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선전물'…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된 1770년 '보스턴 학살 사건'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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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선전물'…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된 1770년 '보스턴 학살 사건' 삽화

BBC News 코리아 2026-07-07 13:23: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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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군인들이 발포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Gift of Mrs Russell Sage

1770년 보스턴 학살 사건의 참혹한 현장을 담은 폴 리비어의 삽화는 어떻게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한 분노를 촉발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선전물로 평가받게 됐을까.

1770년 3월 5일 저녁,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거리는 얼어붙은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세관 건물 앞에는 영국군 보초병 한 명이 홀로 경계를 서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를 뚫고 그의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한 십 대 소년이 나타나 그를 조롱하며 눈덩이를 던지기 시작했고, 곧 점점 더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다.

*주의: 일부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삽화가 포함돼 있습니다

병사들이 이 보초병을 돕고자 나서면서 대립은 더 격화했다. 군중은 병사들에게 굴 껍데기, 석탄, 얼음덩어리 등을 던졌고, 결국 사태는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영국군이 발포하며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것이다.

영국은 이 사건을 다소 완곡하게 '킹 스트리트 사건'이라고 불렀으나, 미국 현지에서는 이를 '보스턴 학살 사건'으로 기억했다.

이 사건은 훗날 미국 독립의 주요 촉매제가 된 계기 중 하나로, 올해 7월 4일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미국의 다양한 기관에서 이 사건을 조명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주 후, 당시 유명 은세공업자였던 폴 리비어가 제작한 동판화 한 장이 보스턴 신문에 실렸다.

작품의 제목은 '1770년 3월 5일 보스턴의 킹 스트리트에서 제29연대 병사들이 자행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었다.

판화 속에는 애국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가운데 영국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발포하고 있다. 이러한 참혹한 묘사는 반영국 정서를 부추기고, 저항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오늘날, 이 판화는 총 29점이 있으며, 그중 한 점은 텍사스주 위치타 폴스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독립선언서 서명 기념일을 맞아, 이 미술관은 인쇄 매체가 독립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하는 '미국 혁명을 인쇄하다'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영국군이 일렬로 서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고, 몇몇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을 담은 판화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Gift of Mrs Russell Sage
은세공업자 폴 리비어가 제작한 이 판화는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한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 전시회의 공동 큐레이터이자 미드웨스턴 주립대학교 소속 역사학과 부교수인 메리 드레이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리비어의 이 '보스턴 학살' 판화는 특히 지역과 인구 집단에 따라 식자율(글을 아는 사람들의 비율)이 천차만별이던 시절 강력한 선전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영국 군인들은 질서 정연한 대열로 배치하고, 무장하지 않은 식민지 주민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그는 어느 쪽이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는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 통치에 저항하도록 결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숨겨진 메시지

또한 이 작품은 누가 잘못한 쪽인지 암시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영국 군인들 머리 위에는 '정육업자 조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반면,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충성심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혁명!'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콘스탄스 맥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군인들에게 총격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이 그림은 당시 사건을 접한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도록 의도됐다"고 설명했다.

이 판화는 미국 혁명의 기원과 그 후의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맥피에 따르면 이 판화는 영국군이 더 이상 "친근한,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억압하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으며, "이것이 시민들의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게다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은 리비어가 판화 밑에 남긴 격정적인 글귀를 읽으며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 리비어는 영국을 "살의의 앙심"을 품고 행동하는 "잔혹한 야만인"으로 묘사하며 더욱 감정을 고취했다.

또한 이 작품은 본문 아래에 나열된 "애절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야 한다"며 애국자들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학자 스티븐 L. 댄버가 2022년 이 판화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영국 통치에 대한 식민지 주민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식민지 주민들을 공동의 대의 아래 단결시키고, 독립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일깨우는 데 성공"했다.

절묘한 시기

이 판화가 세상에 나온 시점도 절묘했다. 당시 영국군의 주둔 규모가 확대되고, 시민 자유는 제한되고, 미국인들이 영국의 국가 부채를 떠안게 되는 일련의 과세 정책들이 투표 없이 통과되며 미국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불공정한 과세의 상징 그 자체인 세관 청사 밖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밤중에 말을 타고 달리는 남성의 모습을 담은 그림
Alamy
리비어는 1775년 영국군의 기습을 알리고자 밤새 말을 타고 달려간 이른바 '한밤중의 질주' 덕에 훗날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다

애국자 저항 단체인 '자유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리비어는 이후 1775년 이른바 '한밤중의 질주'로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다. 영국군의 기습을 알리고자 밤새 말을 타고 달려감으로써 영국군 격퇴에 기여한 것이다. 다만 같은 임무를 수행한 전령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보스턴 학살 사건을 계기로 격양된 여론의 감정을 활용해 자신이 속한 단체의 사명에 대한 지지를 결집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헨리 펠럼이 그린 사건의 스케치를 사실상 표절해 서둘러 동판화를 만들어 세상에 공개했다. 그러나 펠럼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고,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펠럼은 그에게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비난하는 신랄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사람들의 분노도 더 들끓었습니다'

이 작품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 데에는 희소성도 한몫했다.

맥피는 "이 작품은 당시 미국 판화가가 제작한 몇 안 되는 판화"였다며, 이 작품이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퍼져나갔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맥피에 따르면 당시 "이토록 많은 복제본이 제작된 작품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판화가 학살 소식을 곳곳에 전파할수록 사람들의 분노도 더 들끓었다.

이 판화는 상점과 선술집에 내걸리거나, '자유의 아들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판매되기도 했다. 그 결과 한때 지하 조직이었던 이 단체는 애국 운동을 대표하는 단체로 부각되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한편, 조나단 멀리켄의 작품처럼 이 판화를 표절한 버전들도 등장했는데, 리비어는 자신이 했던 일을 그대로 되돌려받은 셈이었지만, 동시에 행동을 촉구하는 그의 메시지도 더 널리 퍼져나갔다.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군인들을 그린 그림
Alamy
이 판화는 헨리 펠럼의 원본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리비어의 판화는 1770년에 발간된 팸플릿 '보스턴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에 대한 간략한 기록'의 표지 삽화로도 사용됐다. 이 팸플릿과 해당 판화의 여러 판본이 런던에서 인쇄되면서, 이 선전물은 미국 밖으로도 번져 나갔다.

그렇게 보스턴 학살의 공포와 부당함은 영국 본토의 시민들 눈앞에도 펼쳐지게 됐다.

'우리의 뜨거운 열정'

강력한 메시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만큼 이 판화에는 사실 과장과 왜곡이 가득하다. 우선 사건이 마치 대낮에 벌어진 것처럼 묘사했으며, 시민들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모두 생략했다. 심지어 도발하고자 병사들에게 던졌던 눈덩이조차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나중에 증인들이 법정에서 증언했듯이, 이 그림은 영국 측이 분쟁을 먼저 시작한 것처럼 잘못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토마스 프레스턴 대위(오른쪽)가 무방비 상태인 군중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프레스턴 대위는 이후 이를 부인했고,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일부 증인들은 '발포'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는 병사들을 도발하는 시민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재판에서 변호를 맡은 조시아 퀸시는 모두진술에서 "가정마다 걸린 이 판화가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우리의 열정이 뜨거운 나머지 이성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며 이 판화가 배심원들의 판단에 미칠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이 판화가 담고 있는 선전적 메시지는 작품이 제작된 지 오래 지난 후에도 대중의 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학살 사건 1주기를 맞아 리비어가 자신의 집 창문에 이 판화와 함께 거대한 조명 전시물을 설치했을 때, 수천 명이 몰려들 정도였다.

아울러 한 세기 후, W. L. 챔프니와 알론조 채플 같은 후대 예술가들은 사실관계 일부를 바로잡아 이 사건을 다시 다루었지만, 핵심 서사는 그대로 유지됐다.

리비어의 흑백 초상화
Alamy
1768년 존 싱글턴 코플리가 그린 리비어의 초상화.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민중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길더 레어만 미국 역사 연구소'는 "리비어의 이 역사적인 판화는…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전쟁 선전물"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분명 미국 독립혁명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로,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드레이퍼 교수는 "크기는 작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관람객들의 감정을 뒤흔든다"고 표현했다.

"이 작품이 여전히 힘을 지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각 세대는 권위, 폭력, 저항에 대한 자신들만의 관점에 따라 이 작품을 다르게 해석할 것입니다."

또한 드레이퍼 교수는 "과거는 현재만큼이나 논쟁의 대상"임을 "선명하게 일깨워 주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혁명!(Revolution!)' 전시는 2026년 9월 7일까지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미국 혁명을 인쇄하다(Printing the American Revolution)' 전시는 2026년 8월 22일까지 텍사스 주 위치타 폴스 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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