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사태' 후 전교조 긴급 설문조사…중학생 가장 심각
"학교 규정에 혐오표현 금지 명시해야…청소년 SNS 제한도 논의할 때"
혐오·역사왜곡 표현 관련 교사 인식조사 결과 발표하는 전교조(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김지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이 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열린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교조는 지난달 29일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일부 선수들이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일에 대해 전국 교사 1천여명과 청소년 1천600여명을 대상으로 혐오·역사왜곡 표현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2026.7.7 dwise@yna.co.kr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전라도에 가려면 여권 들고 가야 한다고…'홍어'라며 키득댑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폭동'이라고 불러요. 수업 시간에 '탱크 데이 화이팅'이라 외친 아이도 있었어요."
"과학 시간에 중력을 공부할 때 떨어지는 물체를 보면서 '운지'(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하하는 표현)라고 하더라고요."
특정 지역이나 집단, 역사적 사건을 조롱하는 '혐오 표현'을 학생들로부터 들어봤다는 교사들이 설문조사에서 직접 소개한 학교 현장의 사례들이다.
과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쓰이던 표현을 이제는 학교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실태가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했다는 교사가 10명 중 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경험은 중학교에서 가장 많았으며, 교사들은 온라인 혐오문화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 정치인 죽음 비하 최다…"노 전 대통령 조롱이 절대다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 1천109명을 대상으로 한 '혐오·역사 왜곡 표현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배재고 야구부원들이 광주제일고와의 경기 도중 5·18을 폄훼하는 응원 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키자 긴급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 응답자의 89.3%에 달했다. 직접 목격이 73.9%, 전해 들은 경우가 15.4%였다.
학교급별로는 중학교 교사의 경험률이 92.7%로 초등학교(87.4%)와 고등학교(86.4%)보다 높았다.
교사가 혐오 표현을 한 학생을 직접 목격한 비율 역시 중학교(81.7%)가 초등학교(68.4%)·고등학교(68.5%)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혐오 표현의 유형을 보면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 조롱'이 88.9%로 최다였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거의 절대다수는 노 전 대통령에 관한 비하 표현"이라며 "말끝마다 '∼노'를 붙이거나 운지, 부엉이바위 같은 단어를 대화에서나 각종 과제물에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혐오와 차별'(86.8%), '세대·직업·계층 비하'(81.8%), '역사적 사건 왜곡·희화화'(80.5%) 등이 뒤를 이었다.
빈도 면에서도 중학생의 혐오 표현 사용이 가장 두드러졌다.
일례로 학교 교사는 67.1%가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을 조롱하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자주' 접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교(52.3%)와 고등학교(51.6%)보다 확연히 높은 비율이다.
◇ "배재고 사태, 단순 일탈 아닌 혐오 문화서 기인"
교사들은 이번 배재고 사태를 일부 학생의 비행이 아닌 청소년 사이에 퍼진 '혐오의 놀이화'가 낳은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학생들만의 우발적 일탈로 보기 어렵고, 온라인 혐오 문화 확산과 연결해 봐야 한다'(88.4%)는 응답이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개별 사건에 가깝다'(7.5%)는 응답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배재고 사태의 원인으로는 '온라인 혐오 콘텐츠와 커뮤니티 문화의 확산'(94.0%)을 가장 많이 지목했고 그다음이 '정치권·언론의 혐오와 조롱의 언어'(74.4%),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민원 부담으로 인한 쟁점 교육 위축'(62.0%) 순이었다.
향후 마련돼야 할 대책을 묻는 문항에는 '학교생활규정에 혐오 표현 금지와 교육적 조치 근거 명시'(55.8%), '플랫폼의 혐오·극단주의 콘텐츠 추천 책임 강화'(49.9%) 등이 거론됐다.
교사들은 혐오 표현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로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69.9%)과 '학부모 민원이나 외부 공격 우려'(60.1%)를 꼽았다.
예컨대 5·18이나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희화화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가르치고 싶어도, 학부모가 교사의 정치 중립 위반을 문제 삼는 게 두려워 입을 닫게 된다는 게 전교조의 지적이다.
박 위원장은 '사회적 쟁점을 다루는 교육'을 학교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올해는 반드시 교사들의 정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청소년 80%, 혐오 표현 문제 인식…"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
전교조는 전국 초6∼고3 1천636명을 대상으로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청소년들은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혐오 표현을 보거나 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높은 노출률을 보인 콘텐츠는 '외모·성적·가정환경·지역·말투 조롱'(53.5%)과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죽음·비극 조롱'(51.2%)이었다.
플랫폼별로는 유튜브로 해당 콘텐츠를 접했다는 사람이 53.1%였고 이어 인스타그램(51.6%), 틱톡(33.6%), 학교 친구들과의 대화(19.9%)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교사와 학생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혐오 표현을 배우는 창구로 지목한 만큼,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유럽 등지에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SNS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거나 관련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박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콘텐츠에 접근할 자유와 자본의 자유를 이유로 (청소년의 SNS 사용을) 열어둔 거라 보는데, 이것이 학생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SNS 사용 제한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32.2%가 '유튜브, SNS 등이 혐오 영상이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 추천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어른뿐 아니라 청소년 역시 SNS의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교조, 혐오·역사왜곡 표현 관련 인식조사 결과 발표(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교조는 지난달 29일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일부 선수들이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일에 대해 전국 교사 1천여명과 청소년 1천600여명을 대상으로 혐오·역사왜곡 표현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2026.7.7 dwise@yna.co.kr
그러나 학생들이 혐오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가장 많이 언급한 건 '교육'이었다.
'학교에서 혐오 표현과 역사 왜곡 문제를 제대로 배우는 것(55.3%), '실제 사례를 놓고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는 수업'(42.9%) 등이다.
배재고 사태 같은 일의 재발을 막는 방법으로도 '왜 문제가 되는 표현인지 알려주는 교육'(40.8%)을 가장 많이 택했다.
전교조는 "이번 조사 결과는 청소년들이 혐오·조롱·역사 왜곡 표현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단순한 진단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면서 "많은 학생은 이미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으며, 사회와 학교가 이를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함께 다루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혐오·역사 왜곡 표현 대응을 위한 과제로 ▲ 학교생활규정 내 조치 근거 명시·공동 대응 체계 구축 ▲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쟁점 교육 보호 제도 마련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온라인 혐오·허위 정보 규제 ▲ 민주시민·인권·역사·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등을 제시했다.
박 위원장은 "이 문제를 가장 눈여겨보고 대책을 빠르게 고민해야 할 곳은 교육부"라면서도 "기업 규제 등 다른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각 부처가 함께 얘기해야 한다"고 짚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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