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지난 6일 차기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정청래 전 대표의 연임 도전 여부와 송영길 의원의 출마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당내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친명계와 이른바 뉴이재명 세력, 강성 당원을 등에 업은 친청계, 그리고 재기를 노리는 친노·친문 구주류 세력까지 얽히고설킨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치열한 권력 투쟁을 두고 조선 후기 정계를 뒤흔든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의 대립을 떠올린다. 겉으로는 검찰개혁의 수위나 지방선거 책임론이 쟁점으로 부각되지만, 그 본질은 결국 "누가 당권을 장악해 자파 인물을 차기 대권 가도의 중심에 세울 것인가"를 둘러싼 권력 경쟁이라는 이유에서다.
총선 공천권 너머 2030 대권 헤게모니 노리는 당권 투쟁
역사적으로 노론과 소론의 갈등은 기사환국 이후 남인 처벌 수위와 예법 논쟁에서 촉발됐지만, 궁극적으로는 왕위 계승의 주도권 싸움으로 귀결됐다. 숙종 말기부터 경종 대에 이르기까지, 소론은 이미 즉위한 경종의 정통성을 수호하려 했고, 노론은 연잉군(훗날 영조)을 왕세제로 밀어붙이며 정권 교체를 시도했다. 후계 구도를 둘러싼 이 진흙탕 싸움은 영조와 정조대까지 이어지며 파벌의 흥망성쇠를 갈랐다.
민주당의 계파 갈등 역시 당면한 전당대회 이벤트를 넘어선 차기 후계 투쟁의 성격이 짙다. 검찰개혁이나 지방선거 평가를 둘러싼 논쟁의 이면에는 "어느 계파가 당대표직을 차지하고 2030년 대선 후보 구도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8·17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대표는 2028년 총선 공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김 전 총리의 출마 선언은 사실상 포스트 이재명 시대를 준비하는 첫 번째 전략적 신호탄인 셈이어서, 각 계파가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다.
이 구도 속에서 친노·친문 구주류는 판세를 흔들 수 있는 캐스팅보트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독자 후보 출마나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한편, 정청래계의 강경 노선이나 친명계의 실용 노선 중 어느 쪽과 손을 잡고 실리를 취할지 저울질하며 당권 경쟁의 방정식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노론식 명분론' 정청래 vs '소론식 실용주의' 김민석
조선 후기 노론은 주자학적 도통(道統)과 명분, 정통성을 앞세운 원칙주의 강경파였다. 이들은 남인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주장했다. 반면 소론은 이미 자리 잡은 군주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남인 처벌과 정국 운영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두 정파 모두 유교적 기본 질서에는 동의했으나, 명분과 원칙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희생과 충돌을 감수해야 하느냐라는 문제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분화는 현재 민주당 내부의 정체성 및 지지층 전략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정청래 전 대표를 필두로 한 강경파와 친노·친문 구주류 세력은 민주당 고유의 선명성 있는 정체성과 확고한 지지층(집토끼) 결집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특히 정청래계는 검찰개혁과 당원 주권을 당의 절대적 가치로 내세우며,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에서 "검찰에 단 한 조각의 수사권도 남겨두어선 안 된다"며 배수진을 친다. 이들은 검찰과의 대립을 과거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 지으며, 강성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 정통성과 명분, 내부 결집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노론형'에 가깝다.
반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민석 전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주류 세력은 실용과 외연 확장을 중요시한다. 검찰청 폐지라는 대방향은 공유하되, 중도층의 피로감과 민생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차분히 완수하겠다는 신중론이다. 이들은 "정치의 중심 의제는 물가, 일자리, 부동산 등 민생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자신을 중도·실용 노선으로 포지셔닝한다. 정권 교체를 위해 현실과 외연 확장을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점에서 소론형 실용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파벌 싸움으로 변질된 예송논쟁과 검찰개혁
효종과 인선왕후의 국상 당시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를 두고 싸운 예송논쟁(禮訟論爭)은 단순한 예법 다툼이 아니었다. 복제(服制)의 해석에 따라 정권의 향방과 신권(臣權)의 크기가 달라지는 고도의 정치 게임이었다.
오늘날 민주당의 검찰개혁 논쟁 역시 비슷한 위험 징후를 보인다. 공소청 설치, 보완수사권 문제 등은 헌법 질서와 권력기관 견제를 위한 중차대한 제도적 과제다. 그러나 이 논의가 당내에서는 "누가 선명한 개혁 세력인가", "누가 후퇴한 타협주의자인가"를 판별하는 충성심 검증 도구로 전락하곤 한다. 제도의 본질을 둘러싼 백가쟁명이 어느 순간 파벌 간의 사상 검증과 줄 세우기로 흡수되면, 정책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민생은 실종된다. 과거 노론이 장기 집권 과정에서 사상적 경직성에 갇혀 조정 전체를 고사시켰던 역사의 기시감이 드는 대목이다.
조선 파벌정치가 민주당 전당대회에 던지는 경고
조선 시대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자 책봉, 사도세자 사건, 탕평책 등 격변의 국면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조선 후기 정치사 전체를 규정했다.
민주당의 계파 갈등 역시 8·17 전당대회 당일의 투표 결과로 매듭지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2028년 총선의 공천 방향과 2030년 대선 정국의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재편되기 때문이다. 선명성과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앞세운 강경파가 승리한다면 당원 주권 중심의 투쟁 노선이 가속할 것이고, 실용과 중도 확장을 내세운 이재명계가 힘을 얻는다면 체질 개선을 통해 정권 재창출 준비가 본격화할 것이다.
역사가 민주당에 던지는 진정한 시사점은 파벌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정당 내 이견과 정파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 싸움이 "누가 다음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만을 따지는 권력 투쟁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비전으로 국가를 경영할 것인가"를 겨루는 생산적 경쟁이 될 것인가에 있다.
조선의 정치 세력이 공존의 길을 모색하지 못하고, 상대 정파를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배타적인 사화(士禍)의 정치에 매몰되었을 때 국가 전체의 역량은 급격히 쇠퇴했다. 민주당이 계파 싸움에만 매달린다면 조선 후기처럼 국정 운영 능력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다음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할 가능성을 스스로 줄여 버리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막이 오른 민주당의 당권 경쟁이 단지 당 대표 한 명을 바꾸는 결과에 그칠지, 아니면 향후 10년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지, 국민이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폴리뉴스 서경선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