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안나라즈 부국장 인터뷰…국제구호 '갈등민감성' 접근 강조
"우크라이나 전쟁, 잊힌 위기…장기 재난 속 아동 지원 시스템 고민해야"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베네수엘라 강진처럼 대규모 재난이나 전쟁이 터지면 국제사회는 구호물자를 쏟아붓는다. 하지만 물자가 끊긴 뒤 현지 주민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 선의의 물자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는 경우는 없을까.
"선한 의도로 시작된 일이 의도치 않은 해를 입히고 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 복합적 갈등 상황 속에서 인도적 지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월드비전 인터내셔널의 딜샨 안나라즈 평화구축 부국장은 국내 인도적지원·국제개발협력 기관을 대상으로 한 갈등 민감성·평화구축 워크숍 진행을 위해 최근 방한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국제 구호의 핵심으로 '해를 끼치지 않기'(Do No Harm)와 '갈등 민감성'(Conflict Sensitivity)을 꼽았다.
'해를 끼치지 않기'는 의료 윤리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구호 활동이 지역 사회의 갈등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개입 자체를 신중히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시리아, 미얀마 등 주요 분쟁지역에서 20여년간 갈등민감성 및 평화구축 전략을 이끌어온 안나라즈 부국장은 케냐 북서부 투르카나의 난민캠프를 대표 사례로 꼽았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각국에서 흘러들어온 난민 수십만 명이 국제사회 지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월드비전 또한 난민들을 대상으로 식량과 식수, 현금 등을 지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난민캠프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살고 있던 주민들은 일정 수준의 지원을 보장받는 난민들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민들이 가장 취약층이라고 생각해 지원했는데, 의도하지 않았던 갈등이 생긴 것이죠. '호스트 커뮤니티'라고 부르는 지역 주민들도 오랫동안 실업, 기근 등 수많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안나라즈 부국장은 "국제사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난민과 지역 주민 모두에게 균형 있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며 "그 과정에서도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어 다양한 지역 공동체와 꾸준히 대화하며 해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례가 결코 예외가 아니라고 말했다.
인도주의 위기 현장에서는 단순한 구호물자 지원만으로는 지역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고,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장기적인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인도주의-개발-평화 연계 접근'(HDP Nexus)이 새로운 대응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안나라즈 부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과거에는 구호와 개발, 평화 구축을 각각 별개 단계로 여겼지만, 지금은 세 영역이 하나의 순환 과정으로 이어진다"며 "분쟁과 재난이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긴급 지원에 그치지 않고 회복과 개발, 갈등 완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은 최근 강진 피해를 본 베네수엘라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진 발생 3∼6개월 이후부터는 심리·사회적 회복과 생계 지원, 직업 훈련, 농업 교육 등 중·장기 단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긴급구호가 끝났다고 재난 대응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새로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지역사회가 스스로 회복하고 다음 재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HDP 넥서스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안나라즈 부국장은 4년 넘게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우크라이나는 초창기 많은 공여 기관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이를 '잊힌 인도주의 위기'라고 부릅니다."
그는 "가장 취약한 아동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며 "장기화한 재난 속에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립하는 것이 과제"라고 설명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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