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검사'가 평생 한 일은 '고문 자백'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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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검사'가 평생 한 일은 '고문 자백'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2026-07-08 17:06: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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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검사가 평생 한 일은 고문 자백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정진규(鄭鎭圭, 1946~) 항목에서 가장 압축적인 장면은 1985년 조일지 사건이다. 조일지가 검사 정진규에게 "내가 부인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수사기관에 돌아갈 수도 있습니까" 물었을 때, 검사의 대답은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였다. 보안사에서 의자에 묶인 채 물속으로 처박히는 고문을 당했던 사람에게, 검사가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협박한 것이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정통 엘리트 검찰관료의 손에서, 정의는 이렇게 작동했다.

1946년 충남 공주 출생, 화려한 인맥, 화려한 경력

정진규는 1946년 9월 25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서울 돈암국민학교, 경기중·고등학교,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인권변호사 조영래(1947~1990)와 경기고·서울법대 동기였다는 사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 1975년 사법연수원 5기를 수료했는데 동기로는 대법관 박일환, 헌법재판관 이동흡, 검찰총장 김종빈 등이 있다.

세계사 속의 동류, '협박으로 정의를 만드는' 관료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동독 슈타지 심문관들은 종종 "협조하지 않으면 가족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식의 암묵적 협박을 사용했다. 정진규의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 정확히 같은 구조다. 직접 고문하지 않으면서도, 고문의 공포를 무기로 자백을 강요하는 것.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책임을 회피하기 좋은 형태의 국가폭력이다.

1984년 허철중 사건, 통역도 거부당한 21일 불법구금

정진규의 반헌법 행위의 첫 정점은 1984년 재일한국인 허철중 간첩조작사건이다. 도쿄 출생의 허철중은 보안사에 21일간 불법구금 돼 의자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물속에 잠기는 고문, 전기고문을 당했다. 정진규는 이 허위자백을 그대로 받아 기소했고, 1984년 6월 징역 8년이 선고됐다. 2012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검찰이 오인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1984년 조일지 사건, 일본어 통역 거부, 그리고 거짓 항소이유서

조일지는 히로시마 출생으로 한국어가 서툴렀다. 검사접견 시 통역을 요청했으나 정진규는 거부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조일지가 보안사에서 9월 1일부터 38일간 불법구금 됐다는 사실을 정진규가 알고 있었으면서도, 항소이유서에 구금 시작일을 24일이나 늦춰서 허위로 기재했다는 것이다. 조일지는 상고이유서에서 이를 직접 폭로했다.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검사 정진규가 항소심에서 사실에 반하여 엉터리 항소이유서를 법정에 제출한 것"이라고. 2012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1985년 유지길 사건, "O도 아니고 X도 아니고 약간 O쪽으로 기울어진 △"

재일한국인 유지길은 권총으로 머리를 위협받고 전기코일로 성기를 감은 채 고문당했다. 그런데 보안사 조사가 너무 부실해 공소유지가 불가능해지자, 정진규는 기소 대신 '공소보류' 처분을 내렸다. 통역으로 동석시킨 보안사요원을 통해 위협효과를 노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보안사가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하려 했다고 결론 내렸다.

1985년 홍종열·변두갑 사건, 33~68일 불법구금을 알면서도 묵인

정진규는 이사철(1952~), 이준보와 함께 홍종열·변두갑 간첩조작사건도 담당했다. 안기부가 홍종열을 33일, 변두갑을 68일 불법구금하며 가혹행위를 가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기소했다. 변두갑은 2012년, 홍종열은 2015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1985년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 대학별로 검사를 배정한 조직적 탄압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서 서울지검 공안부는 학교별로 담당검사를 정했다. 최연희가 서울대, 고영주(1949~)가 고려대, 이사철이 연세대, 정진규가 서강대를 맡았다. 정진규가 담당한 서강대 노광호는 검찰신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결국 징역 4년이 선고됐다.

문민정부에서도, 출세는 계속됐다

검찰경력 내내 정진규는 정래혁 축재 투서사건, 전국기관차협의회 파업, 범민련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수사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을 지휘했고, 김대중 정부에서도 전주·울산·인천지검 검사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 서울고검장, 법무연수원장까지 올랐다. 2005년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정권이 몇 번 바뀌어도 그의 출세는 멈추지 않았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슈타지식 암묵적 협박은 가장 교묘한 형태의 국가폭력으로 평가된다. 직접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고문의 공포를 무기로 쓰는 것이, 직접 고문하는 것보다 책임추궁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정진규의 그 한마디를 떠올렸다.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직접 때리지 않고도 사람을 굴복시키는 그 권력의 언어가, 형태를 바꿔 지금도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정진규 ⓒ반헌법행위자열전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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