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메우고 잇고 길 잡아주는 말 '거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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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저런글] 메우고 잇고 길 잡아주는 말 '거시기'

연합뉴스 2026-07-10 05:55:02 신고

① "그러니께 이번 여그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 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 바로 요거여." 영화 ≪황산벌≫(2003)에서 계백 장군(박중훈 분)은 비장하게 전술을 지시한다. 표정은 한없이 진지한데, '거시기' '머시기' 하니까 우스꽝스럽다. 잇새로 피식피식 새는 웃음을 참으며 뜻을 넘겨짚는다. 끝까지 갑옷 입고 싸우겠다는 다짐이로군. 이렇게 풀이할 수 있는 것은 계백이 앞서 ② "우리는 거시기하기 전엔 절대로 갑옷을 벗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당백의 결사항전 의지가 드높다.

①에서 거시기는 두 차례 쓰였다. '는'을 달고 주제어로 나온 거시기는 대명사(대이름씨)다.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킨다. 계백의 첫째 '거시기'를 풀면 요체, 핵심, 근간이 되겠다. 둘째 '거시기'는 접사 '하다'를 붙여 동사(움직씨)로 썼다. ②에 쓰인 거시기하다(끝장 보다)도 같은 동사다. 표현하려는 동사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할 때 대신하는 말. 이 거시기는 "그거, 참 거시기하군." 하여 형용사(그림씨)를 대신할 수도 있는 말이다.

표준어 '거시기'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어 '거시기'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①을 특정 낱말로 다시 풀어 쓰면 "그러니까 이번 여기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 전술적인 요체는 한마디로 끝장을 볼 때까지 갑옷을 입고 싸운다, 바로 그거야."가 된다. 전라도 말을 하는 계백은 머시기(하다)도 썼다. 그 지역에서는 거시기, 머시기, '거석'이 다 거시기다. 거시기는 지역별로 다르다. 거시기·거시끼·거시키(중부방언), 그슥·거석(경상도), 거세기(제주도), 거서가니·머서가니(평안도), 무시기(함경도)라는 게 한 국어책의 분류다. 표준어 '거시기'의 다채로운 변신이다.

입말에서 별 뜻 없이 끼워 넣는 말로도 거시기가 잘 쓰인다. 생각할 시간을 버는 메움말이고, 말 틈새를 흐르는 이음말이며, 말을 이끄는 길잡이말이다. "그, 거시기 뭐야, 있잖아 왜 거시기…" 하며 사람들은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고, 말과 말 사이에 윤활유를 치며, 제 이야기가 갈 길을 잡는다. 이 '거시기'는 일종의 담화표지(談話標識)라는 해설을 만났다. 문장의 내용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전체적 분위기나 대화의 최종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문장 간의 응집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표지가 담화표지다. 말이 어렵다. 계백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한마디로 거시기한 말이네그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위평량, 『팔도말모이 대화와 어법』, 21세기사, 2025 - 거시기: 담화표지의 전국 분포 인용

2.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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