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온이 오른 바다에서 태어난 정체불명의 '잡종 복어'가 살과 껍질에까지 독을 품고 있다면? 복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등골이 서늘해질 이야기가 최근 인터넷 기사를 타고 퍼지면서 ‘이제 복어를 뭘 믿고 먹느냐’는 불안이 번졌다. 수산물 전문가 김지민이 이 같은 불안에 제동을 걸었다.
복어 / '입질의추억TV' 유튜브
김지민은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입질의추억TV'에 '손질하면 괜찮다? 믿었다간 큰일!... 상식 뒤집은 잡종 복어의 실체를 알립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은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지 따져봤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그는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먼저 문제가 된 기사의 주장은 이렇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따뜻한 물을 찾아 남쪽에서 북상한 복어들이 원래 살던 다른 복어와 만나 교배했고, 그 결과 '잡종 복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김지민은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68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주변 바다 수온이 전 세계 다른 바다보다 가파르게 올랐다"며 "그러다 보니 명태나 오징어 같은 찬물 어종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어종이 나타나는데, 잡종 복어도 그 예로 지목된 것"이라고 기사 내용을 소개했다.
기사가 이 잡종 복어를 위험하다고 본 이유는 독이 있는 부위 때문이다. 김지민은 "우리는 보통 복어 독이 내장이나 알집에 몰려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잡종 복어의 경우 살이나 껍질에도 독이 퍼질 수 있어, 믿고 먹기 힘들어졌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김지민은 이 주장의 핵심 전제부터 무너진다고 봤다. 기사가 예로 든 잡종은 '참복'과 '자주복'이라는 두 고급 복어가 섞인 것인데, 이런 잡종이 최근 수온 상승 때문에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참복과 자주복이 교배해 나온 잡종은 사실 수십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생선 바이블'을 근거로 들었다. 김지민은 "자주복과 참복은 생김새가 워낙 비슷해 1940년대까지는 아예 같은 종으로 여겨졌다"며 "이후 연구가 쌓이면서 두 종으로 나뉘었다. 크기도 차이가 나는데, 자주복은 최대 70㎝가 넘는 대형인 반면 참복은 40㎝ 정도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주복이 더 크고 맛도 좋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양식으로 길렀지만 참복은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복어 / '입질의추억TV' 유튜브
그런데 최근 들어 두 종이 사실은 같은 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지민은 "2019년쯤 부경대 연구진이 참복과 흰참복이 사실은 자주복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 변이라는 결론을 냈다"며 "두 종의 차이가 서로 다른 종이라서 생긴 게 아니라 같은 종 안에서 개체마다 나타나는 차이일 뿐이라는 사실이 DNA 분석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민은 참복과 자주복을 구별하는 방법도 설명했다. 그는 "두 복어 모두 가슴지느러미 근처에 큰 검은 점이 있는데, 여기까지는 똑같다"며 "차이는 등과 뒷지느러미에서 난다. 참복은 등에 점이 없거나 두세 개뿐이지만, 자주복은 몸통에 검은 점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이어 "뒷지느러미는 자주복이 흰색, 참복이 검은색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지민은 기사에 실린 사진 속 복어들이 바로 이런 특징들이 뒤섞인 개체라고 봤다. 그는 "사진 속 한 마리는 등에 점이 없어 참복처럼 보이는데 뒷지느러미는 자주복처럼 희다. 반대로 다른 한 마리는 점이 많아 자주복 같은데 뒷지느러미는 참복처럼 검다"며 "어느 쪽이든 참복과 자주복이 섞인 잡종이 맞는다"고 했다. 다만 이런 잡종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인 만큼 새로운 위협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지금도 참복과 자주복을 다른 종으로 취급할까. 김지민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추측이라며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돈 문제다. 그는 "일본은 세계에서 복어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이고, 자주복은 크게 길러 상품성을 높인 대표적 양식 브랜드"라며 "그런데 참복과 자주복이 같은 종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비싸게 팔리던 자주복의 가치가 떨어지고 가격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안전 규제 문제다. 김지민은 "잡종이 무분별하게 생긴다고 공식 인정하면 어느 부위를 먹어도 되는지 법으로 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진다"며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일본 정부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복어의 내장과 알에는 맹독이 있다. / '입질의추억TV' 유튜브
그렇다면 '독이 든 부위'는 어디일까. 김지민은 "복어는 종류와 상관없이 독이 있는 부위가 거의 정해져 있다"며 "간과 알집, 내장은 대부분 맹독이라고 보면 되고, 먹을 수 있는 부위는 살과 껍질, 뼈, 그리고 수컷의 정소(이리)"라고 했다.
문제는 껍질이다. 그는 "따뜻한 물에서 잡힌 복어는 껍질에도 독이 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이건 잡종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사느냐의 문제다. 같은 종이라도 남쪽 따뜻한 바다에 사는 개체일수록 껍질에 독이 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잡종이라서 껍질에 독이 생겼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는 지적이다.
김지민은 기사가 공포감을 부추긴다고 봤다. 그는 "제목만 보면 서로 다른 두 종이 이상하게 교배해 위험한 돌연변이가 나타난 것처럼 읽힌다"며 "하지만 이 잡종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잡종이라고 해서 못 먹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조회수를 위해 제목을 과장하는 것과 사실 자체가 틀린 것은 다른 문제"라며 "이 경우는 과장을 넘어 사실 여부가 어긋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지민은 우리가 실제로 먹는 복어 대부분은 양식이라는 점을 결정적 근거로 들었다. 그는 "복집에서 먹는 참복과 자주복은 대부분 양식이고, 그중에서도 독이 없는 복어가 대부분"이라며 "게다가 법에 따라 복어 조리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손질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지민은 영상을 올린 뒤 설명란에 정정과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펴낸 '안전한 복어 섭취를 위한 복어도감'을 확인해 보니, 자신이 반박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사가 위험하다고 한 참복·자주복 잡종에 대해 식약처는 부경대 연구 결과를 반영해 식용이 가능하다고 적어뒀다"고 밝혔다.
복어 / '입질의추억TV' 유튜브
그는 조심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고 짚었다. 김지민은 "식약처 도감은 자주복과 검복의 잡종을 경고하고 있다. 이 잡종은 껍질에서 기준치의 8배가 넘는 독이 나와 주의가 필요한데 정작 기사는 이걸 다루지 않았다"며 "위험하지도 않은 참복·자주복 대신 실제로 위험한 자주복·검복 잡종을 다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기사를 반박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도감에 담긴 자주복·검복의 위험성을 놓쳤다. 결과적으로 혼선을 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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