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어제까지 a의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는 부동의 사실이었다. 반전이 일어난 건 오늘이다. a의 알리바이가 눈 깜짝할 새 무너졌다. 범행 현장에서 a를 봤다는 b의 목격담이 나온 것이다. c가 숨겨둔 결정적 물증도 수사 당국에 제출됐다. 새로운 사실로 새롭게 판단해야 할 국면이다. 사실이 바뀌니 생각이 바뀌는 건 당연하다.
사실이 바뀌었는데도 예전 사실에 목을 매는 d가 있다. 심지어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는데도, 잘못된 그 옛 사실에 꽁꽁 묶인 e도 있다. 둘은 생각을 바로잡는 대신 사실들을 비튼다. 이따금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도그마의 늪이다. 이 도그마를 쓴 뒤 괄호를 둬 그 안에 신념, 독단적 교리, 독단적 신념이라고 함께 적어 넣은 글이 보인다. 과연 그것은 적절한가?
도그마(dogma)는 외래어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들온말)로 국어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가 외래어다. 도그마는 널리 쓰이지만 쉽지 않은 말이다. 괄호 안에 풀이를 넣는 것이 증거다. 잘 읽히려면 잘 풀어야겠다. 도그마의 첫째 정의를 옮긴다.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사전이 둘째로 정의한 것은 기독교 분야에서 쓰이는 내용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증명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 교의, 교조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둘째 뜻이 첫째 뜻으로 확장되었다.
버스 컴퓨터 피아노 따위가 대표적 들온말이다. 괄호 안 설명을 곁들일 까닭이 없다. 도그마처럼 어렵지 않다. 다 아는 쉬운 말이다. 그런데도 같은 들온말이니까 도그마에도 풀이를 덧댈 것까지는 없을까? 풀이를 병기하더라도 "신념"처럼 '짧게'만 하면 되지 않을까? 좋은 물음이 필요한 것은 이런 때다. "내가 도그마에 빠진 것 아닐까?" 그리고, 이런 답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외래어이더라도 어차피 설명하겠다면 '짧게'가 아니라 '정확하게' 하자."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글쓴이 페드로 알칼데, 멀린 알칼데 그린이 기욤 티오 옮긴이 주하선, 『철학의 은유들』, 단추, 2025 (성남시 전자도서관, 제공처 YES24)
2. 표준국어대사전
3.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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