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개관한 노회찬의집6411은 창신동 골목 안에 있다. 노회찬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벽돌기금을 보태 만들어진 집. 7월 4일 오늘은 노회찬 8주기 추모 심포지움 세션2와 세션3이 그 집 3층 6411홀에서 열리는 날이다. 나는 오후 1시에 시작하는 세션2 ‘문화인 노회찬’을 보기 위해 4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려 베트남 식당과 네팔 식당이 즐비한 창신동 시장 골목을 눈으로 지나치며 종로통 큰길을 걷는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노회찬의집6411에 도착했다.
6411홀에선 사전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 옆과 뒤에는 책장이 벽에 길게 붙어있었고 거기엔 노회찬이 남긴 책들이 꽂혀있었다. 리허설의 소란스러움을 멀리하고 노회찬의 서가를 살펴봤다. 소설, 역사, 철학,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보며 소위 ‘노회찬 어록’들이 생각났다. 2017년 7월 5일의 “냉면집 주인이 ‘대장균 단독범행’ 주장하는 격”이라는 촌철살인 발언과 2010년 서울시 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한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라는 공약이 가장 먼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모나리자가 비싸도 보는 건 싸야죠.”도 있었다. 그의 재치와 유머는 독서에서 길러진 것은 아니었을까.
사전 공연이 시작한다. ‘문화인 노회찬’을 조명하는 세션2의 제목은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이다.
첫 공연은 레인보우앙상블의 플룻 연주였다. 레인보우앙상블은 노회찬재단의 2025년 희망악기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두 어린 소녀들과 한 명의 어른 남성이 함께 플룻을 연주한다. 소녀들은 긴장한 듯 했지만 남성 연주자의 리드에 맞춰 끝까지 힘있게 연주했다. 마지막 플룻 연주를 한 남양주 경기DN오케스트라 조은령 관장은 노회찬의 생전 첼로 연주를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면서 그의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라는 비전이 굉장히 놀라웠고 자신 역시 누구나 악기 하나는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서 악기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레인보우앙상블은 1991년에 설립되어 경기도 남양주를 중심으로 한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이자 회복과 성장의 터전이 되어온 샬롬의집 소속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을 위한 토요일 음악돌봄수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 우리의 꿈이 자라는 소리. 음악으로 자라는 우리. 희망을 연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악기 하나가 아이들의 세상을 넓혀주었습니다. 노회찬재단과 함께 우리의 꿈이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 마음을 기억하며 감사의 연주를 전합니다.”
레인보우앙상블 아이들이 쓴 편지와 형형색색의 발랄한 그림이 그려진 재활용박스가 6411홀 입구에 놓여 있었다.
다음은 샬롬의집 D-MMT의 댄스공연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자한길 알럼이 연출했는데, 전반부는 한국에서 일하는 기계로 살아가는 고통의 시간을, 후반부는 기계로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춤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공연은 이주민과 함께 문화컨텐츠를 제작해온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의 노래이다. 그녀가 한국어로 ‘바다’라는 뜻을 가진 제목의 방글라데시 노래를 부를 때 6411홀에 있던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이 함께 불렀다. 그들의 떼창을 들으며 노래 가사가 궁금해졌고 문득 이주민과 연대하는 한국인이 이주민의 모국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부를 수 있다는 것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이주민들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 그들은 사람이며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고, 사랑하고, 웃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가 원래는 아니었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였다. 노회찬이 날린 희망의 씨앗은 이제 ‘누구나’에게로, 이주민까지 포함한 ‘누구나’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씨앗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아이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돌봄 공백을 견뎌야 했던 이주 배경 아이들이 희망악기를 지원받고 음악을 배우고 무대에 선 뒤 아이들은 계속 다음 연주할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편지 속 한 구절인 “희망을 연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그런 말이었구나.
매년 희망악기 지원사업에 지원하는 팀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세션2의 진행을 맡은 민정연 노회찬재단 이사는 희망악기 지원사업의 심사를 맡았을 때 재원이 부족해서 많은 팀을 지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노회찬의 이름으로 멀리멀리 그리고 더 많은 곳으로 날아가야 할 희망의 씨앗 중 어쩌면 가장 위대한 것은 희망악기가 아닐까 싶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누구나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 그 희망의 씨앗을 함께 날리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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