마춘걸 생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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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곳 총상 입고도 항일투쟁…독립운동가 마춘걸 생애 재조명

연합뉴스 2026-07-13 09:05: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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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고려신문 공동 사업 26번째 인물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마춘걸 선생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마춘걸 선생

[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스물여섯 번째 인물로 독립운동가 마춘걸(1902∼1938) 선생을 선정해 그의 생애와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한다고 13일 밝혔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서 무장투쟁과 독립운동 조직 활동에 헌신했다.

자유시참변 직후인 1921년 8월 군비단 군사부는 연해주 이만(현 달네레첸스크)에서 조직 명칭을 '고려혁명의용군'으로 바꾸고 3개 중대 체제로 개편했다. 당시 선생은 한운용이 지휘하는 제2중대 제1소대장을 맡아 전선에 투입됐다.

같은 해 12월 벌어진 이만전투에서 제2중대는 모로봉에서 러시아 백위파를 격퇴한 뒤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수천 명의 백위파 증원군이 합류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불리해졌다. 제2중대는 끝까지 항전해 백위파 600여 명을 사살했지만 탄약이 바닥나 철수했고, 이 과정에서 중대장 한운용을 비롯한 대원 46명이 전사했다. 선생도 온몸에 17곳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가 의식을 되찾았다.

192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최계립 등과 함께 무장단체 '적기단'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1937년 스탈린 대숙청 과정에서 간첩 및 반혁명조직 혐의로 체포됐고, 이듬해 최고형을 선고받아 처형됐다.

선생은 1957년 소련 군사법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여러 차례 심사와 재심 끝에 항일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2020년 10월 주러시아 대한민국대사관에서 열린 전수식에서 3대손 마빅토르 씨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후손들은 아직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공식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증손녀 유스베틀라나 씨와 그의 자녀들은 국내에 입국해 현재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고 있으나 특별귀화 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다. 이들은 안산지역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후손 인정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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