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최근 중국 조선소의 선박 수주량 폭증 현상으로 국내 선박 엔진 제작사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역설을 낳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 슈퍼사이클 속에 나날이 강화되는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한 이중연료(DF) 엔진 수요가 급증한 반면 이를 양산할 수 있는 선박 엔진 제작사는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지난 상반기 기준 중국 조선소의 수주량은 이미 전 세계의 72%를 차지하며 사실상 시장을 잠식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1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 한화엔진, 1분기 수주액·수주잔고 절반 중국향
중국의 수주량 세계 1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친환경 이중연료 엔진 추진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 위주의 선별 수주 전략으로 ‘양보다 질’을 선택, 글로벌 선주사로부터 신조선 오더를 받기 위해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완성선 기준으론 중국과 게임이 안 되지만 선박 엔진 분야에서는 한국이 절대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주요 선박 엔진 제작사는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HD현대마린엔진 △한화엔진 등 3곳이다. 고부가 이중연료 엔진 분야에서 이들 3사의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중국향(向) 수주가 급증하고 있다.
HD현대마린엔진은 지난달 중국 우후조선소와 280억원 규모의 선박 엔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 우후조선소 산하 웨이하이조선과 204억원 규모 계약을 맺은 데 이어 5월에도 우후조선소로부터 558억원 상당의 선박 엔진을 수주했다. 6월 거래까지 포함하면 우후조선소 계열 관련 수주액만 1000억원이 넘는다.
HD현대마린엔진은 지난 상반기 총 15건, 6727억원의 선박 엔진 공급계약을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매출 4024억원의 1.7배 규모다. 중국향 물량 비중이 높아 이 기간 공급계약 15건 가운데 중국 조선소와 맺은 계약은 12건, 4991여억원으로 집계됐다. 건수 기준으로 80%, 금액 기준 74.2%가 중국 조선소에서 발주한 물량인 셈이다.
▲ 선박엔진 3사, 전체 저속엔진 생산량 50% 담당
한화엔진도 중국 조선소향 수주량 증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신규 수주액 1조2000여억원 중 절반가량을 중국 조선소가 발주했다. 한화엔진의 수주잔고 역시 중국이 49%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한화오션(26%), 삼성중공업(25%)이 추격하고 있다.
중국발 선박 엔진 수요에 국내 조선사에 납품할 물량까지 더해지며 국내 선박 엔진 3사의 공장 가동률은 100% 안팎까지 치솟은 상태다. 실제 1분기 기준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의 가동률은 107.5%로 생산능력(Capacity)을 웃돌았다. 한화엔진 선박 엔진 부문도 100.5%로 100%를 초과했으며 HD현대마린엔진의 선박용 엔진 가동률은 91.67%로 포화 상태 직전이다. 핵심 부품인 2행정 크랭크샤프트는 126.38%까지 치솟았다.
국산 선박 엔진 생산의 병목 현상 심화는 대형 선박용 저속엔진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세계적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저속엔진의 원천기술은 독일 에버렌스(옛 MAN ES)와 스위스 윈지디 두 곳만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과 기술제휴를 맺고 양산하는 업체도 소수에 불과하다. 미래에셋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3사가 전 세계 저속엔진 생산량의 약 50%, 생산능력 기준으론 60%가량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중국 조선소의 전선(全船) 건조 역량은 일취월장하고 있지만 LNG·메탄올·액화석유가스(LPG) 등 대체 연료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연료 엔진 분야에서는 아직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 수주 증가→실적 개선...영업익 세 자릿수↑
수주 확대는 선박 엔진 3사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8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6% 증가했다. 같은 기간 HD현대마린엔진도 엔진 인도량 증가와 단가 상승에 힘입어 32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지난해 1분기와 견줘 216.5% 급증했다.
한화엔진의 1분기 영업이익은 5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4%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14.9%를 달성, 지난 2024년 한화그룹 편입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공급 여건은 한정돼 있는 데 반해 수요가 집중되자 국내 선박 엔진 제작사들은 생산시설 증설을 검토·진행하고 있다. 한화엔진은 802억원을 투자해 경남 창원에 4행정 중속엔진 전용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올해 3분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증설을 통해 중속엔진 시장에 재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저속엔진 생산능력도 기존 340만마력에서 530만마력으로 향상시킨다는 방침이다.
현재 선박용 엔진 공장 가동률 92% 수준인 HD현대마린엔진은 이론상 120%까지 운영이 가능해 추가 레버리지 여지도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향후 창원공장 B동을 활용한 증설 여력도 확보한 상태다.
SK증권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발 수주가 지속되면서 HD현대마린엔진의 슬롯(생산 설비·순번)은 2027년 3분기까지 대부분 소진된 상태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삼호 등 계열사 예정 물량까지 감안하면 2027년 전체 생산 슬롯은 매진된 상황이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는 제품 믹스 개선과 평균판매단가(ASP) 상승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며 "친환경 선박 발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조선소의 이중연료 엔진 수급난이 계속되면서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2028년까지 가격과 수량(P&Q) 기반의 이익 성장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조선업계 관계자도 “이중연료 엔진 확보 여부가 조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며 “엔진은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확대하기가 힘든 만큼 증설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글로벌 수요가 공급을 웃돌아 당분간 국내 선박 엔진 제작사들의 높은 가동률과 중국 조선소의 빠듯한 수급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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