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장윤기도 누린 친족특례, 경찰은 왜 바뀌지 않나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시간들] 장윤기도 누린 친족특례, 경찰은 왜 바뀌지 않나

연합뉴스 2026-07-11 07:30:01 신고

3줄요약

선진국 유일 무제한 친족특례, 한국전쟁 상흔 반영

장윤기 사건에 부친 경찰과 동료 증거인멸 정황

지방경찰은 형님언니 문화 팽배, 인사개선 시급

영장심사 마친 '장윤기 사건' 증거 인멸 혐의 경찰관 영장심사 마친 '장윤기 사건' 증거 인멸 혐의 경찰관

(전남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혐의 등을 받는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장 A 경감이 8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법정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6.7.8
daum@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한국전쟁은 유교가 오랫동안 지탱해 온 가족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빨갱이'와 '반동분자'라는 낙인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마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당국에 신고해야 했다.

전쟁 속에서 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목격한 입법자들은 정전 직후인 1953년 형법을 제정하면서 유교적 가족윤리와 형법의 '기대가능성' 원칙을 반영해 친족 특례를 도입했다. 친족이 범인을 숨기거나 증거를 인멸했더라도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제도다.

이 면책은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과 검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한국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미국은 친족이라도 범인 도피나 증거인멸에 가담하면 사법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 일본은 법원 판단에 맡긴다.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이 흐르면서 가족의 모습도, 국가의 역할도 크게 달라졌다. 전쟁의 상처와 유교적 가족관이 낳은 예외 규정은 이제 공직자가 직무상 권한과 정보를 이용해 친족의 범죄를 감추는 방패로 악용되기도 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한발 물러섰던 제도가 오히려 공권력의 신뢰를 허무는 역설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일가족 살인범 현장검증, 증거인멸 도운 삼촌 무죄 일가족 살인범 현장검증, 증거인멸 도운 삼촌 무죄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전주 일가족 살해사건' 현장검증에서 피의자 박모(25)씨가 7일 오후 전북 전주시 송천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범행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2013.2.7
sollenso@yna.co.kr

광주 장윤기 살인사건은 이런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직 경찰관인 부친은 아들의 범행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3년 20대 남성이 부모와 형을 살해한 전주 일가족 살인사건과 판박이다. 경찰관이던 외삼촌은 "조카가 자살할까 걱정됐다"며 범행 차량 세차를 지시하는 등 중거 인멸에 관여했지만, 그 역시 친족 특례로 면죄부를 받았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장윤기 검거 이후 광주 경찰 조직의 대응이다. 장윤기 부친의 증거인멸을 사실상 도왔고 사건 직후 내부 대책회의까지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을 그토록 숨기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요즘 경찰 조직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성희롱 시비와 꼰대 갑질 논란을 의식해 거친 말을 삼가고 회식조차 조심하는 분위기다. 경찰대, 경위공채(간부후보), 변호사, 순경 등 입직 경로가 다양해졌고 승진 경쟁도 치열하다. 내부 신고와 제보, 심지어 악의적인 투서도 난무할 만큼 봐주기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의 현실은 '서울'과 다르다.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얽힌 '끼리끼리 문화'가 여전히 법과 원칙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다. 승진할 자리가 제한적이다 보니 경쟁보다 동료 의식과 연고 의식이 강하게 작동한다. 지역 유지와 토착 기업, 정치권, 전·현직 경찰이 형님·언니로 엮여있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서로 잘못을 덮어주는 폐쇄적 문화가 남아 있다.

'장윤기 비상' 걸린 경찰 '장윤기 비상' 걸린 경찰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장윤기 사건'을 둘러싼 경찰 부실수사 및 유착 논란이 커지자 미국 출장 중 조기귀국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경찰 수사 신뢰제고를 위한 쇄신 방안 등을 논의하는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6.7.10
pdj6635@yna.co.kr

이번 사건은 지방 경찰 조직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경찰은 하위직도 검사처럼 일정 기간 타지역 순환근무를 의무화하는 등 인사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에서 '썩은 물'이 되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시대 변화에 맞게 친족 특례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 가족을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는 존중돼야 하지만, 공직자가 직무상 권한과 정보를 이용해 친족의 범죄를 은폐하는 행위까지 면죄부를 주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법은 과거의 상처를 기억해야 하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

jahn@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