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묘 더봄]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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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묘 더봄] 날개

여성경제신문 2026-07-12 10:00:00 신고

“민 여사, 저게 무슨 나무야?”

앞서 걷고 있는 아내의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늘어진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내는 나뭇가지가 있는 산등성을 돌아보느라 어깨에 통증이 오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뭐? 저거요? 밤나무?”

“저게 밤나무야? 밤나무 이파리가 저렇게 깃털처럼 생겼나?”

“저건 이파리가 아니고 밤나무꽃이에요. 꽃.”

아내는 꽃인지 이파린지도 모르냐는 듯 시큰둥하게 말을 던지곤 손목시계를 보더니 걸음을 재촉했다.

“버스 놓치겠어요.”

다음 버스는 오후에 한 번뿐이라 병원 예약 시간에 맞춰가려면 아침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야 했다. 택시를 부르는 방법도 있지만 아내는 논밭을 지나고 개울을 따라 걷는 길을 고집했다. 논에는 찰랑거리는 논물 위로 줄지어 심은 모들이 제법 파랗게 힘을 받고 올라와 있었다. 일찍 모를 낸 논에는 벌써 개구리밥이 떴다는 둥, 모가 며칠 전보다 키가 많이 자랐다는 둥, 논두렁에 제초제를 뿌렸다는 둥 아내는 걸어가면서 내내 혼잣말로 논둑길 풍경을 중계방송하듯 전했다. 

“저런 한 줌도 안 되는 풀이 자라서 우리를 먹이고 키워서 민 여사를 이렇게 늙을 수 있게 한다니. 후후.”

“젊은 영혼이 빠져나가고 힘이 없을 때야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아구, 시를 글로 쓰지 말로 쓰시나. 민 여사.”

아내에게 민여사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아내가 시인으로 등단하고부터였다. 자칭 문학소녀였던 아내는 이사 때마다 오래된 시집을 버리지 않고 싸 들고 다니더니 마침내, 아니 기어코 육십 초반에 이르러 아내의 표현대로 ‘문학판’에 민초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간혹 서류 작성할 때면 직업란에 시인 항목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비출판으로 <민여사 일일> 이라는 시집도 냈다. 문학 모임에 나가면 아내는 민 여사로 통한다는 말에 나도 장난삼아 부르다가 자연스레 아내의 호칭이 되었다.

아내는, 아니 시인 민 여사는 아무것도 없는 손수건에서 장미꽃이 나오고, 비둘기를 날리는 마술사처럼 시를 지었다. 아내가 보고 듣는 일상이 모두 시가 되는 것 같았다. 손녀가 장염에 걸려 죽을 쑤는 일도, 장모님이 택배로 보내준 씀바귀 김치도, <죽을 쑨다> , <김치 택배> 라는 시가 되었다. 얼마 전 마을 입구에 있는 초등학교에 투표하러 갔다가도 운동장에 핀 제비꽃이 백발이 성성한 자신을 알아본다고 시를 쓰는 것이었다. 밤꽃도 못 알아보고 무슨 저런 깃털 같은 나무가 있나, 하는 내 안목으로서는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시인 민 여사는 보고 지나가고, 듣고 지나가고, 생각으로 흘러가면 그만인 것들을 ‘어떻게’ 글자들로 묶어둘 수 있는 걸까. ‘왜’ 사라지는 것들을 잡으려고 하는 걸까. 

거북목을 앞으로 쑥 내밀고 구부정하게 걷는 아내의 뒷모습이 밤꽃처럼 낯설었다. 오른쪽 날개뼈가 얼마 전에 비해 더 솟아올랐다. 셔츠 천이 날개뼈에 걸릴 정도로 불쑥 불거져 있었다. 평생 오른쪽 한쪽 팔만 쓰고 살아온 흔적이지만 엉뚱한 아내 말처럼 날개뼈가 자라나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즘 아내의 몸과 마음은 온통 등 뒤쪽 날개뼈에 쏠려있었다. 아내는 등에 힘을 주면 날개뼈 안쪽에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뼈가 안쪽에서 밀려 나오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날개뼈가 자라나나?”

“날개뼈가 자란다구? 민 여사님, 그럼 꼬리뼈도 자라는 거 아냐?”

“아니, 팔을 옆으로 들기만 해도 뼈가 살을 뚫고 나올 듯이 찌릿한 통증이 와요.” 

아내가 괜한 엄살을 떠는 건 아니었다. 옷을 입을 때마다 사투를 벌였다. 셔츠 소매에 팔이 절반쯤 올라간 상태에서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곤 했다. 

“의사가 말했잖아. 오십견이라구.”

“오십견? 내 나이가 칠십인데 의사는 맨날 오십견 타령이래.”

의사는 아직 수술할 단계는 아니라며 팔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라고 했다. 아내가 날개뼈가 자라는 거냐고 묻자, 의사는 웃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아내는 통증 때문에 수시로 잠이 깼다. 잠을 설친 새벽이면 컴컴한 방에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글을 쓰곤 했다. 어젯밤에도 내내 뒤척거리더니 노트북을 켜 놓은 채 산책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노트북 위에는 새로 쓴 글인지 프린트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옛날 옛적에 철이 든다는 것은, 이월 첫 소(丑)날, 논갈이한다는 때를 안다는 말이지. 이제 논갈이쯤이야 트랙터가 탱크처럼 들어가 갈아엎으면 그만이지. 소도 쟁기도 없는 논갈이를 끝내면 논에 물을 대고 모심기를 하지. 논에 물을 그득하게 대놓으면 파란 하늘도 찰랑거리는 물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보는 때이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논물을 대기는커녕 덤프트럭으로 흙을 받아 논을 메꿔버렸지. 한번 심으면 6년간 그물을 쳐서 응달을 만들어놓는 인삼밭이 되었지. 말하자면 그물 그늘 하우스가 되는 거지. 흙에도 팔자가 있다면 논 팔자가 밭 팔자가 된 거지. 그리해서 논갈이도 모심기도 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조차도 옛날 옛적이 되고 말았지. 

새길이 난 논두렁을 걷는데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려대고 있었지. 하는 수 없이 인삼 밭고랑으로 몸을 피했지. 복병처럼 숨어 있던 새 떼들이 후루루룩 낮게 날아올랐지. 새들은 멀리 날지 않았지. 작은 나뭇가지에 나뭇잎처럼 총총총총 앉았다가 밭고랑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날아앉기를 반복하고 있었지. 그제야 보였지. 음식쓰레기였지. 이제 새들은 창공을 나는 날개를 펼치지 않지.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지. 옛날 옛적 나도 저렇게 살다가 날개를 잃어버렸겠지.

제목도 없는 글은 시인지, 일기인지, 단상 같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랬지, 저랬지, 하는 리듬이 랩송 같았다. 프린트 용지 맨 아래 연필로 휘갈겨 써놓은 메모가 보였다. 

뼈돌기, 뼈가시, 몸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것.
뼈가 자라나기 시작한 건 자기방어 체제가 무너지는 것.
젊은 영혼이 떠나버린 자기 붕괴 신호. 
햇살과 노을과 얼음 같은 겨울 달에 눈물이 나는 것.

싱크대 앞에 서 있던 아내의 굽은 등뼈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게 날개를 달아 날려 보낸 빈 둥지 같은, 아내의 글은, 내게 모두 시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묘 작가·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kkmyo@hanmail.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김정묘 작가·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시와 소설을 쓰며, 명상과 소리선, 글쓰기를 접목한 '글테라피' 문학치유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 명상'을 통해 참여자 내면의 소리를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시집 <하늘연꽃>  외, 소설집 <지금산에 사는 벽려씨> , 산문집 <마음 풍경>  외, 숏-필름(미니픽션 영상) - <오래된 어제> <뼈의 내력> <새의 길> <빗소리> 등이 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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