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 '시간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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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슈퍼사이클 '시간 싸움'

폴리뉴스 2026-07-09 09:55:00 신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소재 삼성전자 미주총괄(DSA) 사옥에 삼성 반도체와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를 소개하는 글귀가 비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소재 삼성전자 미주총괄(DSA) 사옥에 삼성 반도체와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를 소개하는 글귀가 비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7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잠정 실적은 숫자만 놓고 보면 기록적이다. 연결 기준 매출 171조 원, 영업이익 89조4,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29% 넘게, 영업이익은 1,800% 이상 뛰었다. DRAM·NAND 가격 급등과 HBM(고대역폭 메모리) 호황, 재고 정상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나온 결과다.

그런데 정작 주가는 냉랭했다. 실적 발표 당일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한때 7% 가까이 빠지며 30만 원 선이 무너졌고, 마감 기준으로도 6%대 하락했다. 시장 기대치(영업이익 약 84조 원) '어닝 서프라이즈'였지만, 일부 증권사가 90~100조 원까지 전망을 높여놓은 탓에 "생각만큼은 아니다"라는 평가도 동시에 나왔다. 시장이 보고 있는 것은 "이번 분기 숫자"가 아니라 "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라는 시간표라는 뜻이다.

반도체 하나에 올라탄 성장률

요즘 한국 경제는 사실상 반도체 한 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와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을 올리면서, 공통적으로 반도체 수출 증가와 무역흑자 확대, AI 인프라 투자에 따른 메모리 수요 증가를 이유로 든다. 성장률, 수출, 세수 모두 반도체라는 단일 엔진에 실려 가는 구조에 가깝다.

이 사이클은 2010년대 스마트폰·PC 교체 수요가 이끌던 메모리 호황과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과거에는 전 세계 소비자 수억 명이 스마트폰과 PC를 바꾸면서 수요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 같은 소수의 빅테크와 클라우드 기업이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으로 수요를 좌우한다. 수요가 몇 개 회사의 결정에 묶여 있는 만큼, 이번 슈퍼사이클은 더 화려한 동시에 더 불안정한 국면이다.

낙관론 "메모리는 이제 인프라"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메모리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메모리는 더 이상 경기에 따라 가격이 크게 요동치는 '부품'이 아니라, 전기·통신망처럼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다.

HBM이 대표적이다. HBM은 AI 칩이 엄청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고성능 메모리다. GPU 설계 단계부터 패키지 구조에 깊게 묶여 있고, 주요 고객과는 몇 년짜리 장기계약·선계약으로 물량을 미리 잡아두는 경우가 많다. 시장조사기관들은 2026년 HBM 시장 점유율의 70% 이상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할 것으로 본다. 물량의 상당 부분이 이미 계약으로 묶여 있어, 예전처럼 스팟 가격이 조금만 흔들려도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구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낙관론자들은 메모리를 이제 "원자재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가 역시 경기민감 업종이 아니라 구조적 성장 인프라 업종에 준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2027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 그 가운데 AI 서버·HBM 수요가 가장 빠르게 늘 것이라는 전망이 이 주장의 배경이다.

비관론 "결국 교과서대로 간다"

비관적인 쪽의 논리는 오히려 단순하다. AI라는 새로운 수요원이 생겼다고 해도, 반도체 업종의 기본 메커니즘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이 공장을 늘리고 몇 년 뒤 새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고  가격과 마진이 꺾인다. 수십 년 반복된 이 패턴이 이번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들이 특히 주목하는 시점은 2027~2028년이다. 이 무렵 한국과 미국에서 삼성·SK의 신규 팹이 줄줄이 가동을 시작하고, 중국의 CXMT·YMTC도 DRAM·NAND, 저가형 HBM 증설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리 3사(삼성·SK·마이크론)가 레거시 제품 비중을 줄이고 HBM 등 고부가 제품으로 옮겨 타는 과정에서, 구세대 제품 라인이 중국 업체로 넘어가거나 중국 내 새 공장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 시점에 빅테크의 AI 투자 열기가 지금만큼 뜨거울지 여부다. AI 서비스 수익화가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이제 하드웨어 투자는 어느 정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는 전형적인 '오버서플라이' 시나리오가 열린다. 이 경우 메모리 가격과 마진 조정은 피하기 어렵고,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 경제도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삼성의 '원스톱' 전략

이 구조 속에서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카드가 '턴키(turn-key) 전략'이다. 쉽게 말해 "설계부터 생산·메모리·패키징·테스트까지 한 번에 맡겨라"라는 원스톱 모델이다.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모두 가진 종합반도체기업(IDM)은 삼성뿐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칩, 국내 스타트업 딥엑스의 2나노 엣지 AI 칩, 일부 글로벌 AI 기업들의 HBM·패키징 논의 보도는 이런 움직임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아직은 상당 부분이 '협의·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형 고객이 본격적으로 옮길 만큼 신뢰를 쌓았는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의 턴키 전략이 스토리로만 남을지, 아니면 실제 실적과 현금흐름으로 이어질지는 향후 2~3년이 가려줄 것이다.

800조 투자, 문제는 돈이 아니라 '타이밍'

정부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발표한 이른바 '800조 원 반도체 투자'도 비슷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광주에만 4기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포함해, 국내외 반도체·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수천조 원 단위로 제시됐다.

숫자 자체도 엄청나지만, 더 중요한 건 "언제 돌아가기 시작하느냐"이다. 광주 팹을 포함한 주요 신규 팹들의 본격 양산 시점은 대체로 2027년 전후에 몰려 있다. 같은 시기 미국·대만·중국에서도 새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에서 새로 늘어난 생산능력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까지 빅테크의 AI 투자와 AI 서비스 수익화가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증설은 매출·이익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하지만 투자 열기가 식거나 속도가 조절되면,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과잉 투자의 덫'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시장 일부는 벌써부터 2027~2028년을 이번 슈퍼사이클의 '유통기한' 후보로 보고 있다. 지금 반도체를 둘러싼 논쟁은 "좋으냐, 나쁘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이만큼 좋을 수 있느냐"를 둘러싼 시간 싸움이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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