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고문, 성폭력 등 보기 다소 불편한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19년 10월 어느 이른 아침, 집을 나선 류드밀라 후세이노바(64)는 갑자기 한 차량에서 뛰어나온 남성들에게 붙잡혔다.
류드밀라는 그들이 자신의 가방을 빼앗은 뒤 자신을 차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으며, 그렇게 러시아가 2014년 이후 점령해 온 우크라이나 내 일부 지역에서 비밀리에 운영 중인 구금시설에서의 "악몽"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제 인생의 그 3년 13일 동안, 제 영혼과 육신은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류드밀라는 자신을 억류한 이들 가운데 지역 교통경찰로 근무하다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세력에 합류한 우크라이나인 유리 테메르베크도 있었다고 말한다.
테메르베크는 아내와 자녀들, 손주까지 둔 56세 남성으로, 류드밀라에 따르면 그는 2주 뒤 악명 높은 구금 시설에서 러시아 억양을 쓰는 한 남성이 자신을 성폭행하는 현장에도 나타나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BBC 월드서비스는 조사를 통해 테메르베크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구금자 학대 혐의를 받는 또 다른 두 남성의 신원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도 밝혀냈다. 이는 우크라이나 및 국제 사법 당국의 손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서 운영되는 구금 체계의 실체를 조명한다.
이 남성들은 현재 러시아 본토 및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서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이들의 신원 공개야말로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류드밀라는 자신이 지목한 이들이 체포돼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들이 범죄자이자 고문 가해자라는 사실이 이들의 자녀들에게 알려지는 것만이 내게 남은 정의"라고 했다.
이들이 운영에 관여한 구금 시설은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학대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한 구금 체계의 일부다.
OHCHR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 억류됐던 이들은 구타, 전기충격, 모의 처형, 성폭력 등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종종 민간인들은 별다른 절차 없이 자의적으로 구금됐는데, 가족들은 이들에 관한 정보를 거의 전달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 크렘린궁은 OHCHR이 편향적이라고 비난한다. 올해 5월, UN은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국가 명단에 러시아를 추가했는데, 러시아 측은 이를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며 일축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민간인 1만6000명 이상이 러시아에 억류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발생했으며, 다른 일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일부 지역을 점령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20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류드밀라는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도네츠크주 노보아조우스크의 한 양계장에서 안전 관리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들이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이후 수년간 준군사조직의 통치가 이어졌다.
류드밀라는 점령 기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우크라이나 군대에 식량을 전달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군으로부터 감사의 메시지가 적힌 우크라이나 국기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류드밀라는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공유한 그 국기 사진이 친러 세력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저들이 나를 체포한 것 같다"고 말한다.
간첩 혐의가 적용된 류드밀라는 이졸랴치아 구금 시설로 끌려갔다. 그곳은 원래 공장이었다가 현대미술관으로 바뀐 건물이었으나, 이후 친러 세력이 장악하며 구금 시설로 탈바꿈했다. 이곳에 구금됐던 이들의 증언으로 이졸랴치아 구금 시설은 고문과 공포의 상징으로 악명을 떨치게 됐다.
류드밀라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신원을 모르는 남성들이 자신들 둘러싸고 몸을 꼬집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들 중 하나는 류드밀라를 향해 "이건 복숭아가 아니네. 말린 살구도 아니야. 건포도야" 같은 말들을 했다.
수감자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계속 서 있어야 했으며, 밤에도 밝은 조명이 꺼지지 않았다.
구금 시설에서 보낸 처음 며칠간 그는 다른 감방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에 시달렸다.
"그토록 끔찍한 비명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2주 뒤, 류드밀라는 2층으로 끌려갔고, 그곳에는 '코발'이라 불리던 한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발은 류드밀라에게 "너는 여기에 '휴식'하러 오는 남자들에게는 너무 늙었다"며 비웃었다.
그 자리에는 테메르베크도 있었는데, "비아냥거리며…웃고 있었다"고 한다.
이어 류드밀라는 코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류드밀라는 문서에 적힌 그의 이름을 직접 봤고, 그가 현지에서 우크라이나 경찰로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테메르베크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테메르베크가 러시아가 지원하는 준군사 조직이 세운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산하 국가보안부(MGB)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검찰은 그가 "테러 단체"의 일원이라며 형사 절차에 착수했는데, 이는 친러 세력과의 협력 혐의를 적용할 때 우크라이나 당국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BBC는 테메르베크와 다른 학대 의심자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고자 우크라이나의 오픈소스(공개정보) 조사관인 보흐단 코소하트코, 블라디슬라프 치리크와 협력했다.
이 두 조사관이 우크라이나의 조사 단체 '트루스 하운즈'와 함께 진행해 온 작업을 바탕으로, 구금자들의 증언이나 SNS 게시물, 언론 보도, 우크라이나 검찰 측 문서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이 남성들을 추적했다.
BBC와 협력한 조사관들은 테메르베크가 대학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전공했으며, 아내와 20대 딸과 아들, 그리고 손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전 SNS에 올라온 사진 속 테메르베크는 우크라이나 경찰 제복 차림을 하고 교통경찰 배지를 달고 있다. 다만 취재진은 그의 현재 직업은 확인하지 못했다.
류드밀라는 이 사진 속 남자가 자신을 체포한 사람들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테메르베크를 본 것은 2021년 말로, 그는 류드밀라를 "년"이라고 부르며, 시베리아로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다만 취재진은 '코발'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다.
아울러 류드밀라는 이졸랴치아 구금 시설에 억류됐을 당시, '예르막'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교도관으로부터 흙과 쓰레기가 섞인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도록 강요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음식을) 뱉어냈지만, 여전히 입안에 남아 있었다"며 "그 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그는 현재 음식을 조리하는 냄새조차 견디지 못하며, 정상적으로 식사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다.
류드밀라는 교도관들이 종종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웠기 때문에 예르막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었다고 말한다.
한번은 예르막이 그의 감방에 들어와 "너는 우크라이나 편이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정의의 편이다'라고 답하자 구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류드밀라는 BBC와 협력 중인 수사관들이 SNS에서 예르막의 사진을 찾아냈을 때 그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됐다. 사진 속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있거나,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거나, 친구들과 술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2024년경으로 비교적 최근 촬영된 사진이었다.
예르막의 정체는 탐사보도 단체인 '벨링캣'과 이졸랴치아 구금 시설에 수감됐던 우크라이나 언론인 스타니슬라우 아스예예프에 의해 최초로 신원이 파악됐다. 그의 본명은 루슬란 예리오미체프로, 현재 46세이다.
아울러 그의 SNS 계정에 따르면, 그는 도네츠크 국립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예리오미체프가 전쟁 포로와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등 여러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
예리오미체프가 지금도 이졸랴치아 구금 시설에 근무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SNS에 게시물을 보면 아내와 딸, 친구들과 함께 크림반도에서 휴가를 즐기는 등 여전히 근처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테메르베크와 예리오미체프는 모두 원래는 우크라이나 국적이었으나, 이후 러시아 여권을 취득했다.
류드밀라는 이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이들은 지금도 자유롭게 살아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면서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수년의 시간을 앗아갔다"고 토로했다.
류드밀라는 2022년 포로 교환을 통해 석방될 수 있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그는 "친구들은 울면서 서 있었지만 나는 울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이 감정, 느낌이 내 안에 얼어붙어 있다…가끔은 정말 울고 소리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류드밀라는 남편과도 다시 만나 현재 수도 키이우에 살며 자신처럼 구금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운영하는 한편, 비밀 네트워크를 통해 여전히 포로로 잡혀 있는 이들에게 가족들이 보낸 소포를 전달하는 일도 하고 있다.
한편 BBC는 언론 매체, 수사관, 인권 단체들의 보고서를 교차 분석해 러시아의 이같은 구금 시설 네트워크의 규모를 지도화할 수 있었다.
BBC는 2023~2025년 사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민간인과 전쟁 포로가 구금됐던 시설 93곳을 확인했다. 이중 약 3분의 1은 세무서, 호텔, 차고 등 다양한 건물을 개조한 비공식 시설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 본토 내에서도 102곳을 추가로 확인했다. 국제기구들은 이러한 시설에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2000명이 이러한 구금 시설을 거쳤다고 말한다.
올렉시 시박(42)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을 점령한 직후 체포한 민간인 수백 명 가운데 자신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친러 매체들은 이를 '테러리스트 단속'이라고 묘사했다.
화물선 선원이었던 올렉시는 점령 초기 몇 달 동안 노인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돕는 한편, 러시아 점령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전단지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할 수 있는 만큼 저항했습니다."
그렇게 체포된 올렉시는 과거 헤르손의 경찰서였던 시설로 끌려갔고, "물건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제 생식기에 전기 고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 군은 헤르손을 탈환했다. 도주 과정에서 친러 세력은 일부 수감자들을 데려갔으나, 다행히 이들의 차량에 자리가 부족해 올렉시는 탈출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헤르손의 이 구금시설의 운영 책임자로 러시아 옴스크시의 구금시설에서 경찰로 근무했던 안드레이 스피박을 지목했다. 검찰은 그를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대우 및 전쟁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BBC와 협력한 조사관들에 따르면 스피박은 올해 40세이며, 옴스크 출신이다.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그는 낚시, 사냥, 여행 등을 즐긴다.
최근 몇 년간 촬영된 사진을 보면, 그는 옴스크로 돌아와 러시아 내무부 행사에도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사관들은 그가 택시 운전사로 일하기 위해 차량을 등록한 사실도 확인했다.
한편 BBC는 이 기사에 담긴 의혹과 관련해 테메르베크와 예리오미체프, 스피박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주영국 러시아 대사관은 러시아가 "줄곧 국제법과 법치주의를 옹호"해왔으며, 우크라이나 분쟁 중에 발생한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기록돼 있으며,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가 운영하는 교도소에서 자국민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수십 명에 대해 법적 절차를 이어가고 있다. 이중 소수는 결석 재판을 통해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BBC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구속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2021년 키이우에서 체포된 이졸랴치아 구금시설의 전 소장으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우크라이나 검찰에 따르면 이졸랴치아 시설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검찰은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 관련 성폭력 사건을 400건 이상 확인했다. 지금까지 85명이 기소됐으며, 이 중 30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대부분은 결석 재판을 통해 선고됐다.
한편 올렉시와 류드밀라 모두 구금자를 학대한 가해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류드밀라는 "내게 정의란 복수가 아니"라며 "이들이 고의로 이러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내 정의다. 이들이 법에 따라 처벌받기를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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