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차세대 스마트 기기로 주목받는 인공지능(AI) 안경이 올해 빅테크 들이 잇따라 출시하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관련 규제가 없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메타를 시작으로 구글, 삼성전자, 애플까지 시장 경쟁에 뛰어들면서 AI 안경은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와 달리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도촬과 시험 부정행위 등 사회적 논란이 잇따르고 있지만 AI 안경을 직접 규율하는 별도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부재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1월 AI 기본법 시행으로 AI 생성물에 대한 워터마크 표시 의무 등 최소한의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실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음성을 수집·분석하는 AI 안경 등 웨어러블 AI 기기를 대상으로 한 별도 규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 메타·구글·애플, AI 안경 시장 경쟁 본격화
9일 업계에 따르면 메타는 AI 안경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를 지난 5월 국내 시장에 공식 출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지난 6월 '메타 어드벤처러'와 '메타 퓨리'를 공개했고 미국 방송인 카일리 제너와 협업한 한정판 '스타파이어'를 선보이며 제품군을 확대했다.
메타는 국가별 판매량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전작 대비 흥행에 성공하며 수백만 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출시 초기부터 테크 얼리어답터와 패션 소비자를 중심으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구글은 지난 5월 개발자회의(I/O)에서 삼성전자와 워비파커, 젠틀몬스터 등과 협업한 AI 안경을 공개했다. 특히 젠틀몬스터와의 협업을 통해 AI 안경을 패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애플도 내년 AI 안경을 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AI 안경이 스마트폰 이후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 도촬·컨닝 현실화…규제는 아직 '공백'
AI 안경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를 악용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해외 직구로 구매한 AI 안경을 착용한 채 토익 시험을 치르려던 응시자 2명이 시험 감독관에게 적발됐다. AI 안경을 이용한 첫 시험 부정행위 사례로 알려지면서 교육 현장에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8일에는 서울 강서경찰서가 메타 AI 안경으로 데이트 상대 여성을 몰래 촬영한 뒤 온라인에 유포한 남성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 안경과 외형상 구분이 어려운 AI 안경의 특성을 악용한 사례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CNN은 AI 안경으로 타인을 몰래 촬영한 영상이 온라인에서 수백 건 유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에서는 AI 안경을 '변태 안경'이라고 부르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부정적인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안경 보급이 확대될수록 기술적 안전장치와 함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선제 대응에 나섰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16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학생 평가 관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 AI 안경을 활용한 시험 부정행위 예방 방안을 일선 학교에 안내하도록 했다. AI 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 가능성이 커지자 별도의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행정지도를 통해 우선 대응에 나선 것이다.
기업들의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제도 정비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한국은 AI 기본법을 제정하며 AI 규제 논의를 선도하고 있지만 AI 안경 등 웨어러블 AI 기기를 직접 규율하는 별도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최근 관련 제도 마련 필요성을 인정했다. 개인정보위는 지난 3일 발표한 '제3차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2027~2029)'에서 피지컬 AI의 상시적 정보 수집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권리 보장과 신기술 규율체계 마련을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피지컬 AI 확산에 대응한 사이버-물리 통합보안 체계와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방향도 담았다.
다만 이는 향후 3년간 추진할 정책 방향을 제시한 수준이다. AI 안경을 비롯한 웨어러블 AI 기기를 어떤 기준으로 규율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는 "웨어러블 기기와 로봇 등 새로운 AI 기기의 확산으로 개인정보 이슈가 커지고 있는 만큼 안전한 개인정보 처리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단계"라고 말했다.
▲ 시장 1위 메타, 안전장치 강화 나서
시장 확대와 함께 프라이버시 논란이 커지자 시장 점유율 1위인 메타는 기술적 안전장치 강화에 나섰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메타는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스마트 안경 시장에서 82%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메타는 이날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AI 안경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 FAQ를 공개했다. 촬영 시 안경 전면의 LED 표시등이 자동으로 켜져 주변 사람들이 촬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낮에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밝기와 점멸 주기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메타 관계자는 "촬영 시 LED 표시등이 자동으로 켜지며 이를 가리면 촬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LED를 물리적으로 훼손하거나 변조한 경우에도 카메라 기능이 비활성화되도록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해외에서 LED 변조 서비스를 광고하거나 판매하는 게시물은 삭제하고 관련 계정도 정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기업의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안경이 일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촬영 사실 표시 기준과 시험장·공공시설 사용 원칙, 개인정보 보호 기준 등 사회적 신뢰를 뒷받침할 제도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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