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 같은 국가 비상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은 마트로 달려가 라면과 생수를 먼저 챙긴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 선조들은 전쟁이나 피란길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챙겼을까.
답은 곡식을 찌고 말린 뒤 곱게 빻아 만든 '미숫가루'다. 지금은 더운 날 얼음을 띄워 마시는 고소한 음료로 익숙하지만, 역사 속 미숫가루는 전쟁터와 먼 이동길에서 허기를 달래준 비상식량이었다.
곡물을 익힌 뒤 말려 가루로 만든 음식이라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물만 있으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밥을 지을 시간도, 큰 솥도 없는 상황에서 미숫가루는 군사와 길손의 배를 채워주는 든든한 양식이었다.
신라 화랑부터 조선 군사까지 챙긴 휴대 식량
우리나라에서 미숫가루와 비슷한 곡물가루를 먹은 역사는 오래됐다. 삼국시대 신라 화랑들은 산과 들을 다니며 몸과 마음을 단련할 때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곡물가루를 챙겼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 에는 8세기 신라 승려 진표율사가 먼 길을 떠날 때 쌀을 쪄서 말린 양식을 챙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오늘날 미숫가루와 같은 형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곡식을 익혀 말린 뒤 오래 두고 먹는 방식은 당시에도 쓰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유사>
조선 시대에도 미숫가루는 군사들의 중요한 휴대 식량이었다. 세조가 북쪽 변방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아갈 때, 미숫가루는 이동 중 허기를 달래는 음식으로 쓰였다.
전쟁터에서는 밥 한 끼를 짓는 일도 쉽지 않았다. 가마솥과 땔감을 챙겨야 했고, 불을 피우는 동안 이동 속도도 늦어졌다. 반면 미숫가루는 물에 타기만 하면 먹을 수 있어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군사들에게 알맞은 양식이었다.
중국과 몽골에서도 쓰인 전투 식량
미숫가루처럼 곡물을 익혀 말린 가루음식은 한반도 밖에서도 쓰였다. 16세기 명나라 장수 척계광은 해안가를 습격하던 왜구를 막기 위해 군사들에게 곡물가루 형태의 휴대 식량을 나눠줬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음식은 밥을 짓는 시간을 줄여줬다. 군사들은 짧은 시간에 허기를 채우고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적을 상대해야 했던 전쟁터에서 가벼운 식량은 큰 도움이 됐다.
몽골에서도 비슷한 곡물 가루음식이 먹혔다. 몽골 제국 시기에는 고려 문화가 몽골에 전해졌고, 곡물가루에 우유나 버터를 섞어 먹는 방식도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
마른 가루는 무게가 가볍고 부피가 작다. 물이나 우유만 있으면 먹을 수 있어 먼 길을 이동하는 유목민과 군사에게 잘 맞았다. 미숫가루가 단순한 여름 음료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동과 전쟁에 맞춘 식량이었던 이유다.
오래 보관되는 미숫가루, 빈속에는 천천히
미숫가루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보관이 쉽기 때문이다. 곡물을 찌거나 볶은 뒤 바짝 말려 가루로 만들면 수분이 줄어든다. 수분이 적으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17세기 생활서 <산림경제> 에도 곡물가루를 물에 타 먹으면 오랫동안 허기를 견딜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큰 힘이 됐다. 산림경제>
오늘날 미숫가루는 바쁜 아침이나 더운 날 간편하게 마시는 대용식으로 많이 찾는다. 곡물의 고소한 맛이 나고, 물이나 우유에 타면 빠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빈속에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마시면 속이 더부룩할 수 있다. 가루음식은 물을 만나 배 속에서 불어나기 쉽다. 위장이 예민한 사람은 한 번에 들이켜기보다 천천히 마시는 편이 낫다. 식사 대신 마실 때는 너무 달게 만들지 말고, 물이나 우유에 적당량만 타서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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