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투데이 임헌섭 기자] 초고속 배송과 최저가 경쟁이 치열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취향에 맞는 제품을 발견하고 저장하는 경험을 앞세운 ‘더현대 하이(The Hyundai Hi)’가 출시 초기부터 가파른 이용자 증가세를 보였다.
9일(현지시간) 글로벌 패션·유통 전문지 WWD 등에 따르면 더현대 하이는 소프트 론칭 이후 약 9주 동안 540억 원 규모의 총상품거래액(GMV)을 기록했다. 기존 공식 온라인몰의 전년 동기 실적과 비교하면 43.5% 증가한 수준이다.
이용자 지표의 증가 폭은 더 컸다. 등록 이용자는 전년 동기보다 약 560% 늘었고 방문자는 320% 이상 증가한 960만명에 달했다. 전체 트래픽 역시 300% 이상 늘어난 1,850만 클릭을 기록했다.
더현대 하이가 택한 방식은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과 다소 다르다.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은 원하는 상품을 빠르게 찾고 가격을 비교한 뒤 짧은 시간 안에 배송받는 구조를 중심으로 성장한 반면,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하이에서 검색과 가격 경쟁보다 상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자신의 취향으로 저장하는 과정에 무게를 뒀다.
현대백화점이 기존 더현대닷컴과 현대식품관 투홈을 통합해 지난 4월 선보인 더현대 하이는 3,000여개 브랜드를 기반으로 상품과 콘텐츠를 함께 배치한 프리미엄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출시 한 달 만에 신규 가입자 23만명을 확보했으며 누적 이용자는 700만명을 넘어섰다. 기존 두 플랫폼의 전년 동기 신규 회원을 합친 규모보다 7배 이상 많은 수치다.
플랫폼의 기획과 디지털 경험 설계에는 디올과 루이비통 재단, 그랑 팔레, 유니클로, 뉴욕현대미술관(MoMA) 디자인 스토어 등의 브랜드·디지털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베이스 디자인(Base Design)이 참여했다.
출발점은 일반적인 쇼핑 앱과 다른 경험을 만드는 것이었다. 앱에 접속하면 이용자는 이날 주목할 만한 상품과 큐레이션 콘텐츠를 먼저 만난다. 패션과 뷰티, 가구, 생활용품, 식품 등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상품이 하나의 화면에서 섞여 나타난다.
상품 배열도 일반적인 온라인몰과 달리 두 개 열로 상품과 콘텐츠가 이어지는 워터폴 방식의 화면을 적용했으며, 상품 오른쪽 상단에는 별 형태의 버튼을 배치했다. 바로 장바구니에 상품을 넣기보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보석’처럼 수집할 수 있는 구조다.
베이스 디자인은 더현대 하이를 거래 중심 쇼핑 앱보다 발견과 큐레이션, 커뮤니티를 중심에 둔 디지털 공간으로 설계했다. 스마트폰 쇼핑이 결제 과정에 그치지 않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상품을 발견하는 경험에 가까워지도록 한 것이다.
알고리즘 인기 순위 대신 사람의 취향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특징이다. 더현대 하이는 배우 이이담과 모델 홍태준, 작가 이슬라 등 27명의 ‘아이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플랫폼 안에 자신의 프로필을 만들고 직접 고른 상품과 쇼핑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이용자는 상품뿐 아니라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인물을 따라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이를 통해 국내 온라인몰에서 익숙한 판매 순위와 ‘베스트 상품’ 중심의 큐레이션에서 거리를 뒀다.
실제 구매 상품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 더현대닷컴과 현대식품관 투홈에서는 안마의자와 에어컨, 골드바 등 실용·자산형 상품이 상위 판매 품목에 올랐지만, 더현대 하이에서는 프리미엄 오디오와 디자이너 가구, 고가 여행 상품의 판매 비중이 두드러졌다.
커머스와 콘텐츠의 경계도 낮추고 있다. 메시지 형태의 콘텐츠와 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상품 사이에 배치하고 라이브 스트리밍도 플랫폼 안에서 제공한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경쟁 프로그램 등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투자하며 쇼핑 앱 체류 시간을 상품 검색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독자적인 AI 쇼핑 어시스턴트 ‘헤이디(Heydi)’도 적용했다. 이용자가 대화 형태로 원하는 상품이나 취향을 제시하면 이에 맞춰 제품을 찾는 대화형 큐레이션 서비스다.
더현대 하이의 초기 성과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백화점이 온라인 경쟁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쿠팡과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과 배송 속도나 상품 수, 가격으로 정면 경쟁하는 대신 오프라인 백화점이 강점을 가져온 상품 선별과 브랜드 발굴, 문화 콘텐츠를 디지털 환경으로 옮기는 전략이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정규 입점을 확대하고 해외 브랜드와 협업한 더현대 하이 단독 상품도 늘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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