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경제 독점한 초법적 군부 카르텔…美, 가에사 표적 제재 집중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지구상 몇 안 남은 공산독재 국가 쿠바에 최근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 사태가 또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로, 대정전의 만성화가 우려된다. 21세기 현대국가에서 나라 전체가 '블랙 아웃'을 겪는다는 건 믿기 어려운 전근대적 비극이다. 원시시대처럼 밤엔 도시들이 암흑 속에 묻히고 물 공급마저 끊겼다고 한다. 가로등이 꺼지고 통신이 두절되며 시민들은 범죄 위험에 노출됐고 위생 상태도 악화했다. 무더위에 냉방조차 할 수 없지만, 생명과 안전 유지를 위한 최소 여건마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사치스러운 불만일 정도다.
오랜 경제난과 에너지난에 신음해온 쿠바에 대규모 정전이 빈번해지는 큰 원인은 한층 강해진 미국의 제재다. 반민주 독재를 포기할 때까지 연료 봉쇄 정책을 계속할 것이란 경고에도 쿠바 정부가 버티자 에너지 보급로를 대부분 차단한 상태다. 특히 양대 원유 공급원인 베네수엘라와 멕시코가 막히면서 쿠바는 사면초가 고립된 성(城) 같은 상태가 됐다. 우군이던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정권 붕괴로 미국 영향력 아래 들어갔고, 멕시코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방침에 사실상 공급을 멈춘 채 눈치를 보고 있다. 에너지난이 장기화하는 피해는 이를 근본적으로 야기한 지배층이 아니라 민중에 집중되는 형국이다.
미국이 강력 제재를 통해 파괴하려는 표적은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생명줄인 '가에사'(GAESA)이다. 가에사는 쿠바 군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국영 기업집단이다. 쿠바의 외화벌이 수단인 여행·관광·숙박업과 유통업 등을 비롯해 전체 경제의 최대 70%에 달하는 영역을 독점한다. 정부와 의회 통제도 제대로 받지 않는 초법적 집단으로 공산당보다 힘센 '국가 안 국가'로 불린다. 겉으론 국영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카스트로 가문과 군부 고위층의 자금줄이자 비자금 창구인 동시에 쿠바를 사실상 경영하는 '딥스테이트'로 지목된다. 민주국가에선 상상도 못 할 시스템이다.
이런 구조는 신정 독재 이란의 혁명수비대(IRGC)와 흡사하다. IRGC도 이란 최대 기업집단을 거느리고 석유는 물론 밀수까지 통제하는 등 이란 경제 절반 이상을 지배한다. 가에사와 IRGC 모두 체제 수호 보루이면서 지배층 경제공동체이자 국부를 독점한 카르텔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란을 제재할 때도 대상을 혁명수비대로 좁혀왔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공략할 때 부를 독점한 지배층과 다수 민중을 분리하는 전략을 써왔는데, 현재 이란과 쿠바에도 이런 교과서적 공식을 적용 중이다. 미국의 진짜 협상 대상도 이란과 쿠바의 정부 공식 창구가 아니라 IRGC와 가에사라는 게 정설이다. 실권을 쥔 이들의 '윤허'가 없으면 어떤 협상 결과도 휴지 조각처럼 뒤집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들어 가에사를 정밀 타격하는 표적 제재에 초점을 맞췄다. 전면 봉쇄는 인도적 비판을 부르고 내부 결속이란 반작용을 야기할 수 있으니 독재 정권의 산소 호흡기만 제거한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다. 작년까진 주로 미국인만 쿠바와 거래하지 못하는 1차 제재 중심이었으나 지난 5월 쿠바에 대해서도 제삼국 제재 행정명령이 발효됐다. 이란, 러시아와 같은 수준이다. 그러자 에너지난에 이어 쿠바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각국 기업과 금융기관도 가에사와 거래를 끊었으며, 가에사와 연관된 항만과 금융 네트워크 등도 운영이 거의 중단됐다. 가에사의 돈줄이 말라가는 상황이다.
미 당국은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서 쿠바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한이 임박했다며 최후통첩성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미국이 쿠바에 당장 군사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베네수엘라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경제적 압박을 계속 극대화함으로써 내부 동요를 촉발해 미국의 요구 조건을 쿠바 지도부가 단계적으로라도 받아들이게 하는 전략을 한동안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과거 수십 년간 미국은 쿠바를 제재해왔지만, 체제 변화란 목적을 이루진 못했다. "쿠바 공산정권 붕괴"를 공공연히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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