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20%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왜 샀느냐'보다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경영권 도전보다 향후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분석이 자본시장 전반에서 힘을 얻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이날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20.15%까지 늘렸다. 이에 재계와 투자업계의 시선이 다시 한진그룹 지배구조로 향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 투자'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대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의 지분 격차를 0.42%p까지 좁힌 만큼 단순한 재무적 투자로만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향후 산업은행의 투자금 회수 시점까지 거론되면서 호반의 지분 확대는 단순한 주식 매입을 넘어 미래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전략이라는 해석이 업계 중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반이 지금 당장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언제든 지배구조 변화 국면에서 핵심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호반의 항공산업 관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시장에선 2015년 금호산업 인수전이 호반의 항공업 진출 의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한다.
당시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였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경영권까지 확보할 수 있는 구조였다. 호반건설은 본입찰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인수 의사를 나타냈지만, 가격 차이와 박삼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우선매수권 행사 등으로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항공산업을 향한 관심은 이어졌다. 지난 2022년에는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며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어 2023년에는 팬오션이 보유하던 지분까지 추가 매입했고, 이후에도 장내 매수를 지속하며 올해 지분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10년 가까운 투자 흐름을 놓고 보면 우발적인 투자라기보다 항공산업을 꾸준히 염두에 둔 전략적 접근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분석한다.
다만 시장에서는 호반이 곧바로 경영권 확보에 나설 가능성에는 대체로 선을 긋는다. 현재 조원태 회장 개인 지분은 20%대 초반이지만, 델타항공과 산업은행 등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호반과의 격차는 상당하다. 단순히 호반의 추가 매수만으로 경영권을 흔들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럼에도 이번 20% 돌파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증권가에선 향후 한진그룹 지배구조에서 가장 큰 변수로 산업은행의 보유 지분을 꼽는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했지만, 정책 목적이 달성되면 투자금을 회수하는 절차가 불가피하다. 결국 언젠가는 지분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IB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 호반이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지, 다른 투자자와 연대할지, 또는 조원태 회장 측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현재 확보한 20% 이상의 지분만으로도 향후 모든 협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운송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재 단계에서는 경영권 장악보다 협상력을 확보하는 의미가 더 크다"며 "20% 수준의 지분은 향후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되더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호반은 이날 공시에서 주식 보유 목적을 여전히 '단순 투자'로 명시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 목적을 명시할 경우 공시 의무가 강화되고 거래상 제약도 늘어난다. 반면 단순 투자 목적을 유지하면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실제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 사례를 보면 상당수 투자자가 초기에는 단순 투자로 접근한 뒤 필요에 따라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방향을 바꾼 사례가 적지 않았다. 물론 현재까지 호반은 사외이사 추천이나 정관 변경 요구 등 경영 참여 행보를 보인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당장 행동주의를 선언할 가능성은 낮지만, 선택지를 열어둔 상태"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호반의 투자 배경에는 대한항공의 장기 성장성도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중복 노선 조정과 규모의 경제 효과, 화물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수익성이 한 단계 개선될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리포트에서 통합 이후 비용 절감과 국제선 회복,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등을 대한항공의 핵심 투자 포인트로 제시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한진칼 역시 이러한 기업가치 상승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항공기와 정비(MRO), 공항 인프라, 호텔, 물류 등 그룹이 보유한 자산 가치까지 감안하면 장기 투자 매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건설 경기 둔화 국면에서 호반이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갖춘 글로벌 운송기업 지분을 확대하는 것 역시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호반의 최종 목적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고, 장기 가치투자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반대로 향후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전략적 투자자로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다만 여러 가능성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는 시나리오는 '협상력 확보'다. 20%가 넘는 지분은 주주총회는 물론 향후 자본정책과 지배구조 개편, 대규모 지분 거래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갖는다.
경영권을 직접 확보하지 않더라도 그룹과의 전략적 협력, 주주가치 제고 요구, 배당 정책, 이사회 구성 등 다양한 국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호반의 한진칼 투자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산업은행의 엑시트 시점, 조원태 회장 측 우호 지분의 변화, 추가 지분 매입 여부 등 여러 변수가 남아 있는 만큼, 한진칼은 당분간 실적뿐 아니라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까지 함께 반영하는 대표적인 '경영권 프리미엄' 종목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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