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제 이후 "손님이 돈 아닌 사람으로 보였는데"…그 제도, 국회가 또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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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제 이후 "손님이 돈 아닌 사람으로 보였는데"…그 제도, 국회가 또 미뤘다

프레시안 2026-07-07 21:26: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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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시내 중심가, 좁고 높은 도로교통 통신탑 위에 택시노동자가 살고 있다. 그가 지내는 곳은 너비 50센티미터 남짓한 철망이 원형으로 이어진 공간이다. 몸 한 번 편히 누이기 어려운 그곳에서 고영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림교통분회 사무장은 100일을 보냈다. 한낮 온도가 37도에 이를 때도 있다. 지나는 차들이 내뿜는 소음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혈압이 160까지 올랐더라고요. 마음은 괜찮았는데, 몸이 아니라고 알았나 봐요." 건강은 어떠냐고 묻자 고 사무장이 답했다. 고공농성을 하며 상한 것은 혈압만이 아니다. 다리 근육도 눈에 띄게 줄어 얼마 전부터는 고공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고 사무장이 고공에서 버티는 이유는 '택시월급제' 때문이다. 택시노동자 김재주 씨의 510일 고공농성을 계기로 2019년 만들어진 택시월급제법의 시행을 정치권은 7년 넘게 유예하고 있다.

농성 97일차인 지난 3일 인천 남동구 국회 교통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의 지역사무실 앞 25m 높이 도로교통통신탑을 찾았다. 그 아래 동료들이 지키고 있는 천막 농성장에서 통신탑 위에서 지내는 고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공농성 중인 고영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림교통분회 사무장. ⓒ프레시안(최용락)

20년차 택시노동자가 말하는 사납급제의 문제

20년 차 택시노동자인 고 사무장은 2006년 11월 지금 회사인 대림교통에 입사했다. 운전을 좋아했기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전북 전주로 이사해 처음에는 "알바"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랬는데 어느덧, 택시 회사가 평생직장이 됐다.

당연하게도 그가 다니는 회사에도 사납금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사납금제는 법인 택시기사가 매일 정해진 금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그 나머지를 갖는 제도다. 택시노동자들이 매일매일 사납금만큼의 빚을 지고 일을 시작하는 꼴이다.

그러니 택시노동자들은 마음이 급해진다고 고 사무장은 설명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사납금을 채워야 '내 돈'을 벌 수 있으니, "신호 위반 100% 다 하고, 과속 운전 100% 다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손님이 손님으로 보이겠나. 다 돈으로 보이지"라고 그는 한탄했다.

사납금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조가 있으면 노조와 합의 하에 정한다. 하지만 고 사무장이 가입한 택시지부가 아닌 다른 택시노조는 대부분 택시노동자의 방패막이 돼주지 못했다.

"택시 회사에는 노조가 없는 회사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노조 조합장들이 때 되면 사납금을 올리는 데 동의해줘요. 100명 일하는 회사에서 하루 4000원을 올려줬다고 쳐요. 한 달이면 1000만 원, 1년이면 1억 2000만 원 '꽁돈'이 생기는 거에요. 그 돈 일부가 어디로 가겠어요. 택시 노동자들만 피 빨아 먹히는 거죠."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고 사무장의 동료이기도 한 택시노동자 김재주 씨가 2017년 9월부터 510일 간 고공농성을 했다. 그 결과 2019년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가 관리하되, 택시노동자에게 주 40시간 이상 노동시간을 보장하고 그에 따른 급여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택시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후 법안 시행은 유예되고 있는 중이다.

▲ 2019년 1월 26일 택시회사의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며 전북 전주시청 망루에서 510일간 농성을 해왔던 김재주(오른쪽 세번째) 민주노총 택시노조 전북지회장이 동료들과 함께 망루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택시월급제 시행 후 "친절해지고 사고 줄었다"

지금 고 사무장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월급제를 적용받는 택시노동자다. 소수노조라는 한계를 딛고 오랜 대화와 싸움을 이어온 끝에, 7년여 전 사업장 내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월급제 시행을 이뤄냈다. 200만 원대의 기본급을 보장받고, 일정 금액을 넘는 운송수입금의 일부를 노사가 합의한 비율에 따라 양자가 나눠 갖는 식이다.

월급제 시행 이후 기본급이 보장되며 마음이 안정되니, 먼저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고 고 사무장은 말했다. 이제야 "손님을 돈이 아닌 손님으로 보게 됐다"는 것이다.

"사납금제 때는 손님을 빨리 내려주고, 빨리 다시 태우는 데만 신경썼어요. 이제 아니에요. 택시에 탄 손님이 즐거워야 내가 즐거워요.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시면 친절하게 실어드릴 수 있어요. '골목으로 좀 더 들어가달라'는 요청에도 흔쾌히 응할 수 있게 됐어요. 어떨 땐 제가 '조금 더 들어가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해요. 그러면 손님들도 고마워하시죠. 택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사고도 줄었다. 택시월급제 시행 이후 고 사무장은 조합원들의 사고내역을 정리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신호위반 등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게 되니, 사고가 90% 줄었다"고 그는 자신했다. 그렇다고 택시노동자가 버는 돈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택시월급제를 시행해도 매출 저하가 없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혹시 월급제 시행과 함께 택시회사의 수입이 줄진 않았을까. 이에 대해서도 노사는 합리적인 방책을 마련했다.

"많은 사람이 '월급제 하면, 놀고 먹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아니에요. 저희 단협에는 예를 들어, 전주에서 일하는 택시노동의 평균 운송수입이 한 시간에 2만 원이라고 하면, 그보다 현저하게 낮은 경우 징계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어요. 손님이 많은 날도, 적은 날도 있으니 일정 기간 평균이 기준이에요. 노사가 대화로 풀면, 합리적인 월급제 설계 얼마든 가능합니다."

▲택시 월급제 시행 촉구 농성장. ⓒ프레시안(최용락)

월급제 미루면서…노동부도, 국회도 농성장을 찾지 않았다

그런 택시월급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돼 다른 택시노동자도 그 혜택을 보는 것은 고 사무장의 오랜 바람이다. 택시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 반응은 달랐다. 고 사무장이 고공에 오른 지난 3월 29일, 올해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택시월급제 시행을 또 한번 유예하려는 국회 움직임이 있었다. 고공에 오르기 전부터 국토교통위원장인 맹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과 수 차례 면담을 가졌지만 소용 없었다.

이어 4월 26일 국회는 끝내 택시월급제 시행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을 담은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고 사무장이 고공에 오른지 29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의원도 농성장을 찾지 않았다.

당시 심정을 묻는 말에 고 사무장은 "분노스러웠다"고 답했다. 택시노동자 김재주 씨가 510일 고공농성을 했을 때 정치권이 한 택시월급제 시행 약속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술책이었나"라고도 물었다.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정치권은 택시월급제 시행 유예 이유로 택시업계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들었다. 고 사무장은 그 과정에서 택시회사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료만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2년 전 국회가 택시월급제 시행 유예의 명분을 만들려 돈 들여서 TF를 만들었어요. 거기에 회사가 낸 자료를 보면, 200~300킬로미터 운행한 택시의 매출이 0원인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정확한 매출 계산을 위해 카드 결제 자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공개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해라. 아니면 원칙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택시월급제 시행 촉구 농성장. ⓒ프레시안(최용락)

"억울한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 한번만 살펴봐달라"

앞으로도 고 사무장은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월급제 시행을 촉구하는 의미도 있지만, 바로잡아야 할 택시업계의 문제가 또 있다. 미터기 등을 통해 노동시간 측정이 가능한데도, 택시노동자에게 간주근로시간제를 적용하는 문제다.

간주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 노사가 합의한 시간이나, 통상적으로 필요한 시간만큼 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이를 유지하는 한, 10시간 일 시키고 임금은 3, 4시간 어치, 그것도 최저임금 정도만 주는 사납금제의 모순을 드러내기 어렵다고 고 사무장은 강조했다. "시행령 제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인만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짚었다.

물론 택시월급제에 대한 꿈도 버리지 않았다. 고 사무장은 "국회 택시월급제 TF 자료를 한 시간만 들여다보면, 회사가 엉터리 자료를 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며 "대통령이 꼭 이 문제를 들여다 봐주면 좋겠다. 현장에서 억울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번만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고 사무장이 인터뷰 말미에 꺼낸 말도 시민들을 향했다.

"고공농성을 하다 보면, 손을 흔들어주시는 분, 차창을 내리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힘이 나요. 그런 분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선전전 말미에 늘 시민 여러분에게 인터넷 검색창에 택시 고공농성 6글자를 쳐달라고, 한 번만 살펴봐 달라고,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힌 사연이 있는지 봐달라고 이야기해요. 저희 목소리가 청와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 내주시는 시민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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