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정부는 2023년 경찰 병력을 대거 동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평화 집회를 세 차례 강제해산했다. 이에 피해자들이 국가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해 최종패소하자, 현 정부가 소송비용을 갚으라는 청구서를 보냈다. '폭력을 행사한 건 국가인데, 왜 피해자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하느냐?'당사자인 한 한국GM 노동자가 이를 묻고 싶다며 기고를 보내왔다. 편집자 (☞관련기사 보기)
지난 4월 23일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초인종이 울렸다. 법원에서 왔다며 문을 열어 달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아기가 깰까 봐 서둘러 문을 열었다. 그는 내 신원을 확인하더니 두툼한 서류 봉투를 하나 건네줬다. 2023년 6월 대법원 앞에서 문화제 강제해산에 대한 사건에 대해 우리가 패소했다는 내용이었다.
2023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경찰은 어느 순간부터 평화롭게 열리던 문화제를 엄청난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해산했다. 우리는 서울 대법원 앞에서 두 번,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한 번, 총 세 번의 '비정규직 철폐' 문화제를 진행했다. 경찰은 세 번 모두 '불법 집회'라며 참가자 전원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연행하며 문화제를 금지했다.
그중 2023년 6월 9일 대법원 앞에서 문화제를 진행하다 강제해산을 당한 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대법원 앞 문화제는 평화롭게 이어졌다. 발언도 하고 노래와 춤을 추고 퀴즈도 진행됐다. 평화로운 문화제는 경찰들의 '불법' 강제해산 명령으로 인해 전쟁터가 됐다. 문화제엔 수많은 시민과 취재진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참가자들을 비롯해 변호사와 사회자, 종교인까지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서너 명의 경찰이 집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지를 강제로 붙들고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넘어진 집회 참가자를 무릎으로 찍거나 겨드랑이를 꼬집기까지 하며 들어 날랐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허리춤을 끌어올려 엉덩이에 바지를 끼워 질질 끌고 나갔으며 손을 바지춤에 넣기까지 했다. 빼라고 소리쳤지만 일어나면 빼겠다며 조롱했다. 그날 60여 명의 참가자는 폭력적인 경찰의 강제해산에 의해 넘어지고 깨지고 짓밟혔고, 여러 사람이 다쳤다. 경찰은 사과는커녕 '너희가 그 자리에 없으면 되는 일'이라며 눈에서 살기를 뿜어냈다. 참가자들이 문화제 강제해산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자고 의견을 모은 이유다.
한국GM 해고 노동자들은 2020년부터 창원, 인천 등에서 서울 대법원 앞을 찾아와 1인 시위를 진행했다. 2015년에 시작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2020년 대법원에 올라갔지만 3년째 판결이 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됐다. 한국GM은 불법파견 범죄를 지우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20년 2심에서 승소하자, 한국GM은 '대법원판결이 나오면 따르겠다'며 노조의 교섭 요청을 수차례 거부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는 '노사가 대화해 자율적으로 해결할 테니 판결을 늦춰 달라'는 취지의 서면을 제출했다. 노조에는 대법원판결을, 대법원에는 노사 교섭을 핑계 삼는 모순적인 태도로 시간만 끌어온 셈이다.
2023년은 한국GM의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된 지 18년째 되던 해였다. 이미 2013년과 2016년, 다른 사건의 형사와 민사 소송에서 한국GM의 불법파견을 확인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즉 2015년에 시작된 해당 사건의 대법원판결 역시 지연될 이유도, 명분도 없었으나, 선고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국GM은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인 이득을 얻었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고통받았다. 한국GM은 비정규직 노조를 파괴하고 해고를 남발했다. 한국GM은 벌금만 내고 사장이 바뀌면 끝이다. 회사는 불법파견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로지 불법파견 범죄를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회사는 별도의 비정규직 임금 체불 사건 재판마저 이 사건 대법원 선고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서면을 제출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GM의 시간 끌기에 사법부가 동참한 꼴이었다. 선고를 미뤄온 대법원도 공범이었다. 대법원이 판결을 제때 했다면, 그동안 발생한 수 차례의 해고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대법원이 판결을 미루는 사이, 한국GM은 그 틈을 타서 노동자를 해고했다. 우리는 KTX 승무원 사건의 대법 판결을 뒤집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이 떠올랐다.
불법파견을 검색해 보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사용사업주는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법적 의무가 발생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에 대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하지만 사업주가 처벌받더라도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고용되지는 않는다. 사업주가 인정하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 지 모를 민사 소송을 노동자가 직접 진행해야 한다.
나 또한 2017년, 한국GM의 불법파견에 대해 민형사상의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와중에 해고됐다. 해고 당시 고용노동부는 수시근로감독을 진행했지만, 해고를 막아주지 않았다. 하청업체는 폐업하면 그만이고, 한국GM은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끌면 그만이다.
해고된 노동자는 그 세월을 온몸으로 맞으며 길거리 투쟁에 나선다. 가만히 있다면 누가 대신 싸워 주겠나?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대법원 앞에서 우리의 권리에 대해 호소했지만, 국가는 강제해산과 물리적인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에 대해 법원은 또 우리가 잘못한 거라며 패소 판결했고, 국가는 우리에게 소송 비용을 청구했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을 상대로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정권이 바뀐 이재명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정부법무공단은 지난달 22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병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 제기한 국가 손배소와 관련해 소송 비용 청구를 전부 취하하는 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국가의 감염병 확산 방지 책임을 물은 공익적 소송임에도, 기계적으로 소송비용을 청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후다. 메르스 유족에게는 통용된 기준이 왜 노동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가.
불법적인 계엄으로 윤석열 정부가 탄핵 되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과거 소년공 출신을 내세우며 노동 친화적 정부를 표방했지만 현실은 전 정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폭력적인 강제해산에 맞선 국가 손배소가 대법원에서 패소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재명 대통령은 '판결이 확정됐기 때문에, 재심으로 취소되지 않은 한 정부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당했던 비정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 당했던 일들은 어디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