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이 48개국 체제로 확대됐음에도 한국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 A조 3위(1승 2패)에 그치며 32강 토너먼트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각 조 3위 가운데 상위 8개 팀까지 32강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였기에 '탈락이 오히려 더 어렵다'는 조롱까지 나왔지만, 대표팀은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짐을 쌌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만한 결과다.
K리그 감독 시절 이임생. / 뉴스1
참사 이후 책임 규명의 무대가 국회로 옮겨가면서 관련 인물들의 행보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미국으로 떠났던 홍명보 전 감독은 "부르면 간다"며 청문회 출석 의사를 밝혔고,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 측은 "출석 요구가 오면 그때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청문회를 코앞에 두고 캄보디아 프로팀으로 떠난 이임생 전 대한축구협회(KFA) 기술총괄이사는 출석 여부에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 축구 팬들 분노가 이 전 이사에게 집중되고 있다.
전술 실종과 제대로 된 해명 없었던 인터뷰가 키운 분노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전술적 색채가 사실상 전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지도자와 선수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렸다. 손흥민, 이강인을 비롯한 선수들은 참담한 심경을 표하며 자신들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반면 홍 전 감독은 제대로 된 축구팬들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해명을 보이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답답하게 했다.
홍 전 감독은 참사 수준의 성적에 결국 사퇴했다. 그러나 사퇴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축구계와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가 2024년 감독으로 선임될 당시 불거진 특혜 및 절차 위반 의혹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로 떠난 이임생.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선임 과정의 실질적 '키맨'은 누구였나
홍 감독 선임의 판을 짠 실질적 인물로 지목되는 이가 바로 이 전 기술총괄이사다. 2024년 7월 당시 선임 과정을 복기하면 문제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시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하자 그 권한이 이임생에게 위임됐는데, 이 위임 과정부터 정관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전 이사는 포옛, 바그너 등 외국인 감독 후보군과 면접을 진행하다가 돌연 국내파인 홍 감독으로 급선회했다. 외국인 후보들에게는 까다로운 전술 프레젠테이션과 조건을 요구했던 그가, 정작 홍 전 감독에게는 전술 PPT조차 받지 않았다. 밤늦게 자택 앞으로 찾아가 면접 없이 "해달라"고 부탁했고, 전력강화위원회에 최종 공유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발표했다.
동일한 자리를 놓고 외국인 후보에게는 검증의 문턱을 높이고, 국내 특정 인물에게는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지휘봉을 쥐여준 것이다. 이는 KFA의 공적 행정 시스템을 무력화한 명백한 프로세스 붕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절차를 무시하고 앉힌 감독 체제가 월드컵 32강 무산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되돌아왔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KFA)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2024년 7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스1
미국에서 돌아오겠다는 홍명보, 캄보디아로 떠난 이임생
홍 전 감독은 북중미 월드컵에서 돌아온 지 이틀 만에 가족이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출국했다. 귀국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 청문회 회피 논란까지 일으켰지만, 최근 측근들에게 "청문회가 열리면 참석한다, 부르면 간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은 여전히 차갑지만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반면 이 전 이사의 행보는 대단히 치밀하다는 평가와 함께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는 청문회를 코앞에 둔 2026년 7월 초 캄보디아 리그 나가월드 FC의 기술이사로 선임됐다며 출국했다. 축구계에서는 이를 두고 국회 청문회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한 기획성 해외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는 법적 배경이 있다. 국회증언감정법상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달리 일반 현안질의 청문회는 해외 체류자에게 동행명령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이 약하다. 해외 취업을 사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 국회가 강제로 소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 전 이사가 청문회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확답을 내놓지 않는 배경으로 이 법적 허점이 거론되는 이유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인이 프로세스를 깨면서 앉혀놓은 감독은 월드컵 참패 후 국회에 불려 나가 책임을 홀로 떠안게 됐는데, 정작 선임 과정을 주도한 당사자는 동남아 프로팀으로 적을 옮겨 자리를 피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홍명보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024년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정몽규 전 회장은 어떤 입장인가
홍 전 감독이 전격적으로 출석 의사를 밝히면서 정 전 회장과 이 전 이사를 향한 출석 압박도 한층 강해지고 있다. 정 전 회장 측 관계자는 "아직 국회에서 정식 통보를 하지 않은 만큼 출석 요구가 오면 그때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석을 확약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결국 이번 사태 구조는 명확하다. 정몽규 회장 체제 아래에서 실무 책임자였던 이 전 이사가 절차를 무시하고 감독을 선임했고, 그 대가가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행정을 망친 인물은 해외로 떠났고, 전술을 책임졌던 인물은 국회로 향하며, 그 피해는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한 축구 팬들과 경기장에서 온몸을 던진 선수들의 몫이 됐다.
청문회 일정은 언제, 무엇이 밝혀져야 하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에서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실시와 증인 출석 요구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청문회 날짜는 오는 22일이 유력하다.
대한축구협회. / 뉴스1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 해외에 체류 중인 홍 전 감독, 이 전 이사 등을 상대로 국회가 실효성 있는 압박 카드를 꺼낼 수 있느냐다. 둘째, 이 전 이사의 출석 여부와 관계없이 2024년 감독 선임 과정의 회의록과 녹취록 등 기록을 확보해 의사결정의 전모를 규명할 수 있느냐다. 축구계에서는 당시 선임 과정의 모든 기록을 검증해야 KFA 수뇌부의 밀실 행정 구조를 해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최종 인사권자였던 정몽규 전 회장에게 전횡의 최종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도 이번 청문회 핵심 쟁점이다.
이임생은 어떤 인물인가
이 전 이사는 1971년생으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선수, 감독, 행정가, 경영인을 모두 거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센터백으로 뛰며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대표로 26경기를 소화했다.
선수 시절에는 유공 코끼리와 부천 SK에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뛰었고, 2003년 부산 아이콘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2003~2005)와 코치(2006~2009)를 지냈고,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 FC(2010~2014), 중국 선전 FC(2015~2016), 옌볜 푸더 수석코치(2016), 톈진 터다 2군(2016~2017)과 감독 대행을 거쳐 톈진 터다 감독(2017)을 맡았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지냈다.
행정가로는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2017~2018, 2022~2025)을 두 차례 역임했고, 2024년부터 2025년까지 기술총괄이사를 맡았다. 바로 이 기술총괄이사 재임 기간에 홍명보 감독 선임이 이뤄졌다. 이후 2025년 팀 차붐 이사를 거쳐 2026년 캄보디아 나가월드 FC 기술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감독 시절 이임생 모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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