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캐나다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CPSP)에서 한와오션이 아쉬운 고배를 마셨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독보적인 건조 능력을 앞세운 한화오션이 막판까지 초박빙의 수주전을 펼쳤으나, 캐나다 정부는 최종적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의 결속력을 선택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6일(현지시각)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해군기지에서 캐나다 해군의 노후한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할 신형 비핵추진 잠수함 12척 도입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카니 총리는 이날 발표 현장에서 “이번 조달은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방 사업이 될 것”이라며 “매우 유능한 두 공급업체(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내린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잠수함 12척의 건조 비용만 약 300억캐나다달러(약 32조원)에 달하며, 향후 30~50년간 이어질 운영 및 유지보수(MRO)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사업 규모가 최대 1000억캐나다달러(약 108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캐나다 정부가 독일 TKMS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 배경은 ‘상호 운용성’과 ‘동맹 체계’였다. 독일은 노르웨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나토 표준에 최적화된 ‘212CD’ 모델을 제안했다.
카니 총리는 “TKMS의 플랫폼은 북극권 해역 작전에 최적화돼있으며, 나토 동맹국 간의 원활한 통신과 정보 공유, 합동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주전은 단순히 기업 간의 경쟁을 넘어 한-독 간의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치러졌다. 한화오션은 우리 해군이 이미 성공적으로 운용 중인 3600톤급 잠수함 ‘장보고-III(KSS-III)’ 모델을 제안하며, 기술적 신뢰성과 압도적인 납기 능력을 강조했다.
정부 역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특사로 파견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마크 카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 민관군이 한 팀이 돼 전방위적인 외교전을 펼쳤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한화오션의 잠수함이 성능과 가성비, 그리고 적기 인도 능력 면에서 독일을 앞서거나 대등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독일의 212CD 모델이 아직 실물로 건조된 적이 없는 ‘설계상 모델’인 반면, 한국은 이미 실전 배치된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강력한 무기였다.
독일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독일 정부는 캐나다가 조기에 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존 독일과 노르웨이 해군이 발주한 생산 순번의 일부를 캐나다에 양보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이를 통해 캐나다는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진 오는 2034년부터 잠수함을 인도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의 최대 강점인 ‘납기 속도’를 동맹 간의 양보라는 정치적 해법으로 상쇄한 것이다.
결국 캐나다는 인도·태평양 지역으로의 확장성보다는 북극해와 북대서양을 아우르는 기존 유럽-나토 안보 클럽의 공고화를 우선시했다. 튀르키예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이번 결정은 캐나다가 유럽의 영향권으로 더욱 깊숙이 편입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결과 발표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7일 페이스북을 통해 “도전에는 성공도 있지만 아쉬움도 따르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멈춰 서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비록 이번 사업에서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우리 잠수함의 저력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분명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7월8일 ‘방위산업의 날’을 언급하며 “거북선이 실전에 처음 투입된 날을 기념하는 이 뜻깊은 날에, K-방산의 위상을 높여온 종사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과 수출 지원, 국제협력 강화까지, 우리 잠수함이 세계 바다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게 될 그날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특사로 캐나다 현지를 직접 누볐던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나토라는 안보 동맹의 두터운 벽을 단번에 넘어서기는 역시 쉽지 않았다. 70년이 넘는 세월 다져온 군수 상호 운용성의 역사적 무게를 실감한다”면서도 “독일로부터 잠수함 기술을 배웠던 우리가 이제 원조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비록 우선협상권은 놓쳤지만, 한화오션은 이번 사업의 ‘예비 공급업체(Reserve Bidder)’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마크 카니 총리는 “만약 독일과의 최종 협상이 결렬될 경우, 예비 공급업체인 한화오션의 KSS-III를 우선 공급업체로 지정하고 즉시 협상에 착수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명시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주전이 비록 ‘우선협상권’ 확보에는 실패했으나, 세계 최대 잠수함 시장에서 한국 잠수함이 독일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음을 입증한 ‘값진 패배’라고 평가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재확인한 만큼, 향후 이어질 수상함 도입 사업 등 다른 방산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이번 수주전의 경험이 향후 호주, 폴란드 등 다른 국가들의 잠수함 도입 사업에서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방산 전문가는 “기술력만으로는 뚫기 힘든 ‘동맹의 벽’을 확인한 만큼, 앞으로의 방산 수출은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국가 간 안보 결속과 상호운용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도의 외교적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Copyright ⓒ 일요시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