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과학 수업시간에 중력을 학습할 때 떨어지는 물체를 보며 ‘운지’(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비하하는 표현)라고 하고 키득거립니다.” “5·18민주화운동을 광주폭동으로, 탱크데이 사태 이후 탱크데이 파이팅을 수업시간에 외칩니다.”
최근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논란은 온라인 혐오 문화가 학교 현장까지 침투한 현실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혐오와 역사왜곡 표현이 학생들 사이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교사 10명 중 9명은 교실에서 관련 표현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배재고 사태 이후 지난 2~6일 청소년 1636명과 전국 초·중·고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생들의 발언, 과제물, 발표 등에서 혐오·차별·역사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의 89.3%를 기록했다. 특히 중학교 교사의 직접 목격 비율이 81.7%로 전 학교급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적 표현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학생 간의 사적인 대화(77.3%)에서 가장 빈번하게 오가고 있었으나 수업 중 발언(52.6%)이나 공식적인 과제물 및 발표 자료(20.8%)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전교조는 “이는 온라인 공간에서 유통되던 은어나 밈이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인 학습 공간까지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혐오 표현 가운데 가장 빈번하고 심각한 유형은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을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응답 교사의 88.9%가 이러한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 중 58.2%는 ‘반복적으로 자주 발생한다’고 응답했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을 향한 혐오·차별 표현을 경험했다는 교사도 86.8%에 달했다. 세대·계층 비하(50.3%)와 역사적 사건 희화화(45.4%) 역시 학교 현장에서 적지 않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이 혐오 표현의 의미를 인지한 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전체 교사의 54.4%가 ‘알고 사용하는 경우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섞여 있다’고 답변했다. 다만 ‘대부분 의미를 알고도 사용한다’는 응답은 초등학교 11.8%, 중학교 23.5%, 고등학교 32.2%로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교사들이 혐오 표현을 제지하거나 문제점을 지도했을 때 학생들은 ‘그냥 다른 친구들도 써서 따라 썼다’(55.5%), ‘장난이었다’(56.0%)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도 이후에도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는 응답은 32.1%에 달한 반면, 스스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진지한 사과와 성찰로 이어졌다는 사례는 1.8%에 불과했다.
더욱이 일부 학생들은 교사가 이와 관련된 훈육을 해도 ‘교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15.5%)며 역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심각한 교실 실태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어할 현장의 시스템은 미흡했다. 사안 대응 매뉴얼이 ‘있고 숙지하고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전체의 2.1%에 그쳤다. 89.5%의 교사는 매뉴얼이 ‘없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근 배재고 사태에 대해 전체 교사의 88.4%는 이를 특정 학생의 일탈이 아닌 ‘온라인 혐오 문화 확산의 결과’로 지적했다. 사태를 유발한 근본적인 외부 요인으로는 ‘온라인 혐오 콘텐츠와 커뮤니티 문화의 확산(94.0%)’이 가장 많이 지목했다. ‘정치권·언론의 혐오와 조롱 언어(74.4%)’가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을 기록했다.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정치적 표현만이 아니라 일상적 조롱을 접하고 있었다. 가장 높은 노출률을 보인 것은 ‘외모, 성적, 가정환경, 지역, 말투 등을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1회 이상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53.5%였고 ‘반복적으로 자주 있음’도 30.3%였다.
친구들이 혐오·차별·조롱 표현을 사용할 때 본인이 보통 어떻게 반응하는지 묻자 ‘불편하지만 그냥 넘어간다’가 43.4%로 가장 높았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학생 다수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실제 또래관계 안에서 이를 제지하거나 멈추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도움 요청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는 학생들은 ‘예민하다는 시선’(35.9%)을 가장 많이 꼽았다. 뒤이어 ‘별일 아닌 걸로 보일까 봐’(32.3%), ‘일이 더 커질까 봐’(30.5%) 순이었다.
문제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학생 55.3%는 ‘학교에서 혐오표현과 역사왜곡 문제를 제대로 배우는 것’을 꼽았다. 그다음으로는 ‘실제 사례를 놓고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는 수업’(42.9%), ‘심각한 혐오·차별 행동에 대한 학교의 분명한 조치’(35.0%), ‘유튜브, SNS 등이 혐오 영상이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 추천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32.2%) 등이었다.
전교조는 “교사에게는 인권과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혐오 현상에 맞서 정당한 쟁점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와 제도적 보호 장치가 보장돼야 한다”며 “학교 밖에서는 정부와 국회, 플랫폼 기업이 차별금지법 제정, 알고리즘 규제, 혐오 표현 제재 등에 나서는 범국가적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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