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르포] “노동은 자본보다 앞서” 상계동 경비노동자, 기습 해고 반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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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 르포] “노동은 자본보다 앞서” 상계동 경비노동자, 기습 해고 반대 시위

투데이신문 2026-07-09 09:08: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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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보람아파트 입구, 경비노동자 집단해고 반대 서명 테이블 너머 현수막이 걸려 있다. ⓒ투데이신문
상계보람아파트 입구, 경비노동자 집단해고 반대 서명 테이블 너머 현수막이 걸려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서하 인턴기자】상계보람아파트의 정경은 평범했다. 단정한 도색과 네모반듯한 모양새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고, 사람들은 도보를 바삐 오갔다. 그 사이로 이질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경비노동자 14명이 부당하게 해고당한 상황을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7일 오후 1시의 풍경이었다.

이곳에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일하던 경비노동자 44명 중 17명이 기습적으로 미채용을 통보받았다. 6월 17일의 일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새로 선출된 것이 발단이었다. 그가 신규 계약한 경비업체 예주산업은 본래 해고자들에게 면담 결과 ‘채용’을 통보했다. 그러다 얼마 후 ‘미채용’으로 말을 바꿨다고. 알 수 없는 사유로 17명의 해고자 중 3명은 재채용됐으나 여전히 설명은 없었다. 14인의 해고자들은 예주산업의 해고에 일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주산업이 해고된 경비노동자에게 보낸 문자. ⓒ투데이신문
예주산업이 해고된 경비노동자에게 보낸 문자. ⓒ투데이신문

예주산업은 “인근 지역에 자리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면접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했지만, 경비노동자들이 상계보람아파트에서 해고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계보람아파트의 완공 시기는 1988년. 오래된 연식만큼 경비노동자들의 나이도 많다. 은퇴 후 직업으로 경비노동자를 선택한 70~80대 해고자들은 하루하루가 다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알리는 플래카드 앞에는 상계보람아파트 주민들의 경비노동자 해고 반대 연대서명을 받는 책상이 두 개 있었다. 두 책상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자리가 빈 채로 앞을 스쳐 가는 행인들만 무수했다. 기자는 자리의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인근을 몇 바퀴 돌았다.

기다리는 동안 인터뷰를 진행한 한 시민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어째”라며 안타까워했다. 백 세 시대다. 65세쯤 은퇴를 해도 어떻게든 35년간 자신을 부양해야 한다. 자식과 손주가 도와주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 되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집단해고 반대 서명 등 이번 시위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조합 사람들. ⓒ투데이신문
집단해고 반대 서명 등 이번 시위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조합 사람들. ⓒ투데이신문

제도의 허점 앞 해고가 자유로운 세상

비어 있던 자리에 사람이 돌아온 것은 오후 2시 50분께. 자리의 주인은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이원영 조직부장과 동 소속 도봉문화재단분회 김희동 사무장이었다. 두 사람은 기자를 반갑게 맞으며 의자를 내줬다. 6시 30분에 있다는 집회를 기다리며 함께 앉아 아파트 앞을 관찰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대부분 무관심했지만, 인심 좋은 시민들은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모난 시선으로 보지 않아 신기하다며 운을 떼자 김 사무장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여기 시끄럽게 한다며, 우리 정보관들 곳곳에 있는데도 손가락질하고.”

입주민들과 싸움이 벌어질 뻔했던 첫 시위를 넘어 3주차에 들어선 지금은 양측 모두 분위기가 소강됐다. 자주 보이니 익숙해지고 말았을까. 좋은 일만은 아니다. 시위가 장기화될 것 같다며 그는 혀를 찼다. 경비 노동자는 대다수 고령이다. 오랜 시위를 버티기 어렵다. 당장 생계가 급한 사람도 있을 뿐더러, 무더위 속에서 수 시간을 서 있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 조직부장은 차분히 설명했다. “노인 노동자들의 특징이 뭐냐면,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젊은 노동자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 1~3개월의 단기간 노동을 계약하게 되거나,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노인 노동자의 특징을 이용해 고용주 측이 이른바 ‘갑질’을 쉽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일도 그런 사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 등은 2025년 7월과 8월에 각각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용역과 하청업체가 변경돼도 기존 고용자들의 고용을 유지(승계)하도록 하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국가는 느리다. 두 개정안은 아직도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감상을 묻자 이 조직부장은 씁쓸하게 말했다. “하나의 사회현상처럼 된 것 같아요. 해고가 자유로운….”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정의헌 대표의 의견 또한 비슷했다. “이런 대단히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제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사실 아파트의 가장 중요한 힘은 주민들이 가지고 있어요. 경비, 미화, 시설 관리,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아파트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데 말이야.” 그럼에도 주민들은 노동자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파트가 안전한 것, 복도가 깨끗한 것,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지 않는 것까지. 모두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있다. 주민들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신들이 뽑은 대표자에게 항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계약서에는 ‘경비 용역 업무를 수행할 인원은 본 입찰시에는 44인으로 하되, 사업제안서의 내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경비용역 계약기간 중 입주자대표회의가 원하는 시기에 언제라도 구조조정(경비원 인원 또는 시간 조정)을 요청할 경우에는 이를 수용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업체의 인력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는 3주간의 시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계동 보람아파트 앞에서 해고당한 경비노동자들이 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투데이신문
상계동 보람아파트 앞에서 해고당한 경비노동자들이 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투데이신문

기준 없는 미채용에 무너진 노동자의 명예

상계동 보람아파트에서 15년 가량 경비 일을 해 온 70대 중반 변상봉 씨는 문자 내역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채용하겠다는 문자가 와 태연했지.” 그의 휴대폰으로는 발대식 문자까지 왔다. 위치까지 배정됐는지 ‘210동 B조 변상봉’이라고 보낸 문자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예주산업은 결과를 번복하고 미채용 통보를 보냈다.

“기준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의 주장은 분명했다. 채용과 미채용 사이에 어떠한 기준이 있었다면 반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빈 자리에 채용된 사람은 그보다 한 살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이는 기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민들과 불화나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슨 기준으로 잘렸냐 물으니 걔네들도 대답을 못 해요.”

그렇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 문제는 괜찮을까. 우려되는 마음에 말을 꺼냈더니 그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월남전 참전용사라 국가유공자 수당이 나온다는 그는 생계 이상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나야 놀아도 상관은 없는데, 이제 명예회복은 해야 하지 않겠나.”

그에게는 복직보다도 명예가 중요했다. 보람아파트에서는 10년 넘게 고용승계를 해 왔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업체 변경시 고용 승계를 하겠다고 의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유 없이 해고당한 14명의 경비노동자, 그들에게 복직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설명이었다. 아무런 사연도 알지 못한 채 해고당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해고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의 명예는 어디에도 없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혜정 수석부본부장은 상계보람아파트의 주민이기도 하다. 그는 6시 30분 시작된 집회에서 “경비 노동자들은 수년간 이 아파트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묵묵히 일해 온 동지”라며 “이는 우리 사회의 노동이 얼마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인정받지 못하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명예는 그런 것에서 온다. 쓰고 버리는 부품이 아니라, 해고될지언정 성의와 예의를 다해 대우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명예 말이다.

보람아파트에 내걸린 경비노동자 해고 반대 서명자 명단. ⓒ투데이신문
보람아파트에 내걸린 경비노동자 해고 반대 서명자 명단. ⓒ투데이신문

자본 아래 묻힌 노동자의 권리

김 수석부본부장은 목소리 높여 말했다. “저희는 입주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아파트값이 떨어질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부당해고에 대응하는 시위를 이어가면서도 집값을 문제시하는 이들과 맞서야 했다. 

상계보람아파트는 재건축 대상지다. 서울시는 지난 5월 7일, 제6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결정·경관심의(안)을 수정가결 처리했다. 이 재개발이 빨리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있어 빨리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개발 호재로 차익을 남기려는 이들에게 시위는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뉴스가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준 한 시민은 “결국 돈 때문”이라며 한탄했다.

“링컨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동은 자본보다 앞선다고, 자본은 노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그런 세상일지라도 김 수석부본부장은 노동을 존중하자고 말한다. 이곳에서 열리는 시위는 단순히 복직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번 상계보람아파트 경비노동자 부당해고 사태를 기점으로 제도가 정비돼 다음에는 특수고용직의 고용승계가 단절되지 않는 세상을,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제도와 법은 늘 더디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가 해고된 14명의 경비노동자들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사람이 자본 아래 놓이지 않는 세상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남기며,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집회는 이날도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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