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지주택) 제도가 도입 45년 만에 존폐까지 거론되는 대수술 국면에 들어섰다. '서민의 내 집 마련'이라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각종 분쟁과 조합원 피해가 누적되면서 제도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책 기조 변화가 본격화되는 2026년, 시장과 건설업계는 구조적 재편의 충격파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시곗바늘을 1년 전으로 돌려보면 흐름은 분명해진다. 2025년 6월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타운홀 미팅 등에서 지역주택조합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전수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주택 사업을 폐지 수준으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언급하면서, 지주택은 도입 이래 처음으로 존폐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올랐다. 이후 정부와 국토부는 전수점검과 제도 개선 작업을 병행하며 강도 높은 구조 손질을 예고했다.
'지옥주택조합'이 남긴 숫자
정부가 이런 방향 전환에 나선 배경에는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지표들이 쌓여 있다.국토부가 2025년 7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618개 지주택 조합 가운데 187곳(30.2%)에서 총 293건의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합 비리, 부실운영, 조합 탈퇴·분담금 환불 지연, 공사비 증액 갈등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며 제도가 자율적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문제점은 '지옥주택조합'이라는 오명으로 압축될 만큼 사회적 신뢰 훼손으로 이어졌다.
서구 주택시장의 협동조합주택이 조합원 주도의 자발성과 투명한 금융 구조를 토대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지주택은 시행·시공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과 계약 구조의 불투명성이 반복적으로 드러나 왔다. 실제로 일부 사업장에서는 불공정 계약, 과도한 공사비 증액, 조합원 분담금 관리 부실 등이 확인되며 정부 합동점검과 수사 의뢰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구조적 리스크가 조합원에게 집중되는 역진적 제도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정치권의 움직임은 단순한 규제 강화 수준을 넘어 지주택 사업 방식을 전면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만 실제 정책 설계는 '즉각 폐지'보다 '폐지 수준까지 포함한 대대적 개편'에 가깝다. 국토부는 2026년 들어 토지확보 요건 완화, 업무대행사 등록제 도입, 조합원 보호 장치 강화 등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으며 문제 사업장 정리와 제도 정상화를 병행하는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변곡점 위의 서희건설
이 변곡점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건설사가 바로 서희건설이다. 서희건설은 대형 건설사들이 리스크를 이유로 거리를 두던 지주택 시장에 적극 진출해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성장의 토대가 된 사업 구조는, 제도 재편 국면에서는 가장 큰 취약 요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서희건설의 지주택 의존도는 최근 몇 년간 공시와 언론 보도로 반복 확인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서희건설은 2023년 1조4000억원대 매출과 2200억~23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2024년에도 1조원대 매출과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다. 다만 2025년에는 매출이 1조10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약 25% 감소한 것으로 보도돼 성장세 둔화가 확인됐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이 지주택을 포함한 건축 부문에서 발생했고, 일부 보도와 보고서에서는 그 비중을 80~90% 수준으로 제시한다.
이처럼 서희건설은 1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할 정도로 지주택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매출의 대부분을 지주택 관련 건축 부문에 의존하는 편중 구조를 굳혔다. 지주택 제도의 대수술이 본격화될 경우, 1조원대 수주 잔고와 높은 매출채권 비중이 맞물리면서 실적 변동성과 현금흐름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지주택 제도 개편 국면이 서희건설에 단순한 실적 조정 수준을 넘어 중장기 사업 전략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단기간 내 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시나리오는 아직 확정된 바 없지만, 사업 구조의 대폭 손질과 감시 강화는 이미 기정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주택을 기반으로 성장한 서희건설 입장에선 제도의 재편 방향에 따라 수주 구조, 현금흐름,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하도급까지 번지는 파장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서민 보호와 조합원 피해 최소화라는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제도의 급격한 축소 혹은 재편은 시장에 또 다른 파장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서희건설이 참여한 다수 지주택 사업장에서 공사 중단이나 자금 경색이 발생할 경우, 얽혀 있는 하도급 업체들의 유동성 악화와 연쇄 부실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일부 지주택 사업장은 파산이나 사업 무산으로 이어지며 조합원 손실과 지역 건설 생태계 불안을 키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서민 보호 정책이 오히려 기존 조합원들을 사각지대에 남겨둘 수 있다는 점이다. 지주택 제도 개편의 취지가 신규 피해 차단에 맞춰질 경우, 이미 진행 중인 사업장의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 부담, 사업 지연, 청산 과정의 불투명성 등 이중·삼중의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 정책 기조가 빠르게 변하는 국면에서 조합원들은 제도 개편 논의와 개별 사업장의 사업성, 시공사 재무 건전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의사결정 환경에 놓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도의 수술 못지않게 연착륙 설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정부가 표방한 폐지 수준의 개편이 실제로 얼마나 강도 높게 이뤄지든, 관건은 이미 가동 중인 수백 곳의 사업장과 그 안에 묶인 조합원 자본, 그리고 서희건설을 포함한 관련 건설사·하도급 업체들의 재무 리스크를 어떻게 분산·관리하느냐다. 미리 설정된 출구전략 없이 제도만 빠르게 접을 경우 그 비용은 결국 시장 참가자, 특히 개별 조합원과 중소업체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서희건설 사태는 단일 기업의 리스크 관리 문제를 넘어, 비정상적으로 설계·운영되어 온 지주택 제도와 이를 충분히 교정하지 못한 정책, 그리고 틈새에서 레버리지를 극대화해 온 자본의 결합이 만든 결과물로 읽힌다. 2026년의 국토부와 정책 당국이 증명해야 할 것은 원칙적 폐지라는 강경한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조합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시장 왜곡을 교정할 수 있는 정교한 후속 설계다. 제도의 대수술이 또 다른 취약계층을 양산하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개혁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 리스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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