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유언으로 자녀들에게 남긴 부동산을 생전에 매각하더라도, 이를 유언 자체의 철회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부동산 형태가 현금(매매 대금)으로 바뀌었을 뿐 유언에서 정한 비율대로 재산을 나누려 했던 의사가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사망한 A씨의 자녀 B씨가 “망인 유언의 효력을 확인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6년 부동산을 자녀 4명에게 각각 35%, 35%, 19%, 11%의 차등 비율로 물려준다는 유언증서를 작성했다. 이중 B씨의 몫은 35%였다.
그런데 해당 부동산이 지역주택조합 사업부지에 편입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됐고 A씨는 사망하기 전 2019년 3월 부동산을 조합에 8억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후 A씨가 숨을 거두자 조합은 A씨 자녀들과 개별적으로 합의한 뒤 4명에게 각각 1억7천700만원씩 균등하게 지급한 뒤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그러자 유언장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받기로 했던 B씨는 “부동산이 매각됐어도 유언장 효력은 유효하기 때문에 매매대금도 유언 비율대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민법 제1108조, 1109조를 근거로 B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조항은 “유언자가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 행위로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고, 전후 유언이 저촉되거나 유언 후의 생전 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저촉된 부분의 전 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A씨가 숨지기 전 부동산 매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유언증서의 내용과 다른 행위를 한 만큼, 유언을 철회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특정 목적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그 처분대금 등 변형된 재산에 대한 유언의 효력을 미치게 할 의사를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유언자 사망으로 실질적인 집행이 불가능해진 유언 부분과 유언자의 실제 의사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특히 대법원은 유언증서 작성 당시 이미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활발히 추진 중이었던 점에 주목했다. 망인이 향후 부동산이 매각되어 현금화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봤다. 또 매매계약 당시 자신이 말기 암으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만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유언의 내용을 바꾸려고 한 정황도 없다는 점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A씨는 조합과 계약을 체결한 뒤 19일 만에 사망했다.
대법원은 “A씨에게 부동산 매매대금에 대해서도 유언의 효력을 미치게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서 “부동산을 매도하는 경우에도 부동산 매매대금은 그 부동산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형태가 변경된 것에 불과한 대상 재산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망인의 부동산 매도 행위는 유언증서에 의한 유언과 양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언증서 작성 당시에도 부동산 매도를 전제로 그 대금을 법정상속분과 다르게 배분할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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