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일자리는 남아공인 위한 것"…매주 목요일 불법이민 반대 시위
이민자 혐오 이면엔 '정치'가…11월 지방선거 앞두고 불법이민 화두로
한국인 기자 안전 걱정해 30분 함께 걸어준 주민들 마음에서 해결 실마리 기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불법 이민자 유입이 너무 많아요. 우리나라가 가진 파이는 너무 작은데요, 정부가 국경을 관리하지 않아요. 외국인 범죄율도 너무 높아요. 이 사람들은 등록이 안 돼 있으니 추적을 할 수도 없어요. 이들은 마약을 팔고, 애들을 납치하고 집을 털고 여자를 강간해요. 경찰도 공격해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우리 실업률이 너무 높잖아요? 우리 일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 사람들은 임금을 적게 줘도 되니까요. 남아공 노동법이 오히려 남아공 사람들을 직장 밖으로 내쫓고 있어요. 저임금 노동을 감수하는 불법 체류자들 때문에 남아공 국민은 일자리가 없어 밥도 못 먹은 채 잠자리에 드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우리가 학대받고 있는 거예요. 희소한 기술을 가진 경우만 받으라는 거예요. 기본적인 일자리는 남아공인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9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소웨토 지역 딥스클루프에서 열린 불법 이민 반대 시위 맨 앞줄에서 '아바함베(Abahambe 또는 Mabahambe·그들은 떠나야 한다는 뜻의 줄루·코사어)' 구호를 외치던 포샤 씨는 시위를 통해 바라는 바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냈다.
'마치 앤드 마치'(March and March) 등 남아공 내 불법 이민자 반대 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자체적으로 정한 이른바 '출국 시한'이 지나고서도 "남아공 내 불법 이민자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매주 목요일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역시 전국 곳곳에서 거리 행진을 벌였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국민을 배신하지 말라", "동네 상점은 현지인에게', "불법 이민자는 떠나라" 등의 문구를 적은 손팻말과 막대기를 든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3시간가량 행진한 뒤 현지 경찰서를 찾아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행진 도중에는 대규모 경찰 병력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이동해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 막바지에는 문을 닫은 파키스탄인 상점 앞으로 단체로 몰려가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치는 등 분위기가 과격해졌다.
파키스탄인 상점에서 판매한 불량식품 때문에 어린이가 숨졌다고 주장하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요하네스버그 내 다른 지역인 알렉산드라에서 벌어진 시위는 더 과격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일부 시위대는 외국인 거주지역을 돌며 '이민자들은 떠나라'고 압박했고, 닫힌 상점마다 문을 두드리며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문을 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불법 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일으킨다는 시위대의 주장은 30%를 넘는 실업률,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강력범죄에 대한 불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곤층의 생계난, 그리고 "이들 문제의 원인은 불법 이민자"라는 일부의 선동이 뒤섞이면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높아지는 목소리에 불법 이민자들이 실제로 남아공 경제를 해치고 범죄율을 높이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등의 차분한 말이 파고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남아공 범죄나 실업, 경제난의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불법 이민자들에 관한 공식 통계가 존재하지 않기에 남아공 내 이민자 규모와 경제활동, 범죄 연루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지 언론에서조차 남아공 내 반이민 정서로 외국인이 떠나면서 도심 운수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외국인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가 나온다.
남아공 내 반이민 시위의 역풍으로 이웃 모잠비크에 여행 간 남아공 관광객이 현지 식당에서 쫓겨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 전문가는 1990년대 아파르트헤이트(백인정권의 흑인 분리·차별 정책) 종식 후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남아공으로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서 이들을 겨냥한 혐오가 주기적으로 표출돼 왔고, 그 이면에는 '정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남아공에선 오는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법 이민자 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른 이슈를 모두 가리는 형국이다. 반이민 시위를 이끄는 '마치 앤드 마치'의 자신타 응고베세-주마 대표는 여느 정치인 못지않게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디언은 최근 '남아공은 어떻게 반(反)아프리카 운동을 만들어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를 보면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파시즘과 보수주의, 그리고 희생양을 찾는 정치가 등장한다"는 남아공 문화사학자이자 작가인 페조쿨레 음톤티의 말을 전했다.
음톤티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외국인 혐오를 넘어 국가의 실패와 경제적 좌절에 대한 분노가 가장 취약한 집단을 향해 표출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가 경제적 안전망과 공공서비스 제공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남아공인과 이민자 모두가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처지에 놓였고, 그 결과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은 남아공 현지 언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간 데일리 매버릭은 최근 칼럼에서 '마치 앤드 마치'와 같은 반이민 단체의 부상은 국가 실패의 책임을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위험한 흐름을 보여준다며,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흑백을 넘어선 화합을 추구해 '무지개 국가'로 불린 남아공의 역사적 유산을 훼손한다고 우려했다.
또 실업과 빈곤, 행정 실패의 책임을 외국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정치적 희생양 만들기에 불과하다면서 남아공 사회가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라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연대 위에 세워진 자유와 민주주의를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탄자니아와 잠비아, 모잠비크, 앙골라, 보츠와나 등이 남아공 백인 정부가 불법화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부에 피난처를 제공하고 훈련기지를 운영했으며, 나이지리아는 공무원 급여에서 이른바 '만델라 세금'까지 걷어 남아공 해방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남아공 헌법학자 나니아 볼러-뮬러는 일간 소웨탄 기고문에서 최근의 외국인 혐오는 그 대상이 된 이민자를 넘어 남아공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우려했다.
현행 헌법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를 극복한 기반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불법 이민자 또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우분투' 정신의 정반대에 서 있다는 지적이다.
반복되는 시위와 우려 속에 남아공은 이번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다시 화합의 대명사인 '무지개 국가'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연말 선거가 지나가더라도 실업과 경제난이라는 큰 과제 탓에, 깊게 팬 골을 메우기는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크다.
그래도 소웨토 시위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일면식도 없는 한국인 기자가 혹여 성난 군중과 시비가 붙거나 주변에 나쁜 마음을 먹은 이가 휴대전화라도 빼앗아 갈까 걱정한 여러 주민들이 차 타는 것까지 보고 가겠다며 30분을 함께 걸으며 동행해준 그 마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본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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