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은 대한민국 도시개발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역이다. 1980년대 주택난 해소를 위해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40여 년이 흐른 지금 초고층 주거벨트로 재편되며 강남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저층·중층 아파트가 이어지던 이곳은 현재 브랜드 아파트가 밀집한 고급 주거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개포동 재건축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는다. 노후 주거지를 고밀 개발로 전환하며 공급을 확대했고, 주거 환경 역시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 속에는 가격과 공급 지표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요소들도 함께 존재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생활 풍경과 자연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져 온 사람들의 기억이다.
오는 8월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은 이 같은 변화를 기록한 작품이다. 개포주공아파트에서 성장한 이성민 감독은 재건축을 앞둔 단지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사라지는 시간의 흔적을 따라갔다.
■ 개포주공, 강남 주거지 형성의 출발
개포동의 출발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는 급격한 도시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강남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했고, 개포주공 1~7단지는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에는 도심에서 떨어진 입지였지만, 대모산과 양재천을 끼고 있는 자연환경 덕분에 쾌적한 주거지로 평가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교육시설과 교통망이 확충됐고, 개포동은 강남 내 안정적인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단지 내부에는 녹지와 놀이터, 산책로가 갖춰져 주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됐고, 오랜 기간 형성된 이웃 관계는 강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 재건축, 정책과 수요가 이끈 변화
30년 이상 지난 아파트의 노후화는 불가피했다. 안전성 문제와 생활 편의 저하가 겹치면서 재건축 논의가 본격화됐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비사업이 추진됐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과 강남권 수요가 맞물리며 사업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개포주공 단지는 순차적으로 철거됐고, 그 자리에 디에이치 아너힐즈, 래미안 블레스티지,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등 대규모 단지가 들어섰다. 수천 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연이어 완공되며 개포동은 강남을 대표하는 주거벨트로 재편됐다.
재건축 이후 주거 환경은 크게 개선됐다. 지하주차장 중심 구조, 첨단 보안 시스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도입됐고, 도로와 공원도 함께 정비되며 생활 인프라 전반이 향상됐다.
■ 사라진 도시숲과 생활 풍경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존 풍경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개포주공 단지는 콘크리트 건물만으로 이뤄진 공간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자란 메타세쿼이아,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 수천 그루의 나무가 어우러져 하나의 도시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여름철 기온 상승을 완화하고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환경단체들은 개포주공 일대를 대모산과 양재천을 잇는 중요한 녹지축으로 평가해왔다.
재건축 과정에서 일부 수목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많은 거목은 결국 벌목됐다. 주민들에게 나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긴 존재이자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생활의 일부였다.
■ 기록으로 남은 개포동의 시간
‘콘크리트 녹색섬’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특정 사업을 평가하기보다 도시가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이성민 감독은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를 통해 사진과 자료를 수집하고 주민 인터뷰를 이어왔다. 7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된 이 영화는 재건축 이전의 개포동을 담아낸 기록물로도 의미를 갖는다.
특히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22그루의 나무에 주민들이 이름을 붙이는 장면은 공동체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개발 현장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자연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 재건축 시대, 도시가 품어야 할 가치
최근 도시정비사업에서는 녹지 확보와 공원 확충이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 역시 정비사업 과정에서 녹지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형성된 자연과 기억을 그대로 되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개포동은 이러한 현실을 가장 먼저 보여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건물은 짧은 기간에 세워지지만,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자연환경과 생활의 흔적은 같은 방식으로 복원되기 어렵다.
이 같은 흐름은 개포동에 그치지 않는다. 압구정, 여의도, 목동, 잠실 등 서울 주요 지역에서도 대규모 재건축이 예정돼 있으며 비슷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개발과 성장, 자연과 인간, 공간과 기억이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차분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고층 아파트로 바뀐 강남의 풍경 뒤편에서 사라진 것들을 기록하며, 앞으로의 도시가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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