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두고 치열한 기싸움
트럼프, 대화 완전 걷어차지는 않아…이란도 "MOU 준수만이 해법"
이란, 미 요구한 '호르무즈 공격 더 안한다' 선언 수용에 촉각
(서울=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휴전 종료'를 선언하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얼어붙고 있지만, 관련국들은 물밑에서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일면 외견상으로는 전면전 복귀까지 불사하겠다는 식의 강 대 강 대치가 위태롭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수면 밑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서로의 마지노선을 두드려가면서 향후 재개될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오만·파키스탄 등 관련국들은 각자 외교 채널을 동원해 최근 무력 충돌에 이은 사태 수습을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전화 통화를 하고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악시오스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접촉한 것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역시 대표적인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와 통화에서 최근 긴장이 고조된 역내 상황을 논의했다.
샤리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란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에 자제를 촉구하는 한편, 종전 MOU를 준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파키스탄 총리실이 전했다.
핵심 중재국 중 하나인 카타르도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카타르 측 중재단은 미·이란 간 갈등을 완화하고 협상 재개를 중재하기 위해 이날 이란을 방문했다고 미 CNN 방송이 전했다.
그간 카타르는 미국과 이란 사이를 오가는 대화의 '전령' 역할을 하면서 양측 간 대화가 막혔을 때 혈로를 뚫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카타르 측의 방문은 미국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란 역시 카타르 중재단의 방문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종전 MOU가 형해화할 위기에 처한 국면이지만 미국과 이란이 다음 대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간접 대화 채널은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싸고 충돌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공히 대화 동력을 아주 꺼뜨리지는 않겠다는 데 일정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 재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기존 MOU의 틀을 유지하며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안에 정통한 한 외교관은 "양측 모두 MOU로 복귀하길 원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악시오스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휴전 종료'를 선언하면서도 이란과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용 수사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때마침 이란의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 일정이 9일로 마무리되면서 미국과 이란의 다음 대화가 곧 성사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악시오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다음 주 스위스에서 미국과 이란의 추가 협상이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결국 최근 이어진 국지적 무력 충돌의 배경에는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미국과 이란의 치열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이번 공습을 계기로 이란의 고질적인 도발 리스크를 제거한 뒤 다음 단계 대화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 측에 호르무즈 해협 내 상선 공격을 중단하고 모든 항로를 통행료 없이 개방하겠다는 내용의 '공개 성명' 발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과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이날 일부 기자들과의 비공개 브리핑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모든 수로가 개방돼 있고 더 이상 선박을 향해 발포하지 않는다는 공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그런 성명을 내놓지 않으면 그들에게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1일 호르무즈 해협 맞은편 연안국인 오만을 방문해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양측은 상대방의 대화 의사를 두고도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측 한 관계자는 이란이 이번 주 초 충돌 직후 미 행정부에 접촉해 분쟁 해결을 위한 추가 대화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반면 바가이 대변인은 이란이 미국에 먼저 협상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이란은 카타르 중재단의 논의 요청에 응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양측의 충돌을 부른 근본적 원인은 모호하게 처리된 종전 MOU 조항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전 MOU 5항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최선의 조처를 하되, 이란이 연안국의 주권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해상 서비스를 규정하기 위해 협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조항이 각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면서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란은 MOU 9항을 위반하고 있는 이른바 미국의 재무장관이라는 자와 달리 약속을 지켜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자금 조달책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자 즉각 반발한 것이다. MOU 9항은 최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미국과 이란이 현상을 유지하기로 합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라그치 장관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MOU) 상호 준수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해 이란 역시 대화를 완전히 걷어찰 생각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mskwak@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