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권의 문제는 부실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부실을 제때 떼어낼 통로가 약하다는 데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이후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은 낮아졌지만, 그 과정에는 공동펀드 정리와 대출자산 축소가 함께 작용했다. 금융감독원 집계 기준 지난해 말 저축은행 연체율은 6.04%로 전년 말 8.52%보다 낮아졌고, 고정이하여신비율도 10.68%에서 8.43%로 하락했다. 총자산은 118조원으로 2조9000억원 줄었다. 건전성 지표는 개선됐지만, 부실채권을 반복적으로 매입·관리·매각할 상시 정리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상호저축은행자산관리회사 설립 근거를 담은 상호저축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이다.
▲문제는 부실보다 처리 능력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9일 발의한 상호저축은행법 개정안의 핵심은 저축은행을 돕자는 데 있지 않다. 장부에 묶인 부실채권을 제때 팔고, 회수하고, 정리할 전담 통로를 만들자는 데 있다. 개정안은 상호저축은행과 저축은행중앙회가 공동 출자해 ‘상호저축은행자산관리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사는 부실자산 매입·매각, 보전·추심, 담보부동산 취득·개발·처분, 공매, 구조조정 저축은행 자산 관리·매각을 맡는다. 금융위원회 감독, 금융감독원 검사, 임직원 제재, 과태료 조항도 함께 담았다. 부실채권 정리기구에 매입 권한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감독·검사·제재 체계까지 붙인 구조다.
저축은행권의 문제는 부실채권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부실채권을 처리할 상시 시장이 약하다는 데 있다. 연체가 늘면 저축은행은 충당금을 쌓고, 대출 여력을 줄이고, 위험자산을 줄인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지역 서민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돈을 공급하는 본래 기능까지 약해진다. 부실채권은 장부 위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제때 가격이 매겨지지 않으면 자본을 묶고, 신규 대출을 막고, 업권 전체 신뢰를 낮추는 병목이 된다.
지금까지 저축은행권은 공동펀드 방식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을 정리해 왔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업권은 총 2조6000억원 규모 부동산 PF 부실채권을 공동펀드 방식으로 털어냈다. 문제는 공동펀드가 위기 때마다 새로 짜는 임시 우회로라는 점이다. 부실이 생길 때마다 펀드를 만들고, 출자자를 모으고, 매입 가격을 협상하고, 손실 부담을 나눠야 한다. 매각 저축은행은 손실 확정을 미루려 하고, 매입 주체는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한다. 가격이 맞지 않으면 부실은 다시 장부에 남는다.
이 법안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부실 정리는 ‘얼마나 많은 부실이 있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어느 가격에, 누구 책임 아래 밖으로 빼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상시 자산관리회사가 생기면 저축은행권은 부실채권을 사건마다 임시 펀드로 넘기는 구조에서 벗어나, 업권 내부의 전담 정리기구를 통해 부실을 반복적으로 매입·관리·매각할 수 있다. 저축은행 부실의 본질은 대출 실패만이 아니다. 실패한 대출을 제때 정리할 제도적 배관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업법 틀로는 규모 감당하기 어려워
저축은행권은 지난해 5월 대부업법상 대부채권매입추심 자회사인 ‘SB NPL대부’를 세워 부실채권 정리에 나섰다. 문제는 이 기구가 업권 전체 부실을 받아낼 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업법 시행령은 대부업체 총자산을 자기자본의 10배 이내로 제한한다. 김상훈 의원실은 이 규제 때문에 SB NPL대부가 매입할 수 있는 부실채권 규모가 최대 1050억원에 그친다고 밝혔다.
1050억원은 저축은행권 부실 정리 수요에 비해 작다. 업권은 이미 공동펀드 방식으로 2조6000억원 규모 부동산 PF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1000억원대 매입 여력으로는 다음 부실이 몰릴 때 완충판 역할을 하기 어렵다. 저축은행 부실채권은 부동산 경기, 자영업 상환능력, 지방 경기, 금리 흐름과 함께 움직인다. 매각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작은 매입기구는 부실을 받아내는 장치가 아니라 정리를 지연시키는 병목이 된다.
법체계상 한계도 있다. 대부채권매입추심업 규제는 채무자 보호와 추심질서 관리를 위한 장치다. 저축은행권 건전성 회복을 위한 부실자산 정리기구와는 목적이 다르다. 저축은행 부실 정리에는 채권 매입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담보 부동산 관리, 경매·공매, 구조조정 자산 관리, 출자전환 지분 처리, 부실예방 지원까지 함께 필요하다. 대부업 틀로 금융기관 구조조정 기능을 대신하게 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상호금융권은 이미 정리기구 갖췄다
저축은행권이 뒤처진 사이 상호금융권은 이미 별도 정리기구로 움직이고 있다. 새마을금고와 신용협동조합은 최근 법 개정을 통해 개별법상 자산관리회사 설립 근거를 마련했다.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신협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 의결과 21일 공포를 거쳐 신협법 개정을 마쳤고, 올해 10월 영업 개시를 목표로 자산관리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조직 신설 문제가 아니다. 같은 서민금융권 안에서도 새마을금고와 신협은 자체 법률에 근거한 자산관리회사를 통해 부실자산을 정리할 수 있다. 반면 저축은행은 대부업법상 자회사 한도에 묶이면 부실이 몰릴 때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실채권 정리 능력은 업권 편의가 아니라 예금자 보호, 지역 신용공급, 금융시장 신뢰와 직결된다.
저축은행권에는 2011년 대규모 구조조정의 기억이 남아 있다. 당시 문제는 부실 발생 자체만이 아니었다. 부실 인식 지연, 자산가치 과대평가, 대주주·경영진 책임, 감독 공백이 겹치며 위기가 커졌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부실을 장부에 오래 묶어둘수록 비용은 커진다. 필요한 것은 부실을 숨기는 장치가 아니라, 손실을 제때 확정하고 담보와 채권을 회수해 다시 자금이 돌게 만드는 정리 체계다.
▲개정안 핵심은 상시 정리기구
개정안은 상호저축은행법에 제33조의3부터 제33조의8까지를 새로 두는 구조다. 상호저축은행, 저축은행중앙회, 중앙회 출자회사가 공동 출자해 ‘상호저축은행자산관리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관리회사는 저축은행권의 부실예방, 경영개선, 부실채권과 비업무용 자산 정리를 맡는다. 부실이 터질 때마다 임시 펀드를 짜는 방식에서 벗어나, 업권 안에 상설 정리기구를 두겠다는 취지다.
업무 범위도 단순 채권 매입에 그치지 않는다. 부실자산 매입·매각, 인수 자산 보전·추심, 채무관계자 재산조사, 담보 부동산 취득, 부동산 매입·대여·개발·처분, 출자전환 지분증권 인수, 공매, 구조조정 저축은행 자산 관리·매각과 매매 중개까지 포함됐다. 이는 추심회사가 아니라 저축은행권 내부의 부실자산 정리 플랫폼에 가깝다. 부실채권을 사서 끝내는 기구가 아니라 담보를 관리하고, 자산을 회수하고, 필요하면 매각·개발·공매까지 수행하는 구조다.
자금 조달 방식도 법안에 담겼다. 관리회사는 상호저축은행, 중앙회, 금융기관 차입금과 운용수익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부실자산 매입이 필요한 경우 중앙회 준비금도 차입할 수 있다. 여유자금은 중앙회 또는 금융기관 예치, 국채·공채 매입, 정부·중앙회·금융기관이 지급보증하는 유가증권 매입으로 운용하도록 했다. 부실자산을 사들이는 힘과 자금 운용의 안전장치를 함께 둔 셈이다.
▲건전성 회복, 가격 규율이 먼저
자산관리회사 설립은 저축은행권에 필요한 장치다. 다만 부실채권을 사주는 기구가 생긴다고 건전성이 저절로 회복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매입가격이다. 부실채권을 비싸게 사면 부실 저축은행을 우회 지원하는 통로가 된다. 지나치게 싸게 사면 저축은행은 손실 확정을 미루고 부실채권을 장부에 계속 붙잡아둔다. 공정가치 평가, 외부평가, 매입가격 산정 기준, 손실 배분 원칙이 시행령과 감독규정에서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
도덕적 해이도 막아야 한다. 자산관리회사는 부실을 덜어내는 정리기구이지, 위험한 대출을 다시 늘릴 수 있게 해주는 보험이 아니다. 저축은행이 관리회사 설립을 이유로 고위험 부동산 PF나 취약차주 대출 심사를 느슨하게 하면 제도 취지는 무너진다. 금융위원회 감독, 금융감독원 검사, 임직원 제재 조항이 개정안에 함께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채무자 보호 장치도 빠질 수 없다. 부실채권이 자산관리회사로 넘어가면 추심 주체가 바뀐다. 개정안은 보전·추심, 가압류, 가처분, 경매, 소송, 재산조사까지 폭넓은 업무를 허용한다. 그만큼 추심 절차의 적법성, 취약차주 보호, 채무조정 연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부실자산 정리가 금융회사 장부 정리에만 머물면 서민금융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 핵심은 부실을 빨리 넘기는 것이 아니라, 제값에 넘기고 합법적으로 회수하며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저축은행판 배수로, 관건은 가격
이번 개정안의 의미는 저축은행을 구제하자는 데 있지 않다. 장부에 고인 부실채권을 제때 떼어내고, 회수 가능한 자산으로 다시 돌리는 통로를 만들자는 데 있다. 부실채권은 금융회사 대차대조표에 오래 남을수록 자본을 갉아먹고, 신규 대출 여력을 줄이며, 시장 신뢰를 떨어뜨린다. 정리 통로가 좁으면 저축은행은 부실을 팔지 못하고, 감독당국이 건전성 개선을 요구해도 실행 수단이 부족해진다.
저축은행권의 구조적 문제는 세 가지다. 부동산 PF와 기업대출 부실이 한꺼번에 터졌을 때 이를 받아낼 상시 정리기구가 약했다. 대부업법상 자회사로는 업권 전체 부실 처리 규모를 감당하기 어렵다. 부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역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신용공급 기능까지 위축될 수 있다. 상호저축은행자산관리회사 설립법은 이 세 문제를 함께 겨냥한다.
김상훈 의원은 “저축은행이 지역 서민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기능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부실자산을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저축은행업권도 상호금융권 수준의 건전성 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의 성패는 회사 설립 자체가 아니라 운영 원칙에서 갈린다. 부실채권을 빨리 사들이는 것보다 어느 가격에, 어떤 기준으로, 누구 책임 아래 정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자산관리회사가 시장가격을 왜곡하지 않고, 부실을 숨기지 않으며, 채무자 보호와 건전성 회복을 함께 달성한다면 저축은행권의 상시 구조조정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매입가격 산정이 흐려지고 책임 추궁이 약해지면 또 다른 부실 이전 통로가 된다. 이 법안이 중요한 이유는 저축은행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부실을 제때 드러내고, 손실을 확정하며, 다시 돈이 흘러가게 만드는 금융 배수로를 놓는 법이기 때문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Copyright ⓒ 뉴스로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