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함께 먹이고 있는 영유아 교육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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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함께 먹이고 있는 영유아 교육의 현주소

베이비뉴스 2026-07-08 08:28:00 신고

유치원 입학설명회 시즌이 다가오면 놀이터에서 양육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 묻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어때요? 어떤 점이 좋아요?” “어떤 유치원에 보내실 거에요? 어디 어디 알아보셨어요?”라는 질문이 한두 달 이상 오고 간다.

두해 전 가을, 첫째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볼 때 나에게 있어 좋은 유치원의 기준은 ‘선행교육을 시키지 않는 곳’ 그리고 ‘아동 중심, 놀이 중심의 개정 누리과정의 철학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엄마들로부터 얻는 정보나 평판보다 이 기준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기준이 확고했던 만큼 걱정이 컸다. 어쩌다 학구열이 높은 동네로 이사와 주변을 둘러보니 기관마다 특별활동/특성화 프로그램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가장 많이 성장한다. ⓒ베이비뉴스

여러 유치원의 입학설명회를 다녔다. 한 유치원은 설명회의 대부분을 특별활동과 특성화 프로그램을 끝없이 소개하는 것에 할애했다. 과연 아이들에게 자유놀이 시간이 주어지는지가 의심될 정도로 하루 일과표가 빽빽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스마트 러닝을 도입했으니 체험해보시라며 스마트 러닝 기기를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기관이 얼마나 선행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땀흘려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담한 마음이 밀려왔다. 몇 곳을 더 다녀보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짓수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너무나도 많은 기관이 초등학교 입학 대비를 위한 선행교육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돌리고 있었다.

딱 한곳에서 유치원의 운영 철학에 대한 원장님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설명회에서 원장님이 가장 먼저 한 이야기는 만 3세 아이들의 놀이였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가장 많이 성장합니다.” 이 말을 듣기가 이토록 어려웠다니!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인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서 말씀해주셨고, 그에 맞춰서 어떤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생태교육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주 1회 숲에 가서 활동하는 시간도 있었다.

마음 속으로 ‘이 곳이다! 이곳에 등록해야겠다!’라고 반갑게 다짐하는데 입학설명회의 마지막 안내를 들으며 아쉬움이 몰려왔다. 특별활동에 대한 안내였다. 결국 이 원도 특별활동의 가짓수나 내용은 다른 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만 3세 아이들에게 놀이가 가장 중요하지만, 부모님들의 요구가 있어서 저희 원은 이런 특별활동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원장님의 목소리가 기운없게 들렸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복잡한 심경으로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나는 결국 이 원에 등록을 하지 못했다.

◇ 입시 경쟁의 불모가 되어벌린 영유아 교육

나는 가끔 유치원 앞을 지날 때 원장님과 교사들의 고군분투를 혼자 상상해본다. 처음부터 부모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영유아기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놀이라는 것을 부모 교육으로 알려주려고 하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매년 거세지는 부모들의 요구, 그리고 주변의 기관들이 담합이라도 한 듯이 특별활동/특성화 프로그램을 확대해가는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나몰라라’ 하는 상황 속에서 원장님과 교사들은 그동안 어떤 싸움을 해오셨을까.

지금의 영유아 기관은 입시 경쟁의 볼모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기관이 학부모 수요조사라는 이름으로 선행교육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마치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학교가 입시를 위한 학원으로 전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유아 기관마저 입시를 위한 준비 기관으로 전락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영유아 기관을 지켜주는 것이 개정 누리과정 일텐데, 기관마다 특별활동/특성화 프로그램의 가짓수를 보자면 “아동 중심, 놀이 중심”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어보인다.

아이를 키우면서 참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건강한 먹거리를 잘 챙겨 먹이는 일이다. 아이에게 당근과 파프리카를 먹이면서 소세지를 함께 먹인다면 과연 그 식사는 건강한 식사일까.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는 한가지는, 아이의 성장에 이로운 것을 하면서 동시에 해로운 것을 하지 않는 노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영유아 교육은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함께 주고 있거나, 아니면 점점 이로운 것은 줄어들고 해로운 것이 더 늘어나고 있는 형편 속에 있다.

생태 유아 교육이나 발도르프 교육 등을 표방하는 기관 이외에는 만 3세반부터 한글, 영어, 수, 과학 등의 특별활동/특성화 프로그램이 일반화되었다. 어떤 기관은 과학 실험 수업과 별도로 로봇, 코딩 수업까지 하기도 한다. 한국어 강사의 영어 수업만으로는 만족을 못해서 주 1회 정도는 원어민 수업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고 싶다는 부모의 바램은 예체능 프로그램의 과열도 불러온다. 빽빽한 시간표와 강사 위주의 주입식 프로그램, 가짜 놀이가 영유아 교육을 가득 채우고 있다.

유아기부터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 모험과 도전을 빼앗긴 아이들, 자율성을 기르지 못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 책상 앞에 앉아 일찍부터 연필을 든 아이들, 짜여진 시간표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아이들…

이렇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 나는 국가에 묻고 싶다

정신과 전문의인 김현수 박사님은 저서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에서 요즘 청소년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뛰어넘어 앞서가거나 혹은 여러 발달의 균형이 기울어져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적기에 하면 남들보다 뒤떨어진다고 하는 이상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된 속도, 과업에 대해 전보다 훨씬 더 균형 잡기 어려워하면서 정서적 그늘이나 분노의 축적이 일어납니다. 아이들의 학습 노동은 거의 학대 수준에 이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행복하지도 않을뿐더러 더 피곤한 삶 속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마음 고생을 드러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를 포기한다든가, 자신을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로 여긴다든가, 자신을 억압한 부모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든가, 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탈자로 살기를 결심한다든가 말이다.

이런 문제는 유아기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기 때문에 일어난다. ‘공부 제일주의’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참극이 영유아 교육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영유아 교육 현장에서는 누리 과정의 파행이 심각한 상황인데, 2024년 하반기 육아정책연구소는 '미래형 영유아 보육교육과정 설계 및 체제 구축 방안Ⅱ'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해력과 수리력은 영유아기에 문제해결을 위해 활용하는 능력으로 보아야 함. 독립적으로 문해력, 수리력을 영유아기에 길러야 할 능력으로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하는 능력, 궁금한 것을 알아보고 찾아보고자 하는 능력,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능력, 좌절하지 않고 회복하는 능력 등이 영유아기에 경험하고 길러져야 하는 주요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러한 주요능력이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영유아 교육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들의 책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영유아 시기 아이들의 뇌 발달에 대한 도서, 조기교육에 대해 경고하는 도서들이 매해 여러권씩 출판되고 있다. ‘진짜 놀이를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뇌를 망치게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많은 전문가들이 외치고 있다. 그런데 기관은 부모들의 요구가 크니 어쩔 수 없노라고 말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최소한의 법적 기준 위에서만 현장을 들여다본다.

나는 묻고 싶다. 영유아 교육 현장에서 형해화되어 가는 개정 누리과정의 철학과 원칙은 이대로 내팽겨쳐져도 되는 것일까? 왜 국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가?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무책임하게 말이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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