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청산 가능성이 커진 홈플러스가 대규모 할인 행사를 이어가면서 전국 매장에 소비자들이 대거 몰리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홈플러스 점포 모습. / 연합뉴스
11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는 홈플러스 매장 내부 사진이 잇따라 게시됐다. 계산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담긴 사진들로, 한 이용자는 계산 줄이 30분 이상 이어진다는 현장 상황을 전했다. 특히 인기를 끈 품목은 반값에 나온 자체 브랜드(PB) 상품이었다. 홈플러스 PB 상품인 '아보카도 오일'이 기존 가격에서 50% 할인된 7450원에 판매된다는 안내판 사진이 공유되면서, 이를 본 다른 이용자들은 당장 사러 가야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매장을 찾은 한 소비자는 사실상 마지막 재고 정리 성격의 행사로 보인다면서도, 할인 폭이 커 줄을 서서라도 살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건도, 손님도 없어 썰렁함만 감돌았던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매장 안은 '보물 찾기' 경쟁이 펼쳐진 듯 이곳저곳을 누비는 소비자들의 열기로 후끈했을 정도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발길이 끊겼던 매장에 할인 소식이 퍼지자 순식간에 인파가 몰렸다.
이 같은 재고털이로 인한 인파는 서울회생법원의 결정 이후 나타났다.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지난 3일 홈플러스에 대한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부 매각은 성사됐지만 나머지 대형마트·온라인 등 잔존 사업부에 대한 인수합병은 이뤄지지 않은 채 영업이 지속되면서, 매출은 줄어드는 반면 급여와 물품대금, 조세 등 공익채권은 급증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회생계획을 수행하려면 최소 200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지만 끝내 조달되지 못했다는 것이 폐지 결정의 핵심 이유였다. 법원은 홈플러스의 청산가치가 기업을 존속시키는 경우보다 크다고 판단해, 수정 회생계획안을 관계인집회에 상정하지 않고 절차 자체를 종료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결정이 곧바로 파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즉시항고 기간 안에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해 항고할 경우,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관계인집회를 다시 열 수 있는 '재도의 고안' 절차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나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혹은 제3의 인수 후보가 2000억원을 마련해내면 회생절차 폐지는 유보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파산 절차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현장 분위기는 본사의 '정상화' 메시지와는 온도차를 보인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는 '전품목 50% 할인' 안내문이 곳곳에 붙었지만, 채소·육류 등 신선식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 빈자리는 홈플러스 PB '심플러스' 상품으로 급하게 채워진 상태였다. 와인 매대도 텅 비어 있었다. 시설관리와 청소를 맡던 용역 인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일부 매장 직원들이 시설관리 업무까지 떠맡는 등 사실상 비상운영 체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는 이미 지난 1일부터 핵심 서비스인 온라인 당일배송 '매직배송'을 전면 중단했고, 온라인 고객센터 운영도 멈췄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규모 할인이 단순한 고객 유인책이 아니라 재고 정리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후속 대책으로 노동자에게 체불임금 대지급금과 저금리 생계비 융자를, 협력업체에는 44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조와 입점업체 측은 이런 지원이 사실상 폐업을 전제로 한 사후 수습책에 머물러 있다며, MBK파트너스의 책임 있는 자금 투입과 정상화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즉시항고 시한까지 유의미한 자금 조달 소식이 나오지 않을 경우, 채권자나 홈플러스 스스로의 신청에 따라 파산 선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전국 매장의 정리 매각과 청산 절차가 본격화할 전망이며, 지금의 할인 행사 역시 사실상 재고 소진을 위한 마지막 절차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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