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경의 나비효과] 홈플러스 파산 수순… 함께 저무는 3代의 추억, 30년의 일자리, 당신의 노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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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경의 나비효과] 홈플러스 파산 수순… 함께 저무는 3代의 추억, 30년의 일자리, 당신의 노후자금

폴리뉴스 2026-07-10 08:04:55 신고

[편집자주] 어떤 회사는 상호가 아니라 멜로디로 기억된다. TV에서 흘러나오던 홈플러스의 흥겨운 CM송을 여태 흥얼거릴 수 있는 세대에게, 요즘 들려오는 소식은 낯설고 아프다. 이 회사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전편에서 기록했다. 덜 기록된 것은 이 회사가 무엇을 만들었는가다. 마트를 배움의 장이자 놀이터로 바꾸고, 백화점의 와인을 장바구니 가격으로 끌어내리고, 섬 하나에 유통의 사관학교를 세웠던 회사. 잘못 없이 두 번 팔렸고, 세 번째 주인 아래서 금고가 되었던 회사.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정치가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도.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홈플러스를 둘러싼 논의는 온통 책임의 소재에 쏠려 있다. 마땅한 일이지만, 파산이 현실이 되는 순간 책임과 함께 청산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회사가 28년간 한국인의 생활에 쌓아 온 것들이다. 무엇을 잃는지 아는 사회만이 무엇을 지킬지 결정할 수 있기에, 이번에는 잔혹사의 반대편에서 유산의 목록을 펼친다.

 

계단이 도화지가 되던 날들: 2016년 4월 홈플러스 청주점 야외무대에서 열린 'e파란 어린이 환경그림대회'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00년 시작된 이 대회는 이승한 회장 퇴임 이후에도 전국 140여개 점포에서 계속 열리며 매회 초등학생 1만여명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어린이 환경그림대회로 이어졌다. [사진=홈플러스 제공 ·연합뉴스]

두 번 다, 제 잘못이 아니었다

홈플러스의 역사에서 가장 쓸쓸한 대목은 이 회사가 팔릴 때마다 정작 실적은 좋았다는 사실이다. 1997년 9월 삼성물산 유통부문은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가 태어난 도시 대구에 1호점을 열었지만, 개점 두 달 만에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그룹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1999년 영국 테스코와의 합작사로 넘어갔다. 장사가 안돼서가 아니라 나라가 부도나서 팔린 첫 번째 매각이었다.

두 번째 매각은 한층 역설적이다. 2013년 홈플러스는 매출 8조9298억원, 영업이익 3383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으로 업계 2위를 굳혔고, 테스코 전체 매출의 8%를 책임지는 영국 본사 다음가는 효자였다.

그런데 이듬해 테스코가 이익을 부풀린 4600억원대 분식회계로 경영진 8명이 물러나고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투기등급 강등 경고까지 받자, 급전이 필요해진 본사는 가장 잘나가는 한국 자회사부터 매물로 내놨다. 흑자 기업이 남의 장부 때문에 팔린 셈이다. 그렇게 2015년 MBK파트너스가 세 번째 주인이 됐고, 그다음의 10년은 전편에 기록한 대로다.

'큰 바위 얼굴'을 꿈꾼 경영자

홈플러스의 유산은 이승한이라는 이름에서 시작된다.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팀장을 지낸 그는 19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로 홈플러스를 출범시켰고, 합작 전환 후 15년간 CEO로 회사를 이끌며 점포 2개의 최하위 후발주자를 4년 만에 업계 2위, 10년 만에 매출 10조원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경영학계는 그를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대주주 테스코로부터 독립적 경영권을 확보해 회사를 일군, '창업회장과 전문경영인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사실상의 창업자형 전문경영인이라는 독특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성장과 기여를 병행해 존경받는 기업을 이룬다는 그의 '큰 바위 얼굴' 경영철학은 학술지의 연구 주제에 오르기까지 했다.

e파란의 아이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다: 2010년 11월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e파란 어린이 그린리더'들이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가운데)과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왼쪽)에게 환경사랑 다짐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마트의 그림대회가 길러낸 아이들이 유엔 사무총장 앞에 서던, 홈플러스의 위상이 정점이던 시절이다. [사진=연합뉴스]​​​​​​​
e파란의 아이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다: 2010년 11월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e파란 어린이 그린리더'들이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가운데)과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왼쪽)에게 환경사랑 다짐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마트의 그림대회가 길러낸 아이들이 유엔 사무총장 앞에 서던, 홈플러스의 위상이 정점이던 시절이다. [사진=연합뉴스]

그의 무기는 매장이 아니라 발상이었다. 1999년 서부산점에 국내 할인점 최초의 문화센터를 들였고, 2000년 안산점부터는 국내 최초의 '가치점' 모델을 도입했다.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을 파는 곳이라는 선언이었다.

문화센터는 교실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공간이었다. 아이에게는 첫 미술 수업과 발레 수업이 열리는 놀이터였고, 엄마에게는 요리와 어학을 배우는 배움의 장이었으며, 주말이면 조부모까지 3대가 카트 하나에 모이는 생활의 거점이었다.

백화점의 전유물이던 문화센터를 마트로 가져온 이 실험은 후발주자가 회원을 쓸어 담는 성장 엔진이 됐고, 한때 80개를 넘어서며 이마트(약 70개)와 롯데마트(약 59개)를 앞질렀다. 2000년 시작된 'e파란 어린이 환경그림대회'는 환경부·교육부 장관상이 걸린 국내 최대 어린이 환경그림대회로 자라 매회 전국 초등학생 1만여명이 참가했다.

대회는 이승한 전 회장이 201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전국 점포에서 계속 열렸다. 한 경영자의 이벤트가 아니라 회사의 문화로 뿌리내렸다는 뜻이다. 지금 30대가 된 그 아이들에게 홈플러스는 첫 수상의 기억이고, 그 부모에게는 육아의 한 시절이며, 조부모에게는 손주 손을 잡고 걷던 통로다. 대형마트가 3대의 추억이 포개진 장소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였다.

세계가 이 설계를 주목했다. 이승한 전 회장은 유통업계 CEO로는 처음으로 미국 보스턴의 경영대학 강단에 서서 홈플러스의 성공 공식을 강의했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학생들은 그 공식을 눈으로 확인하러 한국의 매장으로 견학을 왔다.

테스코는 '해외 지사는 본사 전략을 따른다'는 오랜 원칙을 깨고 그에게 경영 전반을 맡겼으며, 문화센터라는 발명품을 세계 영업장에 전파하는 방안을 들여다봤고, 한국 홈플러스의 매장 콘셉트를 본국으로 가져가 영국에 '테스코 홈플러스'라는 이름의 매장을 운영하기까지 했다. 테스코가 이 회장에게 아시아권 경영을 총괄하는 자리를 제안했으나, 한국 홈플러스를 업계 1위로 올리고 가치 있는 경영모델을 완성하겠다며 개인의 영달을 사양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매장의 시간표는 이 현지화 경영의 정수였다. 홈플러스는 테스코의 전 세계 매장 가운데 가장 일찍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곳으로 본사에서 회자됐는데, 늦은 밤에야 퇴근하는 한국인의 근면한 생활 리듬을 읽고 심야의 장보기를 공략한 결과였다. 오후 다섯 시면 셔터를 내리는 영국 본토의 유통 매장들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의 경영자만이 쓸 수 있는 답안이었다.

테스코가 두고 간 것들, 이승한이 준비하던 것들

합작 파트너 테스코가 이식한 것도 문화센터 못지않다. 홈플러스는 테스코가 연간 4억5000만병을 사들이는 글로벌 와인 소싱망에 올라탔고, 자체브랜드(PB) '파이니스트' 등을 앞세워 백화점에서나 비싸게 팔리던 와인을 마트의 가격으로 끌어내렸다.

오늘날 소비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1만원대 데일리 와인'이라는 기준의 출발점에 이 바잉파워가 있었다. 2004년에는 국내 첫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열었고, 2005년에는 대형마트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셀프계산대를 들여놨다.

주목할 것은 2011년 선릉역에 문을 연 '가상 스토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은 상품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장을 보는 이 실험은 세계 유통업계가 주목한 사건이었고, 동시에 하나의 신호이기도 했다.

이승한 전 회장은 유통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일찍 읽고 신유통 시대를 향한 경영과 투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매각과 함께 그 준비는 주인을 잃었다. 새 대주주는 적기의 투자와 성장을 이끌 유통 경영자 대신, 인수자금 회수 일정을 관리할 재무 전문가들을 경영진에 앉혔다.

회계사 출신의 MBK 파트너가 대표이사를 겸직했고, 회사의 화두는 온라인 전환에서 알짜 점포 매각과 구조조정, 비용 절감으로 옮겨 갔다. 온라인 유통의 파고가 눈앞에 밀려오던 바로 그 10년, 조타실에는 항해사가 아니라 회계 장부가 앉아 있었던 셈이다.

인재를 향한 투자는 유산의 정점이자, 이 회사의 야심이 어디까지였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이승한 전 회장은 이병철 · 이건희로 이어지는 인재제일의 삼성 DNA를 유통에 이식한 경영자였다.

2011년 테스코가 700억원을 들여 인천 무의도 해변 7만7000㎡에 세운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는 한국 법인의 직원 연수원이 아니었다. 매출 100조원대 글로벌 유통기업 테스코의 아시아 6개국 임직원, 연간 2만4000명이 배우러 오는 세계적 유통 연수원이 목표였다.

한국을 유통의 사관학교로 키워 해외 인재가 유학을 오고, 한국형 유통 경영모델을 세계로 내보내는 전진기지로 설계된 곳이었고, 국제공항과 지척인 무의도에 터를 잡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마트 계산대와 수·축산 매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전문가'로 호명하며 섬 하나를 통째로 교육에 바친 회사는 한국 유통사에 전무했다.

유산은 담보가 되었다

문제는 이 유산들이 2015년 이후 전혀 다른 숫자로 다시 적혔다는 점이다. 문화센터가 모아 온 3대의 발길은 새 주인의 장부에서 도심 요지의 부동산 가치로 환산됐다. 홈플러스가 이마트와 달리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것은 '생활 거점' 전략의 결과였지만, 바로 그 입지가 인수금융의 담보로서 매력이었다는 해석이 시장에 파다하다.

실제 매각은 부동산 가치가 높은 우량 점포부터 이뤄졌고, 10년간 4조원이 넘는 점포와 자산이 팔려나갔다. 한 회생 전문 변호사는 방송에서 "부동산 가치 높아지면 부동산 팔아먹고"라는 말로 이 10년을 요약했다.

고별 세일, 추억과 마지막 계산: 지난해 11월 30일 마지막 영업에 들어간 서울 홈플러스 동대문점에 고별 세일 현수막이 걸려 있다. 회생절차에서 15개 점포의 순차 폐점이 진행됐고, 이달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남은 점포들도 존폐 기로에 섰다. [사진=연합뉴스]​​​​​​​
고별 세일, 추억과 마지막 계산: 지난해 11월 30일 마지막 영업에 들어간 서울 홈플러스 동대문점에 고별 세일 현수막이 걸려 있다. 회생절차에서 15개 점포의 순차 폐점이 진행됐고, 이달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남은 점포들도 존폐 기로에 섰다. [사진=연합뉴스]

사관학교가 먼저 문을 닫았다. 무의도 아카데미는 2019년 SK이노베이션에 1154억원에 매각돼 지금은 연간 수만명의 SK그룹 임직원이 다녀가는 SK 연수원이 됐다. 세계 유통 인재의 유학지를 꿈꾸던 섬이 정유·화학 그룹의 연수 시설로 바뀐 것이다.

국내 첫 SSM이라는 이력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지난 5월 하림그룹 계열 NS홈쇼핑에 넘어갔는데, 시장에서 3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되던 알짜 사업부가 그에 못 미치는 값에 타결돼 회사에 유입된 현금은 1200억원 수준이라는 헐값 논란이 뒤따랐다.

문화센터 사업은 재작년부터 대폭 축소됐고, 2000년에 태어난 마스코트 'e파란'은 MBK 인수 이후 매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유산의 목록과 매각의 목록이 정확히 겹친다.

당신의 노후자금, 6121억원

이쯤에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이야기 하나를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연금은 이 인수에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6121억원을 댔다. 국민의 노후자금이 MBK가 홈플러스를 삼키는 종잣돈이 된 셈이다. 연기금이 국민의 일자리를 떠받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 자체는 본연의 역할에 부합하는 일이며, 탓할 대목이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RCPS란 약정한 시점이 오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상환권)와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전환권)가 함께 붙은 주식으로, 투자자에게는 '여차하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가 달린 투자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은 MBK가 인수 목적 법인을 통해 이 상환 조건을 홈플러스에 유리하게 바꾸고 상환권을 포기하도록 하면서, 그러니까 돈을 돌려받을 안전장치를 스스로 풀도록 하면서, 국민연금 등 투자자의 회수 가능성을 낮췄다고 판단해 이를 중징계의 근거로 삼았다.

종잣돈을 대준 국민의 돈이 돌아올 길을 대주주가 좁혔다는 것이 감독당국의 판단이다. 이제 그 돈은 미지급 이자를 포함해 9000억원 안팎의 손실 위기로 돌아와 있는데도, 홈플러스가 파산 절차로 향하는 지금까지 6121억원의 행방은 노동자의 일자리와 협력업체의 어음 뒤에 가려 정치권 의제의 앞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국민 모두의 돈이 소리 없이 가라앉는 중이다.

정치는 어디에 있었나

이 대목에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MBK가 10년에 걸쳐 홈플러스를 해체하는 동안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답은 뼈아프게도, 정치가 마트를 오직 '골목상권의 포식자'라는 하나의 렌즈로만 봤다는 데 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도입된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지난 10여년간 정치가 대형마트에 행사한 사실상 유일한 개입이었다.

영업은 규제했지만 소유는 묻지 않았고, 마트가 몇 시에 문을 닫는지는 법으로 정하면서 마트를 소유한 자본이 점포를 팔아 제 빚을 갚는 구조는 어느 상임위의 의제도 아니었다. 2015년 아시아·태평양 최대 바이아웃이 7조2000억원 규모로 성사될 때조차, 고용과 지역 상권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공적 심사는 없었다.

이후 10년, 알짜 점포가 하나씩 팔려나가는 동안 국회 회의록에서 홈플러스는 여전히 규제의 대상으로만 호명됐다. 국회가 감시자로 돌아선 것은 지난해 3월 회생절차 신청 이후로, 긴급 현안질의와 국정감사 증인 채택, 을지로위원회 TF, 금융감독원의 사상 첫 중징계, 검찰 수사가 뒤따랐지만 전부 결말이 난 뒤의 분주함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연 국정감사장에서 정치는 자신이 비워둔 자리가 얼마나 넓었는지 확인했다. 홈플러스 경영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김병주 회장은 "나는 대기업 총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13명의 파트너가 각자 분야를 담당하고 있으며 내 담당은 펀드레이징(자금 모집)"이라고도 했다. 납품대금 보증은 자기 권한이 아니라 홈플러스 이사회 소관이라며 선을 그었다.

재벌 총수에게라면 사재 출연과 총수 책임을 요구해 온 관례가 30년 치 쌓여 있지만, 스스로 총수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본 앞에서 국회의 언어는 번번이 미끄러졌다. 금융권에서조차 사모펀드가 소유는 있으되 책임은 없는 '21세기형 재벌'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학계의 우려도 같은 곳을 향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SBS '뉴스토리'에서 까르푸에서 홈에버로, 다시 홈플러스로 간판이 세 번 바뀌는 동안 30년 가까이 매장을 지켜 온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이제는 갈 곳이 없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사모펀드의 이런 무책임을 방관할 경우, 앞으로 다른 사모펀드들도 대한민국 기업을 이렇게 다뤄도 된다는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회사의 파산이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의 행동 기준이 지금 정해지고 있다는 경고다.

그러니 정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나오고서야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이 "MBK파트너스의 부도덕한 M&A 방식"을 처음으로 공개 비판하며 이명박 정부 시절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그 뿌리로 지목했고, 국회 정무위원회는 김병주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을 증언대에 세우는 청문회 추진에 들어갔다.

김남근 의원(정무위 · 더불어민주당 · 서울 성북을)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깜깜이 사모펀드 방지법' 등 과잉 배당과 자산 매각에 제동을 거는 입법 논의도 이제야 속도를 내고 있다. 인수 단계의 공익 심사, 인수 빚을 피인수 기업에 떠넘기는 구조에 대한 규율, 연기금 투자의 책임 기준. 홈플러스가 무너지고 나서야 전부 테이블에 올랐다.

사라지는 것의 목록

파산이 확정되면 무엇이 남을까. 시장의 전망은 건조하다. 대형마트 업황이 꺾인 지금 경쟁사가 전국 점포망을 통째로 인수할 가능성은 낮고, 입지가 좋은 부지일수록 마트가 아니라 주상복합과 물류센터, 오피스로 개발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마트로서의 영업 가치보다 땅과 건물의 가치가 우선되는 순간, 문화센터의 배움과 놀이도, 그림대회의 전시벽도, 3대가 함께 걷던 통로도 함께 철거된다.

기업의 파산은 법적으로 한 법인의 소멸이지만, 홈플러스의 파산은 그 이상이다. 지역의 평생교육 인프라가, 와인 값의 기준선이, 세계가 배우러 오던 유통 인재 양성의 꿈이, 그리고 1997년 이후 한국인의 생활사 한 장이 함께 폐점한다.

전편에서 각본을 기록한 이유가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에 유산을 기록한 이유는 단순하다. 국회와 정부가 사모펀드와 기업 인수의 규칙을 다시 쓰는 입법의 시간, 저울의 반대편에 무엇이 올라가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잃는 것의 목록이 뚜렷할수록, 지킬 것의 목록도 뚜렷해진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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