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이하 전자담배)'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명동, 성수 등 서울의 주요 상권에 위치한 전자담배 점포를 찾는 고객 10명 중 9명이 외국인 관광객일 정도다. 이미 해외 SNS 플랫폼 등에서도 '한국 방문 시 구매 필수 리스트' 상위권에 액상형 전자담배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국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구매 행위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 번 사면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원" K-전자담배에 푹 빠진 외국인 관광객들
요즘 명동 거리를 가보면 화장품 쇼핑백 대신 전자담배 액상 제품이 가득 든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개인 소비용 또는 귀국 후 지인 선물용으로 대량 구매한 제품들이다. 심지어 한국 소비자들은 가성비가 떨어져 잘 쓰지 않는 1회용 제품들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자담배 점포를 찾으면 한 번에 10~20만원은 기본이고 많게는 수백만원을 쓰는 경우도 빈번하다.
명동 일대 전자담배 점포들도 외국인 손님맞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알리페이·위챗페이 등과 같은 해외 결제 서비스 도입은 물론 중국어·영어에 능통한 직원도 배치하고 있다. 명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명동 일대 상권에서 위치한 전자담배 점포는 약 21곳 가량이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전자담배 관련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높은 권리금을 지불하면서 점포를 차리는 점주들이 늘어난 결과다. 기존 화장품 매장이 철거된 자리에 대형 전자담배 매장 들어서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명동에서 전자담배 점포를 운영하는 김명호 씨(32·남)는 "한국 소비자들은 액상을 한두 개씩 사 가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은 기본 10~20개씩, 많게는 수십 개가 들어있는 박스 단위로 구매한다"며 "인기가 많은 특정 과일향 액상은 관광객 몇 팀만 다녀가도 진열대가 텅 비어버릴 구매 단위가 압도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매장은 물론 주변 매장 대부분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외국인 손님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플랫폼 등에는 우리나라 전자담배 관련 제품 관련 게시물이 여럿 존재한다. 게시물에는 명동·홍대 대형 전자담배 점포의 위치, 추천 제품, 구매가능 수량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심지어 중국 SNS플랫폼 웨이보에는 명동에서 박스째 구매한 수십 개의 전자담배 액상 제품 사진을 인증하는 게시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해당 게시물은 수만건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국인 관광객 데이비드 씨(42·남·가명)는 "한국 전자담배 점포는 영국과 달리 장난감 매장처럼 사고 싶게끔 잘 꾸며져 있다"며 "24시간 운영되는 자판기도 너무 편리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관광객 후언 씨(31·남)는 "베트남은 전자담배 규제가 엄격한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한국에 온 김에 출국 전까지 마음 편하게 피어볼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규제 문턱 낮고 종류 다양, 가격도 합리적…"관광 수입 증대엔 유리, 한국 이미지엔 불리"
외국인 관광객들의 전자담배 구매 열풍 배경에는 세계 각국의 담배 규제 강화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중국·베트남 등은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연초향을 제외한 가향 전자담배의 자국 내 유통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유럽연합과 미국 역시 가향 액상형 제품의 제조 및 판매 승인을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다. 제품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도 인기요인으로 꼽힌다. 매장 한 곳당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 제품을 팔다 보니 외국인들 입장에선 제품을 고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 요소라는 설명이다. 명동 매장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뤄린 씨(26·여)는 "중국에서는 과일향 전자담배를 살 수 없는데 한국은 어렵지 않게 구매가 가능해 깜짝 놀랐다"며 "청포도향과 수박향 액상을 총 10개 가량 구매했다"고 말했다.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외국인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 전자담배 액상 제품의 경우 법적으로 액상 니코틴 함량이 제한돼 있어 미국 등에서 판매되는 고농축 니코틴 제품에 비해 목 넘김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내 제품들은 높은 세율이 붙는 해외 제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한 전자담배 점포 관계자는 "중국은 한국보다 전자담배 가격이 2~3배가량 비싸다"며 "명동 전자담배 매장에서는 가격의 이점을 활용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자담배 제품 열풍이 단기적으로 상권 활성화와 관광수입 증대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으나 명동이라는 대표 상권의 장기적인 이미지 측면에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국 내 제도적 제약으로 억눌린 외국인들의 수요가 국내 유통 인프라와 만나 발현된 흥미로운 트렌드이다"며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늘고 매출이 증가하는 건 일단 긍정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여전히 담배는 유해품이라는 인식과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상권 전체 분위기가 전자담배 위주로 재편되는 것은 국가 이미지나 전체적인 도심 분위기 형성 측면에서 무조건 좋다고만 볼 수는 없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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