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언어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의 저자 주수자 소설가가 양평 문학촌을 방문해 언어가 가진 존재론적 가치와 한글 수난의 역사를 되짚는 특별 강연을 가졌다.
양평군은 주 작가가 지난 2일 양평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2026 소나기마을 문학교실’ 명사특강을 진행했다고 7일 밝혔다.
본 강연의 시작에 앞서 문학교실 참여 회원들이 준비한 환영 시 낭독회가 열렸으며, 강연이 끝난 후에는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소나기마을 촌장과의 대담 및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됐다.
주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뒤 미국 콜게이트 신학대학원을 마쳤으며, 현재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문학 영역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 주 작가는 “25년 동안 프랑스와 스위스, 미국 등에서 생활하다 보니 정체성이 흔들리고 뿌리가 약해져 영혼이 불안해졌다. 특히 모국어와의 연결이 느슨해졌다”며 해외 생활 중 직면했던 내면의 갈등을 털어놓았다. 이어 “타국을 떠돌며 겪은 정체성의 흔들림과 잃어버린 말에 대한 갈망이 결국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를 쓰게 된 원동력”이라며 “소설 속 인물이 죽음을 무릅쓰고 훈민정음해례본을 찾아가는 서사는 ‘나의 그런 상실에 대한 탐구이자 진심 어린 헌물’”이라고 저술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타향에서 마주한 “우리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청중에게 던지며 “언어를 빼앗기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언어가 삶의 모든 것이고, 인간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라는 명제를 도출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한글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그 치열한 역사를 소설로 완성하고자 했다”라고 덧붙이며 문자 보존의 생명력을 역설했다.
서사의 중심 소재인 ‘훈민정음해례본’은 1446년 편찬 및 반포되어 한글의 창제자, 목적, 원리 등을 규명한 문헌이다. 실물이 500여년간 실종 상태여서 창제 원리를 둔 억측이 무성했으나,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며 논란이 해소됐다. 해당 판본은 1962년 대한민국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그 문화적·학술적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했다.
주 작가는 이 같은 실증적 기록 위에 상상력을 결합해 일제강점기 속 실존 인물들이 우리말과 민족의 뿌리를 수호하고자 목숨을 걸고 이동한 행적을 작품에 담아냈다고 부연했다. 특히 총구 앞에서 처형된 국문학자 김태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에 위패를 봉안하고 손수 제사를 올리고 있다는 일화를 소개하자 좌중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어진 대담회에서 김종회 소나기마을 촌장은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우리 문학사에 오래도록 남을 작품”이라며 “훈민정음해례본의 역사와 의미를 소설로 되살린 작가를 문학교실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작품을 평가했다.
한편 매달 두 차례 목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2026 소나기마을 문학교실’은 주수자 소설가의 강연을 시작으로 향후 신작을 낸 배우 겸 작가 차인표, 재미 소설가 김주혜, 중국 시인 황누보 등 국내외 문인들의 특강 릴레이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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