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정부가 이른바 ‘가짜 3.3 계약’ 근절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프리랜서로 계약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잇따르면서다. 문제는 이 같은 위장 계약이 학원과 방송사, 외식업체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판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3.3 계약’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가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일반적인 세무 처리 방식이다. 문제는 근무 형태는 근로자인데 계약서만 프리랜서로 작성하는 경우다. 계약 형식만 사업소득자로 바뀌면서 4대 보험과 퇴직금, 연차휴가, 연장근로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권리서 배제
최근에는 학원과 외식업, 방송업계, 건설 현장, 렌털 서비스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면서 ‘가짜 3.3’ 문제가 노동시장 전반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역시 노동법 회피를 위한 위장 고용으로 보고 감독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지난해 말부터 전국 단위 기획 감독을 실시해 위장 고용 사례를 적발하고 보험료 추징과 과태료 부과에 나서는 등 단속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노동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실시한 기획감독에서 근로자임에도 사업소득자로 계약된 노동자 1070명을 적발했다. 적발된 사업장은 72곳이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해 고용·산재보험을 소급 적용하고 미납 보험료를 추가 징수하는 한편, 피보험자격을 신고하지 않거나 지연 신고한 사업장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정부가 ‘가짜 3.3’을 노동시장 정상화의 핵심 과제로 내세운 것은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사례가 다양한 업종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세무 처리 방식을 잘못 적용한 경우도 있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는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등 노동법상 의무를 줄이기 위해 3.3% 계약을 활용한다.
이런 계약은 학원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A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던 B씨도 계약서에는 사업소득자(3.3%)로 기재됐지만 실제 근무 방식은 일반 근로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무시간과 수업시간표는 모두 학원이 정했고, 학생 배정과 상담 업무도 학원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근무 장소와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없었고, 독립적으로 학생을 모집하거나 영업하는 구조도 아니었다. 급여도 매달 일정한 금액을 받는 방식이었다. B씨는 “계약서만 프리랜서였을 뿐 실제로는 일반 강사처럼 근무했다”고 말했다.
방송업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부가 지난해 주요 방송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획 감독에서는 프리랜서로 일하던 PD와 작가, 영상 편집자 등 663명 가운데 216명이 근로자로 인정됐다.
계약서에는 업무위탁이나 도급계약으로 기재됐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관리자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상시·지속적으로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부는 해당 인력에 대해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지도했다.
72곳 사업장 무더기 적발
1070명이 ‘가짜 프리랜서’
최근 외식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됐다. 서울의 한 유명 음식점은 직원들에게 근로계약서 대신 도급계약서를 작성하게 한 뒤 사업소득세 3.3%를 적용했다가 노동부 감독에서 적발됐다.
조사 결과 연장근로수당과 퇴직금 등 5000만원이 넘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사업주는 체불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허위 이체 확인증을 제출했다가 추가 수사를 받기도 했다.
가장 크게 논란이 불거진 곳은 렌털업체 쿠쿠홈시스다. 정수기와 전기밥솥 등을 설치·수리하는 기사들은 개인사업자 형태의 3.3% 계약을 맺고 근무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이미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노조는 회사가 직접고용 대신 대리점 중심의 운영 구조를 유지하며 기존 계약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고, 노동부도 근로 감독에 착수했다. 노조에 따르면 기사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당일 업무를 배정받고 본사 전산망을 통해 재고 관리와 자재 신청, 수납 업무 등을 처리한다.
하루 평균 10여곳을 방문하지만 건당 수수료에는 차량 유지비와 유류비, 통신비, 주차비 등이 모두 포함돼 실질적인 소득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계약 형태만 개인사업자일 뿐 실제 업무 방식은 일반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짜 3.3’ 계약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사업주의 비용 부담을 꼽는다. 근로자를 사업소득자로 계약하면 4대 보험 가입 의무를 비롯해 퇴직금과 연차휴가,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각종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많을수록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만큼 일부 사업장에서는 프리랜서 계약을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가 적발한 사업장에서도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가짜 3.3’ 계약과 함께 사업장을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신고하는 방식도 문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부당해고 구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 일부 규정을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학원부터 방송·건설까지
관행처럼 번진 위장 계약
이 때문에 근로자를 개인사업자로 계약하거나 사업장을 분리 운영해 근로자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노동법 적용을 피하려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부는 지난해 전국 단위 기획 감독에 앞서 국세청 자료를 분석해 근로소득자는 5명 미만인데 사업소득자가 다수인 사업장을 ‘가짜 3.3’ 의심 사업장으로 분류했다.
문제는 계약서만으로 근로자 여부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계약의 형식보다 실제 근무 형태를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업무 내용을 누가 결정하는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지,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는지, 독립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근로자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당수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직접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에는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하거나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3.3% 계약에 동의했다가 퇴직 이후에야 근로자성을 다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노동부가 적발한 사례 가운데에서도 수년간 근무한 뒤 퇴직금이나 임금을 받지 못해 뒤늦게 노동청을 찾은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위장 고용이 반복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근로자성 판단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노동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에서는 ‘노동자 추정제’ 도입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용자가 이를 뒤집을 근거를 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위장 고용을 줄이고 노동법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되지만, 기업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나오고 있다.
단속해도 계속
B씨는 “근로자처럼 일했다면 근로자로 인정받고, 그에 맞는 계약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위해 별다른 설명도 듣지 못한 채 3.3%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며 “계약서 한 장 때문에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권리까지 포기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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