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Apocalypse)는 ‘장막을 들춰 보인다’는 뜻인데 신약성경 요한묵시록의 영문 명칭이기도 하다. 요한묵시록의 종말 이미지와 맞물려 세상 멸망을 의미하는 말이 됐다.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쉽게 컴퓨터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소프트웨어(SW)업계의 앞날이 어두워졌다. 거기에 투자한 사모펀드의 환매중단 등 위기가 속출하면서 구독형 SW의 종말을 뜻하는 사스포칼립스(Saas+Apocalypse)라는 말이 나왔다. SW업계만 그럴까. 미국 구조조정 전문기관 챌린저, 그래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의하면 미국에서 올해 1월에서 5월 사이 AI를 이유로 해고된 사람이 약 8만 8천명에 이른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한다면 노동 종말을 넘어 인류 종말이 오는 건 아닐까.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노동은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최고 가치였다. 농노를 해방시켜 산업사회의 핵심노동력으로 만들고 그들의 노동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했다. 그런데 대규모 자본 투입과 과학기술 발전으로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의 가치가 커졌다. 이젠 정신노동조차 AI가 대신한다. AI가 정말로 성공할지, 아니면 사람을 유혹하는 썩은 동아줄에 불과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사람의 노동은 과연 어떻게 될까.
비만치료제를 보자. 비만으로 인한 질병과 고통을 줄이고 생산적 삶을 되돌려 준다. 그러나 근육 손실과 영양 불균형 등 부작용을 수반하면 온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AI도 마찬가지다. 재해현장이나 단순·반복 업무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자리와 생계를 뺏는다면 그건 풍요가 아니라 새로운 억압이다. 기본소득 등 돈이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AI에 맡기고 여가만 누리는 삶은 멈춘 시계처럼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AI에 종속시킬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AI를 막을 것이 아니라 그 과실이 인간 노동의 존엄을 해치지 않도록 사회적 규칙을 새로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과 직업훈련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의 교육은 AI가 가장 잘하는 암기와 반복에 맞춰져 있다. 앞으로의 노동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창의적 기획·설계, 공감과 윤리적 의사결정, 신뢰 형성·축적·활용에 집중돼야 한다. 돌봄, 예술, 교육처럼 사람의 감성과 온기가 핵심인 분야도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강력한 신체만이 새롭고 다양한 노동을 담을 수 있다. 사람의 신체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난치병 치료, 재활의학, 인공 혈관, 장기, 신체기관 등 분야가 다양하다. 물론 신체 약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술도 중요하다. 두뇌 등 신체에 초소형 칩을 심어 컴퓨터 등 기기를 움직일 수 있다. 신체장애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능력의 고양에 있다. 뇌질환을 치료하고 인지능력을 높이는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AI가 가져오는 부작용과 위험을 억제할 수 있다. 나아가 그간 인류가 풀지 못했던 생명, 우주 등 숱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AI를 지휘, 통제하는 능력을 넘어 인간과 우주의 미래를 기획, 설계, 주도하는 역할이 새로운 인간의 노동이 돼야 한다. 그 규칙을 설계하는 일도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몫이다. 그것만이 AI 시대, 진정한 인간의 노동혁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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