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5개월간 신고 건수 16.5%↑·형사입건 인원 50.8%↑
전문가들 "강압적 통제 특성 이해·처벌 강화 등 필요"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지난 5월 제주시 조천읍에서 60대 여성 A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 굴착기로 집을 부수려 위협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술에 취해 굴착기를 몰고 온 60대 남성 B씨는 A씨의 전 연인이었다. 그는 A씨와 헤어진 후 '다시 만나달라'며 굴착기까지 몰고 와 위협했고 이를 말리던 A씨의 아들도 때리는 등 행패를 부리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지난 1월 말에는 한 여성이 '누군가 자기 집 거실과 안방 창문을 열고 들어오려 한다'고 112에 급히 신고했다.
범인은 1년 전 사귀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였으며, 그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처럼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 '교제폭력'이 전국에서 발생하는 가운데 제주에서도 신고가 늘고 있다.
경찰이 상황별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운영하는 등 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교제폭력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사각지대도 나타나고 있다.
◇ 친밀함으로 포장된 폭력, 급격한 증가세
경찰은 2017년부터 112신고 접수 시 코드명칭 항목에 데이트폭력을 신설했고, 2023년부터는 교제폭력으로 용어를 일원화해 관리하고 있다.
12일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 31일까지 교제폭력 112 신고 건수는 819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03건에 비해 16.5%(116건) 증가했다.
신고 건수 중 89명은 형사 입건돼 작년 동기(59명)보다 50.8%(30명) 늘었다.
제주도민의 젠더폭력에 대한 불안도 높은 실정이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지난해 5월 15일부터 6월 20일까지 도내 일반 가구 15세 이상 남녀 1천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도내 여성은 젠더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평균 2.85점으로, 전국 여성 평균 2.64점보다 높았다.
조사에 응답한 979명 중 6%인 61명이 교제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피해자는 여성 85%, 남성 15%였다.
남성 피해자 100%는 '교제 중'에 교제폭력을 당했고, 여성은 '헤어지자고 할 때', '교제 초기'에도 피해를 겪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교제폭력 관련 입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입법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경찰이 실제 만남을 갖지 않고 강압적인 교제를 요구하는 경우에도 교제폭력으로 신고를 받고 있지만, 폭행이나 협박, 스토킹 등이 발생해야 관련 법에 따라 처벌된다.
기존 가정폭력처벌법은 혼인 관계에만 적용되고, 스토킹처벌법은 일방적인 관계에서 스토킹이 발생하지 않으면 적용되지 않아 교제폭력 피해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또한 폭행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경고로 끝나게 된다.
스토킹 시 긴급 조치 통합판단조사표 등을 통해 재범 위험성이 높다면 피해자 주거 등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 여러 조치가 이뤄진다. 또 피해자가 원하면 신고 기능이 있는 스마트워치가 지급돼 재발 시 긴급 알림을 보낼 수 있지만 한계는 있다.
이에 대해 강경숙 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는 "스마트워치는 범행 예방보다는 사건 발생 이후 알리는 조치에 불과하고 접근 금지도 주거지 주변에 불과해 자주 다니는 곳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기도에서는 지난 5일 60대 여성이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전 연인인 50대 남성에게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위험 상황을 알렸지만, 평소 자주 다니는 골목길에서 숨진 뒤 발견됐다.
◇ 불평등·혐오 내재된 강압…제도적 개입 필요
전문가들은 교제폭력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제폭력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그에 따른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교제폭력 특성과 대응을 위한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교제폭력 피해를 예방하고 실효성 있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강압적 통제에 기반한 강제된 동의, 강요된 관계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교제폭력 피해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제폭력은 친밀한 파트너 폭력으로, 폭발적이고 직접적인 폭력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간접적이고 교묘한 양상으로 지속되면서 서서히 완고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압적 통제가 극단적이거나 폭발적인 양상으로 표출되기 이전에 그 과정에 대한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강 대표는 "교제폭력은 불평등한 젠더 권력관계와 혐오가 내재해 있는 것으로, 여성 혐오적 가치관과 태도, 종속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를 설정하고자 하는 강압적 통제가 동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이별 요구를 자신의 통제와 권력이 미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 분노하며 폭력·살해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의 '제주 젠더폭력 실태조사'에서는 교제폭력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도움은 '가해자로부터 보호'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심리상담과 치료'였다. 또 교제폭력 근절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가해자 처벌 강화'로 나타났다.
이연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기 상담부터 심리치료, 법률 지원, 주거 지원까지 하나의 창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통합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구축해야 하며, 명확한 실태 조사와 예방 교육 활동, 가해자 처벌 및 재범 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 강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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