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경기 성남 교제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관계성 범죄 위험도 평가와 피해자 보호 체계의 실효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상황 변화에 따른 위험도 재평가와 신속한 보호조치 연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경기 성남에서 발생한 교제 여성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경찰의 ‘관계성 사건 3단계 위험도 분류 체계’에서 고위험 피의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경찰은 피의자가 자진 출석해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 신청이나 유치장 유치 등 신병 확보 조치를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인 60대 여성 A씨는 약 4년간 교제한 B씨와 결별한 뒤 지속적인 연락에 시달렸다. A씨가 지난달 8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물리적 폭행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B씨에게 경고장을 발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B씨는 이튿날에도 A씨에게 15차례 전화를 걸고 항의성 문자메시지 8건을 보냈다. 이후 A씨가 B씨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자 경찰은 A씨를 고위험 피해자로 분류해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B씨에게 접근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후 B씨는 지난 5일 A씨의 퇴근길을 기다렸다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당시 스마트워치로 신고했고 경찰은 약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범행을 막지는 못했다. 경찰은 B씨가 자진 출석해 혐의를 인정하고 연락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 외에도 스토킹·교제폭력 관련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고위험 피의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B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도 검토하지 않았다.
경찰은 결별이나 외도 의심, 반복 신고, 폭력성 징후, 감금·위치추적 이력 등을 토대로 피의자의 위험도를 고위험·중위험·저위험 등 3단계로 분류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구속영장 신청이나 유치장 유치, 불구속 수사,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검토한다.
다만 신고 횟수나 이미 발생한 폭력의 정도에 평가가 치우칠 경우, 짧은 기간 반복 연락이 급증하거나 고소·접근금지 이후 보복 위험이 높아지는 과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 역시 위급 상황이 발생한 뒤 신고할 수 있는 수단일 뿐 가해자의 접근이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는 아니다. 피해자 보호장비 지급과 함께 가해자의 위험도를 수시로 재평가하고 필요할 경우 신병 확보나 격리 조치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최근 스토킹 행위 특성과 가해자의 위험성, 피해자의 취약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전문 평가도구인 ‘스토킹 위험성 평가·관리’(SAM)를 도입했다. 범죄분석관이 반복 연락과 미행, 위협, 폭력 전력, 집착·통제 성향 등을 분석해 구속영장 신청과 피해자 보호 조치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SAM은 전문 평가도구인 만큼 모든 사건에 자동 적용되지 않는다. 초기 평가에서 중·저위험으로 분류된 사건이 전문평가 대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위험 신호를 놓칠 수 있다. 반복 연락이 이어지거나 피해자가 고소하고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지는 등 상황이 바뀔 때 재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영남대 심리학과 서종한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관계성 범죄의 위험도는 하루나 일주일 사이에도 큰 폭으로 높아질 수 있다”며 “피해자의 취약성과 위험성을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재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즉각적인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또 “경찰과 검찰이 서로 다른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는 현재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 가능성을 실제로 잘 예측할 수 있는 문항을 중심으로 공통 평가 도구를 마련하고 연구자와 실무자가 지속적으로 검증·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성 평가와 피·가해자 관리를 분리하지 말고 전담 담당자나 기관이 평가 결과를 신변보호와 접근 제한 등 실질적인 조치로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과 법무부는 성남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제2의 남양주 스토킹 살인사건을 막겠다”는 취지로 고위험자 정보 공유 등 합동 대응 방안을 내놨다.
대응 방안을 보면 앞으로 경찰과 법무부는 성폭력·살인·미성년자 유괴·강도·스토킹 등 특정범죄로 형이 확정돼 전자발찌를 부착한 사람이 다시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법원으로부터 피해자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은 경우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경찰과 보호관찰기관이 함께 출동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전자발찌를 부착하지 않은 고위험 대상자의 범죄를 어떻게 예방할지는 이번 대책의 과제로 남았다. 사법처분 전 단계에 있는 고위험 가해자를 조기에 선별하고 관리할 방안에 대한 추가 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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