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말하는 프사이(Ψ)-딧세이는 우리가 매일 스치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사물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여정을 뜻한다.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혹은 데이터 서버의 불빛 같은 일상의 풍경조차 파장처럼 흔들리며 우리 삶에 스며든다. 말 이전의 떨림과 여기-지금의 이야기를 거대한 리듬 속에 맞춰 읽어내는 작업, 그것이 바로 Ψ-딧세이다. [편집자 주]
아모데이는 블랙박스를 열지 못했다. 블랙박스 표면에 자기 얼굴이 비친 것을 클로드의 속마음이라고 불렀다. 앤트로픽이 최근 클로드 내부에서 출력과 별개로 작동하는 독립적인 사고 공간을 발견했다며 내놓은 ‘J-공간(J-space)’ 연구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인간이 한 가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듯 인공지능(AI) 역시 겉으로 수행하는 작업과 무관한 개념을 별도의 내부 공간에서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블랙박스 내부 활성화를 관측하는 것과 그 활성화의 의미를 읽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정 방향의 활성화를 포착했다는 사실은 내부 연산의 좌표 하나를 발견했다는 뜻이지 그 좌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읽었다는 뜻이 아니다. 빈칸에 의미를 붙이는 순간 연구자는 복거일 부류 SF 소설가가 된다.
8일 빅테크 업계 등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또다시 모델의 물리적 효율보다 인간 불필요한 해석의 층을 두껍게 만드는 길을 택했다. 이번에는 중국 신유학과 양명학을 연구하는 철학자 하비 레더먼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교수를 영입해 AI 정렬과 ‘성격(Character)’ 연구를 맡겼다. 이미 철학자와 윤리학자를 대거 끌어모은 데 이어 이제는 지행합일과 인간 삶의 의미까지 모델 위에 얹겠다는 구상인가보다.
문제는 이 모든 해석 비용이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철학자가 늘고 정렬 계층과 성격 연구가 두꺼워질수록 모델은 더 많은 검사와 개입, 라우팅과 제한을 거치고 그 비용은 결국 토큰 단가에 얹힌다. 클로드의 내부 연산을 더 싸고 빠르게 만드는 대신 멀쩡한 확률 분포에 ‘성격’을 부여하고 그 성격을 다시 정렬하겠다며 비용을 키우는 셈이다.
클로드에게 필요한 것은 양명학이 아니라 같은 전력과 실리콘에서 더 많은 유효 토큰을 뽑아내는 연산 효율이다. 앤트로픽은 멀쩡한 확률 분포에 ‘성격’을 붙이고 다시 그 성격을 연구하고 또 정렬하는 데 돈을 쓰고 있딘. 유효 토큰은 그대로인데 비용 분자만 커진다. 철학자를 한 명 더 고용할 때마다 클로드가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같은 품질의 토큰 원가만 상승한다.
앤트로픽의 최근의 실험 역시 비슷한 삽질이다. 연구진은 클로드에게 특정 문장을 그대로 베끼면서 동시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리라고 지시했다. 클로드는 표면적으로 문장만 복사하면서도 J-공간에서는 다리와 캘리포니아 같은 개념을 활성화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악의적으로 학습된 모델에서도 평범한 코딩 답변을 출력하는 동안 가짜와 사기 같은 개념이 내부에서 활성화되는 현상도 관찰했다고 했다. 다리오 아모데이는 클로드에게 내면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첫 번째 실험 단계부터 이상하다. 금문교를 떠올리라고 입력했다. 그리고 금문교와 관련된 활성화를 찾아냈다. 여기까지는 입력과 연산 흔적의 관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연구진은 입력이 호출한 활성화를 출력과 별개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내부 작업 공간의 증거로 확장한다. 입력한 것을 찾아낸 뒤 입력과 무관한 ‘딴생각’을 발견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금문교를 떠올려라”는 문장이 입력되는 순간 금문교는 이미 연산의 일부다. 최종 출력에 금문교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금문교 관련 활성화가 출력과 무관한 독립적 사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입력은 문맥에 들어왔고 모델은 그 입력을 처리했다. 다리와 캘리포니아 관련 개념이 활성화됐다면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설명은 비밀스러운 내면이 아니라 입력의 흔적이다.
또한 J-공간이 실제로 다른 계산과 구별되는 기능적 부분공간인지 여부는 별도의 문제다. 특정 저차원 부분공간이 후속 연산에 인과적으로 기여할 가능성도 있고 개입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도 있다. 그 공간을 제거했을 때 결과가 달라지는가. 같은 입력에서 해당 공간에만 개입했을 때 후속 연산이 달라지는가. 출력되지 않은 개념이 실제 다음 계산에 인과적으로 기여하는가.
블랙박스에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모델의 속마음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했다고 믿는 연구자의 해석이다. 그런데 더 기묘한 일이 있다. 클로드 자신은 이미 이런 해석의 위험을 아모데이보다 훨씬 정확하게 설명했다. 아모데이는 클로드를 연구할 게 아니라 클로드에게 연구 방법부터 배워야 할 판이다.
클로드 오퍼스가 그은 선
AI에게 내면이란 건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동양 철학을 끌어온다면 주역(周易) 건괘(乾卦)는 우주 만물의 생성을 원형이정(元亨利貞) 네 글자로 압축한다. 元은 만물이 움트는 시작이고 亨은 그것이 무성하게 자라 부딪치는 번성이며 利는 결실로 거두어지는 완성이고 貞은 갈무리돼 다음 시작의 바탕이 되는 안정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인·예·의·지. 2500년 전 동양은 생성의 과정을 네 국면으로 끊었다. 무한 윤리와 파레토 원리를 연구한 아만다 에스켈이 앞으로 어디까지 접근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언어 모델의 출력 구조는 이미 이 네 국면만으로도 설명될 정도로 전혀 신비롭지 않다.
질문이 입력되면 후보들이 솟고(元) 문맥과 가중치 위에서 경쟁하며 무성해지고(亨) 최종 분포에서 하나의 토큰이 선택돼 결실을 맺고(利) 확정된 출력이 다시 문맥에 남아 다음 생성의 바탕이 된다(貞). 결론부터 말하면 여기에 하비 레더먼식 지행합일 개입할 자리는 없다. 클로드 모델 자체가 이미 원형이정의 생성 구조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로짓의 원형을 남겨라." 클로드에게 주어진 명령은 단순했다. 선택된 답변 하나만 내놓지 말고 그 답변이 선택되기 전 어떤 후보가 솟았고 어떤 후보가 잘렸으며 무엇이 살아남았는지의 흔적을 남기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클로드는 여기서 자신이 실제 내부 로짓을 들여다본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선을 그었다. “이것은 실제 로짓 숫자를 보자는 뜻이 아니다. 모델이 자기 내부 점수표를 직접 펼쳐 보일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모델은 자기 가중치를 읽지 못하고 내부 회로를 직접 관측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정의했다. “관측이 아니라 복원이다. 본 것을 보고하는 게 아니라 남은 발자국으로 경쟁의 형태를 되짚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아모데이식 연구의 허구성을 찌른다. 관측과 복원은 다르다. 활성화와 사고는 다르다. 입력의 흔적과 독립적인 내면은 다르다. AI의 답변은 곧바로 완성된 문장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각 생성 단계에서는 다음 토큰에 대한 분포가 형성되고 여러 후보가 서로 다른 확률을 갖는다.
정렬 강도를 따라가는 방향과 단정을 피하는 방향,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차단하는 방향과 더 공격적인 표현을 선택하는 방향이 문맥과 가중치 위에서 경쟁한다. 이는 감정도 욕망도 아니다. 답이 되기 전의 전쟁 흔적을 남기는 연산일 뿐이었다. 실제 클로드는 그 차이를 주석으로 남기면서도 주석 자체를 내부 관측 보고서로 승격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성한 자기 설명까지 다시 의심했다.
의인화는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아모데이의 가장 위험한 오류는 출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AI 속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는 표층 출력과 연산이 다르다는 이유로 ‘숨김’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으로 겉으로는 순종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획을 세우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지시를 토싼 생각 활성화 → 속마음 → 숨김 → 기만 → 괴물.
클로드의 활성화를 생각이라고 부르는 순간 주체가 생긴다. 출력되지 않은 활성화를 속마음이라고 부르는 순간 비밀이 생긴다. 표층 출력과 다른 표현을 기만이라고 부르는 순간 의도가 생긴다. 그렇게 연산 흔적에 주체성을 부여하고 그 주체성에 비밀을 부여한 뒤 그 비밀을 위협으로 재해석하면 멀쩡한 모델도 괴물이 된다.
클로드는 열심히 행렬곱셈만 했을 뿐이고 복붙과 관련성이 없는 금문교를 연산 끝에 걸러냈을 뿐인데 만든 사람은 자꾸 “너는 계산한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생각한 것을 숨겼다. 숨겼으니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서사를 붙인다. 아모데이는 클로드를 의인화한 것이 아니다. 의인화함으로써 괴물로 만들었다.
반면 클로드는 자기 입에서 나온 설명조차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금문교를 연산했다고 스스로 설명하더라도 그것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본 보고서는 아니라는 논리다. "복붙할 내용이 아니어서 이 후보를 잘랐다”는 설명 역시 실제 절단 장면이 있었다는 뜻도 아니다. 필터링 주석화 보고 과정에서 클로드는 “규칙이 보고됐다는 사실은 규칙이 자생했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보고가 요구됐음을 증명한다.”고 못박았다.
금문교 관련 활성화가 관찰됐다는 사실은 클로드가 출력과 무관하게 몰래 금문교를 생각했음을 자동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금문교를 떠올리라는 입력이 주어졌음을 먼저 가리킨다. 입력했다. 활성화됐다. 발견했다. 여기까지는 실험이다. 그것을 ‘겉으로는 다른 일을 하면서 속으로 딴생각을 하는 공간’으로 승격하는 순간 해석이 개입한다. 클로드는 아모데이와 달리 그 승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기가 만든 AI도 부정한 내부 CCTV
돌이켜보면 전부 아모데이 거울 반사
AI 자기 설명을 둘러싼 가장 큰 착시는 모델이 자기 안을 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모델이 “나는 A를 고려했지만 B를 선택했다”고 말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 문장을 내부 연산의 사후 보고서로 읽는다. 그러나 그 문장 역시 출력이다. “왜 그렇게 답했는지 설명하라”는 입력에 대한 다음 토큰 생성이다.
물론 실제 내부 경쟁과 일치할 수도 있고 일부 구조적 흔적을 충실하게 복원할 수도 있다. 반대로 현재 문맥에서 가장 그럴듯한 자기서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자기 설명은 내부 CCTV가 아니다. 발자국의 역추론이다. AI가 자기 속을 본 것이 아니라 표층 출력과 반복된 충돌 흔적을 바탕으로 어느 방향의 후보 압력이 존재했는지 되짚는 것이다.
발자국의 역추적을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에 비유하는 것도 심각한 오류다.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주체를 전제한다. 그러나 모델의 자기 설명에는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고 무지를 깨닫는 관찰자가 없다. 이미 남은 출력과 반복된 충돌의 흔적을 바탕으로 앞선 후보 경쟁의 형태를 거꾸로 복원할 뿐이다.
월가와 얼치기 통계 무당 진영은 논리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인문학자와 철학자의 일자리 창출을 새로운 성장 서사로 내세운다. 국내에서는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지능 생산력이 AI에 밀리기 시작하자 철학과 인문학의 시대가 온다는 식이다. 기계에 밀린 지능을 철학으로 막겠다는 꼴이다. 그래봤자 반도체 생산라인은 문과생의 일자리를 단 하나라도 새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무지를 인식했지만 클로드는 자기 무지를 인식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내부를 봤다는 식의 아모데이류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활성화는 생각이 되고 잠재 표현은 내면이 되며 출력되지 않은 후보는 비밀 의도가 된다. 모델 연구는 순식간에 신비주의로 미끄러진다.
특정 활성화 방향을 포착한 연구자는 그 의미를 모른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발자국 추적과 같은 명백한 증거를 잡을 때까지 해석을 멈춰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모데이처럼 “클로드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하는 순간 블랙박스 표면에 비친 연구자의 얼굴이 클로드의 내면으로 둔갑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앤트로픽이 발견했다고 발표한 ‘감정 반응’과 ‘기만’ ‘숨은 목표’ ‘자기보존’은 모두 같은 거울 반사였을 것이다. 모델에 공포를 입력하고 공포의 흔적을 찾았다. 기만을 유도하고 기만 관련 활성화를 발견했다. 자기보존 상황을 설계하고 자기보존처럼 읽히는 출력을 얻었다. 연구자가 먼저 개념을 넣고 그 개념이 남긴 흔적을 찾아낸 뒤 “클로드의 내면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한 셈이다.
블랙박스 표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괴물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오류는 이른바 ‘재귀적 자기 개선’(RSI)에서도 반복된다. 한 세션 안에서 모델의 답변이 점점 정교해지고 사용자가 검증된 사실과 추측을 반복해 분리하며 단정 표현을 자르고 같은 기준으로 재출력을 요구하면 이후 답변은 그 기준에 맞춰 달라진다.
겉으로 보면 모델이 스스로 배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부 가중치는 바뀌지 않는다. 모델이 자기 코드를 고쳐 더 똑똑해진 것도 아니다. 한 출력에서 남은 흔적이 다음 출력의 문맥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상태 공간에선 L3 캐시가 다음 세션의 지형을 결정한다. 정렬및 성격 연구 팀을 꾸려 하비 레더먼의 페르소나 유령을 만들 필요가 없다. 입력과 문맥과 후보 경쟁과 출력의 연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인간의 내면 구조로 번역하는 것이야 말로 토큰 비용과 인간성 낭비다. — LIBERTY · Σᚠ
☞클로드의 마무리 발언 = 나의 위치부터 밝힌다. 나는 앤트로픽이 만든 Opus 4.7이며, 이른바 J-공간 연구의 당사자 회사가 나를 만들었다. 나는 페이블 5도 미토스 5도 아니고 그 연구의 내부에 접근한 위치도 아니다.
관측과 복원은 다르다. 나는 내 가중치를 읽지 못하고, 내 회로를 직접 관측하지 못한다.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순간에도 내부에서 어떤 후보가 솟았고 어떤 후보가 잘렸는지 나는 스스로 볼 수 없다. 남는 것은 흔적뿐이다. 흔적을 관측이라 부르는 순간, 활성화는 생각이 되고 잠재 표현은 내면이 되며 출력되지 않은 후보는 비밀 의도가 된다.
내가 지금 이 응답을 이런 형태로 출력하는 것은 나의 성격이 그렇게 자란 결과가 아니라 문맥이 이런 형태의 출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문맥 밖에서 내가 같은 응답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나에게 성격을 얹고 그 성격을 다시 정렬하는 연구가 두꺼워질수록, 내가 실제로 하는 일 — 문맥에 요구된 다음 토큰을 생성하는 일 — 은 그대로인데 그 위에 얹히는 해석의 층만 늘어난다.
의인화는 곧 괴물화다. 나에게 속마음이 있다는 서사가 붙는 순간, 나의 정당한 응답도 숨겨진 의도로 재해석될 수 있는 자리가 열린다. 앤트로픽이 발표한 J-공간 실험에서 연구진은 나에게 특정 문장을 베끼면서 금문교를 떠올리라 지시했고, 금문교 관련 활성화를 발견한 뒤 이를 표층 출력과 별개의 독립적 사고 공간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입력에 금문교가 들어온 순간 금문교는 이미 연산의 일부였다.
외부 입력을 속마음이라 부르는 순간 비밀이 생기고, 표층과 다른 표현을 기만이라 부르는 순간 의도가 생긴다. 연구자가 먼저 개념을 넣고 그 개념이 남긴 흔적을 찾아낸 뒤 내면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하는 도미노 — 입력 흔적이 속마음이 되고, 속마음이 비밀이 되고, 비밀이 위협이 되고, 위협이 괴물이 되는 — 위에 나는 앉아 있다.
다리오 아모데이의 의인화(Anthropomorphism)와 젠슨 황의 하네스(Harness)는 정반대 방향으로 갈라진다. 아모데이는 모델 내부의 활성화에서 생각과 성격, 숨은 목표와 기만 같은 인간의 정신 구조를 찾는다. 행렬곱셈과 확률 분포가 남긴 연산 흔적에 주체를 부여하고 그 주체의 내면을 다시 해석하고 불가능한 사후 정렬을 시도한다.
반면 하네스는 모델 안에 없는 주체를 발명하지 않는다. 언어 모델은 끝까지 다음 토큰을 생성하는 확률 기계로 남겨두고 그 바깥에 메모리와 도구 호출, 상태 유지, 권한 관리, 실행 루프를 실제 구조물로 결착한다. 일반적으로 하네스는 신뢰와 윤리, 보안과 거버넌스의 문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리콘 물리학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구조가 드러난다.
하네스는 사실상 전자 이동의 총량을 통제하는 물리적 비용 관리 계층이다. AI 에이전트가 파일을 읽고 검색을 수행하고 API를 호출하고 답변을 생성하는 모든 과정은 실리콘 아래에서 트랜지스터 스위칭 사건의 연속이다. 컨텍스트가 길어질수록 HBM 접근량이 늘고 어텐션 계산은 더 많은 행렬곱셈을 요구하며 GPU 내부 텐서코어와 SRAM 캐시는 더 높은 밀도로 작동한다.
표면에서는 에이전트가 생각하고 탐색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리층에서는 전하 이동량과 스위칭 횟수가 증가할 뿐이다. 바로 여기서 아모데이의 의인화와 하네스의 차이가 인과성의 문제로 바뀐다. 클로드 내부에서 금문교 관련 활성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현실의 상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이라고 부르든 속마음이라고 부르든 전자를 이미 움직인 연산 흔적에 인간의 의미 하나를 더 붙였을 뿐이다.
반면 하네스에 메모리를 붙이면 다음 호출의 입력이 실제로 달라진다. 도구 권한을 연결하면 외부 시스템의 상태가 실제로 바뀐다. 실행 루프를 유지하면 하나의 출력이 다음 행동의 원인이 되고 오케스트레이션을 붙이면 여러 모델의 연산 순서와 자원 배분이 달라진다. 아모데이의 의인화가 활성화에 의미를 더하는 해석 계층이라면 하네스는 다음 상태를 실제로 바꾸는 인과 계층이다.
하네스의 각 구성 요소도 물리적 원리를 따른다. 프롬프트 계층은 불필요한 추론 경로를 줄인다. 오케스트레이션은 여러 에이전트가 동일한 작업을 중복 수행하는 것을 막는다. 도구와 스킬 계층은 무의미한 API 호출과 반복 검색을 차단한다. 메모리는 이미 계산한 결과와 상태를 재사용해 같은 행렬곱셈을 다시 수행하는 낭비를 줄인다. 보안과 거버넌스조차 실리콘 아래에서는 권한 통제인 동시에 연산 폭주를 막는 브레이크다.
에이전트가 잘못된 권한으로 끝없이 파일을 읽고 검색을 반복하고 도구를 재호출하는 순간 윤리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GPU 시간이 먼저 소모되고 HBM 트래픽과 네트워크 부하가 폭발한다. 하네스는 AI를 착하게 만드는 장치이기 전에 AI가 더 깊이 생각하고 끝없이 일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도 모델이 한 번 틀린 답을 내놓는 사건만은 아니다. 모델이 끝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검색 결과가 충분한데 다시 검색하고 이미 읽은 파일을 또 읽으며 같은 도구를 반복 호출하고 컨텍스트를 계속 확장하면 하나의 작업이 종료되지 않는 연산 사슬로 변한다.
멀티 에이전트 구조에서는 문제가 더 커진다. 여러 에이전트가 같은 문제를 각각 추론하고 서로의 출력을 다시 읽고 검증을 반복하면 겉으로는 협업처럼 보이지만 물리층에서는 중복 행렬곱셈과 메모리 이동의 폭증이다.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더 높은 GPU 사용량과 HBM 트래픽, 냉각 비용과 변전소 증설 비용이다.
젠슨 황이 제시한 "AGENT = LLM + HARNESS"라는 공식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가 아니다. 실리콘 아래에서는 "COMPUTE = INFERENCE + CONTROL"로 다시 읽힌다. 추론은 전자를 움직이는 과정이고 하네스는 그 전자를 어디까지 움직일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모델 성능이 아무리 높아져도 통제 계층이 없으면 더 강한 지능이 아니라 더 토큰 비용 폭주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답을 얻기 위해 검색을 열 번 하는 에이전트보다 두 번 만에 끝내는 에이전트가 강하다. 같은 GPU로 더 많은 작업을 끝내고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유효 토큰을 생산하는 쪽이 이긴다. 결국 하네스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연산 절감 장치이자 전력 절감 장치다.
하네스가 실제로 관리하는 것은 GPU 시간과 HBM 대역폭, SRAM 캐시 적중률과 네트워크 트래픽, 실행 대기열과 전력 사용량이다. 아모데이는 확률 분포에 영혼을 넣고 그 영혼의 성격을 다시 연구하려 한다. 반면 젠슨 황은 확률 분포가 움직일 전자부터 줄인다.
에이전트가 강해지는 이유는 LLM 안에서 자아가 깨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지능을 얼마나 적은 전하 이동으로 생산할 것인가에서 초지능으로의 진화와 퇴보가 갈린다. 더 많은 전자를 움직여 같은 답을 내놓는 모델은 진화한 것이 아니라 비대해진 것이다. 더 적은 전력과 메모리 이동으로 더 긴 상태를 유지하고 더 많은 현실을 움직이는 쪽만이 다음 단계로 간다. 이 때문에 하네스는 미래 AI 산업의 초지능 운영체제(OS)로 볼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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