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콘텐츠 산업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텍스트를 작성하고 이미지를 만들며 영상과 음악까지 제작하는 AI 서비스는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콘텐츠 소비 환경의 일부가 됐다.
이제 관심은 기술 자체보다 이용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쏠린다. 최근 조사에서는 AI 생성형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이용 여부보다 소비 경험의 형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험이 많을수록 만족도와 이용 의향이 높아졌고, 우려하는 위험 요소도 달라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9일 발표한 'AI 생성형 콘텐츠, 소비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 보고서는 AI 생성형 콘텐츠를 한 번이라도 소비한 경험이 있는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이용자를 비교하고, 경험자 가운데에서도 직접 찾아보는 이용자와 알고리즘 추천으로 접하는 이용자를 구분해 인식 차이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는 AI 콘텐츠 시장이 기술 경쟁을 넘어 소비자 경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탐색한 이용자는 그렇지 않은 이용자보다 만족도가 높았고 향후 소비 의향도 강했다. AI에 대한 평가는 기능보다 실제 이용 경험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경험이 늘수록 커지는 시장…문화산업도 제작 방식이 바뀐다
AI 생성형 콘텐츠 경험률은 텍스트가 73.1%로 가장 높았고 이미지 55.8%, 영상 32.3%, 음악 24.6%, 오디오 서비스 13.1% 순이었다. 아직 영상과 음악은 경험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훨씬 크게 나타났다.
특히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찾아 소비하는 이용자는 텍스트 경험률이 79.4%로 수동 소비자보다 크게 높았다. 반대로 영상과 음악은 숏폼이나 추천 서비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AI 콘텐츠의 소비 방식이 콘텐츠 유형마다 다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AI 콘텐츠가 소비되는 공간도 플랫폼 접근성과 연결됐다. 유튜브 이용률이 62.4%로 가장 높았으며 숏폼 플랫폼과 포털·커뮤니티가 뒤를 이었다. 능동 소비자는 포털과 커뮤니티 활용 비율이 높았고, 수동 소비자는 유튜브와 숏폼 플랫폼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조사됐다.
이용 목적 역시 차이를 보였다. 능동 소비자는 정보 탐색과 업무 효율, 학습을 위해 AI 콘텐츠를 활용하는 비중이 높았다. 수동 소비자는 재미와 휴식 목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같은 AI 콘텐츠라도 활용 방식이 달라질수록 기대하는 가치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만족도다. 모든 콘텐츠 유형에서 평균 4점 이상을 기록했으며 능동 소비자가 수동 소비자보다 모든 항목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텍스트 생성형 AI는 평균 4.54점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험이 늘어날수록 AI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함께 높아졌다.
향후 소비 의향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더욱 뚜렷했다. 영상과 음악, 오디오 서비스는 현재 경험률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은 이용 의향이 확인됐다. AI 영상 제작과 음성 서비스 시장이 앞으로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 같은 변화는 문화산업 전반에도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소비를 넘어 제작 과정에도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콘셉트 이미지 제작과 스토리보드 작업, 예고편 편집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웹툰과 게임은 캐릭터 디자인과 배경 제작, 현지화 번역 과정에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음악 산업에서도 데모 음원 제작과 음성 합성 기술 활용이 확대되면서 제작 효율을 높이고 있다.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질수록 AI 활용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작 기간을 줄이고 다국어 현지화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 해외 시장 진출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제작사뿐 아니라 중소 콘텐츠 기업과 개인 창작자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해외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넘어 문화산업의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산업의 과제는 창작 보호와 이용자 신뢰
AI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확대되는 가운데 우려도 분명했다. 가장 큰 걱정은 허위·조작 정보로 전체 응답자의 51.6%가 이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이어 출처 불명확, 개인정보 및 초상권 침해, 저작권 문제가 뒤를 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경험 형태에 따라 우려 대상도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능동 소비자는 저작권 문제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인식했고, 수동 소비자는 개인정보 침해와 책임 소재 문제에 더욱 민감했다. AI를 많이 사용할수록 창작 환경과 권리 보호에 관심을 보였고, 가볍게 접하는 이용자는 안전성과 피해 예방에 더 큰 관심을 나타냈다.
문화산업에서는 창작자 권리 보호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생성형 AI는 기존 콘텐츠를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특성 때문에 저작권 분쟁 가능성을 안고 있다. 특정 화풍을 모방한 이미지나 유명 가수의 음색을 재현한 음성 콘텐츠처럼 기술 발전 속도가 제도 정비를 앞서면서 창작자의 권리와 AI 활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문제 발생 시 책임에 대한 인식도 구체적으로 형성됐다. 허위·조작 정보는 콘텐츠 제작자의 책임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개인정보 침해와 저작권 문제는 제작자와 AI 서비스 기업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AI 시대에는 문제 유형에 맞는 책임 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함께 나타났다.
정부 역할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았다. 허위·조작 정보와 개인정보 침해, 출처 불명확, 저작권 문제 등 대부분 항목에서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90%를 넘었다. 소비 경험 여부와 관계없이 안전한 이용 환경을 원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용자들이 요구한 정책 방향도 분명했다. AI 생성물 표시 의무화가 66.0%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허위·조작 정보 탐지 기술 지원도 62.6%를 기록했다. 플랫폼 신고 기능 강화와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도 높은 요구를 보였다. 상업적 이용 제한보다 이용자가 생성 여부를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AI 시대 문화산업의 미래를 다시 쓰다
생성형 AI는 이제 문화산업의 새로운 제작 도구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콘텐츠 제작비 부담을 낮추고 제작 기간을 단축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 웹툰, 게임, 음악, 출판 등 콘텐츠 전 분야에서 AI 활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창작과 산업의 경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문화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뛰어난 AI를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이를 창작 역량과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K-콘텐츠 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유통되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다국어 번역과 음성 제작, 영상 후반 작업,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 제작까지 AI 활용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중소 제작사와 독립 창작자도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 콘텐츠 산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새로운 창작자와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물론 산업 성장만으로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신뢰가 먼저 확보돼야 한다. 이용자가 AI 생성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허위 정보와 저작권 침해, 초상권 문제에 대한 대응 체계가 갖춰질 때 시장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용자들은 AI 활용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문화산업 역시 창작자와 AI가 경쟁하는 구조보다 함께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반복적인 제작 과정은 AI가 담당하고, 기획력과 감성, 이야기 구성, 문화적 맥락을 담아내는 영역은 창작자가 맡는 협업 모델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역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때 문화산업의 부가가치도 더욱 커질 수 있다.
결국 AI 시대 문화산업의 미래는 기술 혁신과 신뢰 구축이 함께 갈 때 완성된다. 생성형 AI는 K-콘텐츠의 세계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성장 동력이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투명한 표시 제도와 저작권 보호, 책임 있는 플랫폼 운영, 이용자 보호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소비 경험이 긍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지고, 그 신뢰가 다시 산업 성장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AI 시대 문화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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