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선별 투자 흐름으로 바뀐 가운데 우리금융그룹이 혁신기업 지원 전략을 전면에 내놨다. 초기 창업기업 발굴부터 후속 투자, 스케일업, 기업공개까지 이어지는 ‘연속형 모험자본’ 체계를 구축해 생산적 금융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금융그룹
은행 돈이 부동산 대신 스타트업으로 가는 이유
우리금융그룹은 7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주관으로 ‘생산적 금융이 그리는 혁신의 미래’를 주제로 한 ‘2026 WFRI 컨퍼런스’를 열었다고 이날 밝혔다.
우리금융은 이날 행사에서 향후 혁신기업에 공급할 자금의 방향과 단계별 지원 방안을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미래동반성장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5년간 총 90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을 확대하고 이 가운데 7조원을 생산적 투자에 배정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금융권에서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흐름은 은행 자금의 쓰임새 변화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은행 자금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담보대출, 부동산 금융, 대기업 여신에 많이 쏠려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이 길어지면서 금융이 미래 산업과 혁신기업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정부도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5년간 150조원 규모 자금을 첨단전략산업과 벤처·혁신기업 생태계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이 제시한 생산적 투자 현황. 우리금융은 향후 5년간 추진하는 90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 가운데 7조원을 생산적 투자에 배정한다는 계획이다. / 우리금융그룹 제공
생산적 금융은 자금이 실제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금융을 의미한다. 부동산 담보나 단기 이자수익에 치우친 기존 금융 방식에서 벗어나 AI, 바이오, 모빌리티, 첨단제조, 핀테크 등 미래 일자리와 수출을 만들 수 있는 분야로 자금을 보내는 개념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단기 수익성만 놓고 보면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새 산업과 고객을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금융은 이번 컨퍼런스에서 스타트업을 성장 단계별로 지원하는 구조를 내놨다. 초기 기업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디노랩을 통해 발굴하고,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기업에는 기업형 벤처투자 펀드인 CVC 펀드로 후속 자금을 공급한다. 이후 사업 규모가 커진 기업에는 벤처투자와 기업공개 지원을 연결해 창업 초기부터 상장 준비 단계까지 돕겠다는 계획이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서면 인사말을 통해 스타트업과 청년 기업이 필요한 투자와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방에서도 혁신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지역균형발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은 왜 ‘한 번의 투자’로 버티기 어려운가
우리금융그룹의 연속형 모험자본 공급체계. 초기 창업기업 발굴부터 후속 투자, 스케일업, 기업공개 지원까지 성장 단계별 금융지원을 연결하는 구조다. / 우리금융그룹 제공
스타트업 금융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돈이 필요한 시점이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창업 초기에는 제품 개발비가 필요하고 첫 고객을 확보한 뒤에는 인력 채용과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 매출이 늘기 시작하면 서버, 공장, 물류망, 해외 법인, 특허, 인증, 설비투자 비용이 뒤따른다. 기업공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회계·법무·IR 비용까지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창업기업은 담보가 부족하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어도 금융기관이 평가할 수 있는 매출 기록이나 담보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은행 대출보다 벤처투자, 정책자금, 전략적 투자에 의존한다. 문제는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회복 신호와 자금 편중이 동시에 나타나는 흐름이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 정보를 집계하는 민간 데이터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중소기업 대상 투자액은 2조 178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5.4% 늘었다. 반면 투자 건수는 238건으로 17.4% 줄었다. 전체 투자금은 늘었지만 일부 유망 기술기업과 대형 투자 건에 자금이 몰리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이런 환경에서는 초기 기업과 지방 기업이 더 큰 압박을 받는다. 투자자는 검증된 시장, 매출, 회수 가능성을 더 따진다. 아직 실적이 부족한 기업은 기술이 좋아도 투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 금융그룹이 초기 발굴부터 후속 투자까지 연결하겠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금융의 디노랩은 이 초기 구간을 맡는다. 올해 6월 기준 디노랩을 통해 발굴·육성한 스타트업은 231개사다. 그룹의 누적 스타트업 투자금은 4700억원이다.
펀드 규모도 단계적으로 커졌다. 우리금융은 2024년 50억원 규모의 디노랩 1호 펀드를 조성해 딜리버리랩 등 8개사에 투자했다. 2025년에는 100억원 규모의 2호 펀드를 만들어 크리스틴컴퍼니 등 12개사를 지원했다. 올해 4월 조성한 3호 펀드는 총 20개사에 2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CVC는 무엇이고, 왜 스타트업에 중요한가
이번 컨퍼런스에서 반복적으로 나온 단어가 CVC다. CVC는 Corporate Venture Capital의 약자로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뜻한다. 일반 벤처캐피탈이 투자 수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CVC는 투자 기업과 모기업 사이의 사업 시너지도 함께 본다.
예를 들어 금융그룹이 핀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지분 가치 상승뿐 아니라 사업 협업 효과도 함께 노릴 수 있다. 해당 스타트업의 기술을 은행 앱, 결제, 신용평가, 자산관리, 보험, 카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대형 금융사의 고객망과 신뢰를 활용할 수 있고, 금융사는 내부 개발보다 빠르게 신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CVC가 스타트업에 매력적인 이유는 ‘첫 고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기업은 제품이 좋아도 대기업이나 금융사를 고객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보안 심사, 계약 절차, 내부 승인, 실적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투자와 사업 협업이 함께 이뤄지면 스타트업은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이후 다른 고객을 설득하기 쉬워진다.
우리금융은 2022년 500억원 규모의 CVC 1호 펀드를 조성해 34개사에 투자했다. 현재는 700억원 규모의 2호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금융캐피탈을 중심으로 그룹 주요 계열사 전반에 CVC 펀드를 확산해 유망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CVC에는 유의할 점도 있다. 스타트업이 특정 대기업이나 금융그룹과 지나치게 강하게 묶이면 독립적인 사업 확장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경쟁 금융사나 대기업과 거래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투자한 기업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금융사 역시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 때문에 CVC 투자는 자금 공급뿐 아니라 산업 이해도와 협업 설계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금융은 디노랩 펀드, CVC 펀드, VC 투자, IPO 지원을 하나의 사다리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초기 스타트업을 찾아내고, 검증된 기업에는 후속 투자를 붙이고, 이후 우리벤처파트너스와 우리투자증권이 스케일업과 상장 전 단계까지 지원하는 구조다.
지방 스타트업은 왜 더 불리한 출발선에 서나
우리금융그룹 디노랩센터 운영 현황. 우리금융은 서울과 비수도권, 베트남을 포함해 총 7개 디노랩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 우리금융그룹 제공
이번 컨퍼런스에서 우리금융이 강조한 또 다른 축은 지방 스타트업이다. 국내 벤처 생태계는 여전히 수도권 중심이다. 투자자, 대기업 고객, 인재, 액셀러레이터, 법무·회계 네트워크가 서울과 경기권에 몰려 있다. 같은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도 서울에 있느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투자자와 만날 기회가 달라진다.
지방 스타트업의 어려움은 물리적 거리보다 생태계 격차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제품을 검증할 대기업 고객을 찾기 어렵고 후속 투자자를 만날 기회도 제한적이다. 개발자와 사업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수도권보다 불리하다. 지역 산업 기반과 연결되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지만, 기업과 투자자, 고객사를 이어주는 중간 조직이 부족한 점이 한계로 꼽힌다.
우리금융은 현재 경남, 충북, 부산, 전북 등 4개 비수도권 거점을 포함해 총 7곳의 디노랩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관악과 강남, 베트남 센터까지 포함한 네트워크다. 지역 디노랩 센터는 지방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 사업 협업, 후속 성장 지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우리금융에 따르면 2024년 이후 디노랩이 발굴·육성한 지역 스타트업은 69개사다. 같은 기간 새로 선발한 기업의 약 66%를 차지한다. 디노랩 펀드 운용 이후 누적 투자 건수 가운데 지방 기업 비중도 55%로 절반을 넘었다.
올해도 부산 2기, 경남 3기, 충북 3기 디노랩 선발을 통해 AI, 바이오, 첨단제조 분야 지역 기업을 발굴했다. 일부 디노랩 기업은 CES 2026 최고혁신상 수상 등 해외 전시에서도 성과를 냈다.
지역 스타트업 지원은 지역균형발전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첨단제조 기업은 지역 공장과 부품사, 물류망을 활용할 수 있다. 바이오 기업은 지역 대학병원이나 연구기관과 손잡을 수 있다. 식품테크 기업은 지역 농수산물, 유통망, 소상공인과 협업할 수 있다. 금융이 지역 스타트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금 지급이 아니라 지역 산업의 새로운 연결망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디노랩 출신 5개사가 말한 금융사의 역할
이날 두 번째 세션에는 디노랩 출신 스타트업 5개사가 참여했다. AI 모빌리티 기업 에이젠글로벌, 부동산 테크기업 테라파이, 카드리스 핀테크기업 캐시멜로, 식자재 유통 혁신기업 딜리버리랩, AI 기반 신발 제조기업 크리스틴컴퍼니가 발표자로 나섰다.
이들 기업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지점은 투자금 그 자체보다 고객 확보와 사업 검증이었다.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 사실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실제 고객에게 서비스를 팔고, 반복 매출을 만들고, 외부 파트너와 협업한 기록을 쌓아야 다음 투자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금융그룹과의 협업은 이 지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융사는 대규모 고객 기반과 브랜드 신뢰를 갖고 있다. 스타트업이 금융사 계열사와 함께 서비스를 검증하면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속도가 빨라진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도 금융그룹의 네트워크가 초기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이원석 딜리버리랩 대표는 디노랩 선발 이후 후속 투자와 그룹 계열사 협업이 이어지면서 기업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금융과 함께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 소상공인과 상생하며 혁신 생태계의 선순환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금융사와의 협업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보안 기준과 내부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하고, 금융 규제에 맞춰 서비스를 고쳐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면 다른 금융사나 대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 신뢰 자산이 된다. 초기 기업이 가장 얻기 어려운 ‘시장 검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은행·증권·캐피탈이 함께 움직이는 이유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우리금융그룹은 어떻게 혁신 성장의 파트너가 될 것인가’가 논의됐다. 박성민 우리은행 투자금융본부장, 박현주 우리투자증권 CM본부장, 이병헌 우리프라이빗에퀴티자산운용 PE본부장, 천지웅 우리벤처파트너스 VC그룹장, 이경민 우리금융캐피탈 신기술금융부장이 참석했다.
패널들은 생산적 금융이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끊기지 않는 지원체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은행은 시설투자, 인수합병,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 필요한 금융솔루션을 제공한다. 증권은 IPO와 자본시장 조달을 연결한다. 벤처파트너스와 PE자산운용은 성장 단계와 시장 상황에 맞는 후속 투자 전략을 맡는다. 캐피탈은 디노랩 펀드를 기반으로 스타트업 발굴과 계열사 협업을 넓힌다.
이 구조는 금융지주의 장점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은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금융이 다르다. 초기에는 수억원대 투자와 고객 검증이 중요하다. 성장기에 들어서면 수십억~수백억원대 후속 투자와 운전자금이 필요하다. 더 큰 단계에서는 설비투자, 해외 진출, M&A, 상장 준비가 뒤따른다. 은행, 증권, 캐피탈, VC, PE가 각각 따로 움직이면 기업은 매번 새로운 금융기관을 찾아다녀야 한다. 반대로 한 그룹 안에서 역할이 연결되면 성장 계획을 장기적으로 설계하기 쉽다.
물론 모험자본 확대에는 리스크도 따른다. 스타트업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큰 영역이다. 기술 상용화가 늦어질 수 있고, 시장 수요가 기대보다 작을 수 있으며 후속 투자 시장이 닫히면 기업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 금융사가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려면 산업 분석 능력, 투자 심사 역량, 사후관리 체계가 함께 강화돼야 한다.
이 때문에 생산적 금융은 ‘좋은 명분’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투자받은 기업이 실제 매출과 고용,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금융사는 손실을 감수하되 무분별하게 돈을 풀어서는 안 된다. 스타트업도 정책자금이나 금융권 투자에 기대기보다 시장에서 검증 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금융은 앞으로 매월 지주와 계열사가 함께하는 그룹 ‘첨단전략산업 금융협의회’를 통해 혁신기업 금융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도 컨퍼런스 이후 현장 기업의 자금조달 애로와 금융 수요를 청취해 연구와 그룹 전략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박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이번 컨퍼런스에 대해 혁신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금융지원 방안을 현장의 목소리로 함께 모색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2026년을 우리금융그룹 모험자본 공급체계가 본격 가동되는 원년으로 삼고 연구소가 그룹 싱크탱크로서 혁신기업 성장 여정에 동반자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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